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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상세정보

사적 제135호 부여 궁남지의 정비과정으로 살펴본 전통의 남용과 발명

The Abuse and Invention of Tradition from Maintenance Process of Historic Site No.135 Buyeo Gungnamji Pond

초록

한국 전통 연지의 시원으로 평가되는 궁남지는 "삼국사기"에 나타난 무왕의 연지 축조 기록, 사비왕궁으로 추정되는 관북리 유적 및 화지산 이궁지 남쪽에 위치한 지리적 정황에 의해 궁남지로 비정되는 한편 사적으로 지정 복원되었다. 본 연구는 궁남지의 복원정비 과정에 나타난 진정성 왜곡과 전통의 발명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되었으며, 연구의 요약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마래방죽[마천지]으로 불려왔던 궁남지는 일제 강점기 때만 해도 3만여 평의 광대한 자연 저습지의 상태로 존재했다. 궁남지 복원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홍사준은 1940년대만 해도 마래방죽에 백제시대 궁남지 유적으로 추정되는 섬과 석축시설이 남아있었고 그 위에 전각 및 정원을 조성한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전했다. 또한 화지산 이궁터의 조사 후 서동설화와 연관시켜 마래방죽을 궁남지와 동일시하는 의견을 피력하였는데, 이는 궁남지 복원정비의 이론적 근거로 작용하였다. 특히 홍사준이 제시한 스케치 도면 및 부여도엽에서 마래방죽의 형태와 규모를 엿볼 수 있었는데, 이러한 방죽의 형태는 일제 강점기에 촬영된 사진 속 상황과 근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2. 궁남지의 축소정비는 1960년대 추진된 경지정리사업에 의해 농경지로 불하되고 남은 잔여의 면적이 수습된 결과였다. 1965~67년에 있었던 최초 복원공사 이래 수차례 시행된 궁남지 정비를 통해 드러난 문제는 고고학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후대의 시각으로 추정복원 되면서 경복궁 향원지의 구성을 그대로 복제한 데 기인한다. 구체적으로, 연못 안에 섬과 정자를 놓고 교량으로 섬과 육지를 연결시키는 구성은 궁남지가 경복궁 향원정을 모델로 만들어졌음을 방증해 준다. 하지만 교량설계에 참조된 취향교 조차도 조선시대의 형식으로 보기 어려운바 당시의 잘못된 복원설계의 동기와 발상이 궁남지의 가치를 크게 저하시켰다고 판단된다. 이처럼 전통조경의 소재로서 이미 널리 알려진 디자인 전범을 그대로 모방한 것은 경복궁이 갖는 미적 표상과 기호를 지향한 것으로서, 궁남지가 그와 유사한 장소 권위를 획득하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3. 궁남지는 애초부터 진정성이 결여된 채 정비된 사적이었기 때문에 정비 과정에서 경관의 왜곡과 전통성의 남용을 통해 유적의 역사적 맥락이 과감히 표방되어 갔다. 이러한 역사 재료의 무비판적인 활용과 왜곡을 불사한 정비방식은 1960~70년대 박정희 체제에 의해 주도된 민족주의 문화정책과 맞닿아 있다. '만들어진 전통담론'의 맥락에서, 박정희 시기의 문화정책은 국민의 기억에서 이상화된 과거를 취사선택하여 그것을 가시적으로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이전의 유적을 보수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이 부각된 사적지가 전국 곳곳에 생겨나게 되었는데, 궁남지가 초기에 순수한 보존의식으로 축소되어 정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본래 공간과는 상관없는 새로운 건조물들이 들어서고 기형적으로 확장 정비되어 갔던 사실은 그러한 국가주도 문화정책의 영향이 컸다고 판단된다.

Abstract

Regarded as Korea's traditional pond, Gungnamj Pond was surmised to be "Gungnamji" due to its geological positioning in the south of Hwajisan (花枝山) and relics of the Gwanbuk-ri (官北里) suspected of being components to the historical records of Muwang (武王)'s pond of The Chronicles of the Three States [三國史記] and Sabi Palace, respectively, yet was subjected to a restoration following a designation to national historic site. This study is focused on the distortion of authenticity identified in the course of the "Gungnamji Pond" restoration and the invention of tradition, whose summarized conclusions are as follows. 1. Once called Maraebangjuk (마래방죽), or Macheonji (馬川池) Pond, Gungnamji Pond was existent in the form of a low-level swamp of vast area encompassing 30,000 pyeong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ong, Sa-jun, who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restoration of "Gungnamji Pond," said that even during the 1940s, the remains of the island and stone facilities suspected of being the relics of Gungnamji Pond of the Baekje period were found, and that the traces of forming a royal palace and garden were discovered on top of them. Hong, Sa-jun also expressed an opinion of establishing a parallel between "Gungnamji Pond" and "Maraebangjuk" in connection with a 'tale of Seodong [薯童說話]' in the aftermath of the detached palace of Hwajisan, which ultimately operated as a theoretical ground for the restoration of Gungnamj Pond. Assessing through Hong, Sa-jun's sketch, the form and scale of Maraebangjuk were visible, of which the form was in close proximity to that photograph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2. The minimized restoration of Gungnamji Pond faced deterrence for the land redevelopment project implemented in the 1960s, and the remainder of the land size is an attestment. The fundamental problem manifest in the restoration of Gungnamji Pond numerously attempted from 1964 through 1967 was the failure of basing the restorative work in the archaeological facts yet in the perspective of the latest generations, ultimately yielding a replication of Hyangwonji Pond of Gyeongbok Palace. More specifically, the methodologies employed in setting an island and a pavilion within a pond, or bridging an island with a land evidenced as to how Gungnamji Pond was modeled after Hyangwonji Pond of Gyeongbok Palace. Furthermore, Chihyanggyo (醉香橋) Bridge referenced in the designing of the bridge was hardly conceived as a form indigenous to the Joseon Dynasty, whose motivation and idea of the misguided restoration design at the time all the more devaluated Gungnamji Pond. Such an utterly pure replication of the design widely known as an ingredient for the traditional landscape was purposive towards the aesthetic symbolism and preference retained by Gyeongbok Palace, which was intended to entitle Gungnamji Pond to a physical status of the value in par with that of Gyeongbok Palace. 3. For its detachment to the authenticity as a historical site since its origin, Gungnamji Pond represented distortions of the landscape beauty and tradition even through the restorative process. The restorative process for such a historical monument, devoid of constructive use and certain of distortion, maintains extreme intimacy with the nationalistic cultural policy promoted by the Park, Jeong-hee regime through the 1960s and 1970s. In the context of the "manipulated discussions of tradition," the Park's cultural policy transformed the citizens' recollection into an idealized form of the past, further magnifying it at best. Consequently, many of the historical sites emerged as fancy and grand as they possibly could beyond their status quo across the nation, and "Gungnamji Pond" was a victim to this monopolistic government-led cultural policy incrementally sweeping away with new buildings and structures instituted reg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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