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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논문] 실록에 나타나는 15세기 태평관·모화관 건축과 관련 인물연구
A Study on the Taepyeonggwan, Mohwagwan and the Architects Contrived these Architectures as Shown in The annals of the J oseon Dynasty of 15C 원문보기

건축역사연구 : 한국건축역사학회논문집 = Journal of architectural history, v.25 no.4, 2016년, pp.19 - 29  

김버들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 ,  조정식 (동국대학교 건축공학과)

Abstract AI-Helper 아이콘AI-Helper

This study is based on the 15th century's architecture Mohwagwan and Taepyeonggwan and the architects behind it. The results were as follows: First, inline with Ming dynasty's protocol, the King of Joseon marched with honor guard in front of his people. Therefore, the Joseon dynasty needed to match ...

주제어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태평관은 어떤 용도로 만들어졌는가? 태평관은 고려 말 明使를 위한 전용 객관으로 지어졌다. 처음에는 고려 行征東省의 관서를 개조하였고2) 한양 천도 후에는 다시 개성 태평관을 모방하였다.
한양에서 명과의 의례행위를 담당했던 곳은? 대외적으로는 明과의 관계가 정리되면서 외교의례가 다양한 시도를 거쳐 정리되었다. 따라서 의례행위를 담을 수 있는 건축공간에 대한 검토가 요구되었는데, 그 중 明과의 의례행위를 담당하는 곳이 太平官과 慕華館이다.
명사들의 기록을 토대로 태평관 건축의 내용을 분석한 내용은? 명사들의 기록 중 태평관 건축의 내용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누가 매우 높아서 누에 오르면, 한양이 한눈에 보였다. 마치 얼음병을 통해 바라보는 것처럼 주택의 지붕, 대문, 들어열개문과 태평관 앞의 남산과 뒤의 궁전, 도성, 북악, 소나무 등의 조망이 뚜렷하였다. 여러 층의 섬돌과 기둥을 붙잡고 올라가야 하는 높은 누각이면서도 구조 또한 매우 정밀하였다. 둘째, 단청이 사실적이면서 화려하였다. 기둥에는 날아가는 꿩을 장엄하게 그렸고, 들보에는 구름을 그렸다. 난간에는 벽사의 의미를 담은 조각을 하였는데 실제로 마귀를 쫓아 줄 것처럼 정교하고, 단청과 비단으로 치장하였다. 그러면서도 기대거나 의지하여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튼튼하였다. 셋째, 북루의 벽에는 매우 사실적인 한 그루의 소나무 그림이 있었다. 董越의 「朝鮮賦」8)에는 “이 나라 풍속에 그림을 거는 경우가 적다”고 기록하였는데, 당시 조선은 그림을 거는 것보다 벽에 직접 그림이나 글씨를 붙이는 付壁畵 혹은 付壁書가 더 일반적이었다. 이외에 정전 앞 돌계단에 용머리 모양의 장식이 있는데, 사신이 용머리의 움푹 파인 부분에 먹물을 담아 글을 쓰거나, 술에 취해 기단에서 떨어지기도 하였다. 넷째, 동월의 「조선부」에는 태평관 내부공간에 대한 묘사가 있다. 높이 2∼3자의 와탑과 와탑 주위 8면을 산수, 대나무, 글씨 등이 있는 병풍이 둘러져 있어 태평관은 입식을 기본으로 설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태평관의 문 밖에는 임금이 임시로 머무는 전각이 있었고, 입구는 二重門이었다.9) 이중문을 지나면, 가운데에 殿이 있고 그 뒤로 樓가 있었다. 전의 동서는 낭무를 배치하였다. 전에는 正廳을 두었는데 전반적으로 두 객관의 제도가 궁전과 같다고 하였다. 다섯째, 陳鑑과 高閏의 등루시에는 태평관의 황학이 언급되었다. 현재 멸종위기 동물인 학은 조선시대 상류층에서는 애완동물로 기르곤 하였다. 그 사례가 단원 김홍도의 「三公不換圖」에서 보인다. 그림 속의 학과 사람은 서로 피하지 않고 함께 생활하고 있다. 「동궐도」에는 박제한 학의 모습도 보인다. 학은 습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태평관의 살구나무가 있는 樓亭 주위에 학을 키우거나 박제한 학을 두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태평관은 터만 남아 있지만 명사들의 등루시를 통해 세종대 태평관 북루의 건축과 탁 트인 주변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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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1)

  1. 정은주, 조선전기 명사 영접과 기록화, 한국언어문화, 43집, 2010.12 

  2. 서동천.한동수, 조선시대 태평관과 동평관 특징, 대한건축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 27권, 1호, 2007.10 

  3. 강양, 조선전기 조명 사행외교와 교통로, 경기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3 

  4. 김경록, 조선시대 서울의 외교활동 공간, 서울학연구, 31호, 2008.5 

  5. 김종수, 조선시대 사신연 의례의 변천, 온지논총, 38집, 2014.1 

  6. 太祖.太宗.世宗實錄 (http://sillok.history.go.kr) 

  7. 東國輿地備考, 通文館志 (http://db.itkc.or.kr) 

  8. 박정혜, 궁중기록화연구, 일지사, 2005 

  9. 이상배, 서울의 누정, 서울시사편찬위원회, 2013 

  10. 김한규 역, 사조선록 역주 2.3, 소명출판, 2012 

  11. 동월 저, 김영국 역, 국역 조선부, 심미안,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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