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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 중서 견평방에서 가택 칸수의 변화를 통해서 살펴본 「호구조사세칙」(1896)의 적용 양상 -1903년과 1906년의 견평방 1통에서 23통까지를 대상으로-
Application features of The detailed rules of Census (1896) through the change of house Kan numbers in Gyeonpyeong-bang, Jung-seo in Hanseong-bu -Focused on Gyeonpyeong-bang 1-tong to 23-tong in 1903 and 1906- 원문보기

건축역사연구 : 한국건축역사학회논문집 = Journal of architectural history, v.28 no.6, 2019년, pp.19 - 30  

조윤오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Abstract AI-Helper 아이콘AI-Helper

This study explores the application aspect of The detailed rules of Census (1896) through the change of Kan numbers in Gyeonpyeong-bang. Although Gyeonpyeong-bang was a high-priority area because of its location, it was difficult to trace the operation of the urban situation due to lack of data. Thi...

주제어

표/그림 (22)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한성부의 하위 행정단위는? 이 연구의 목적은 광무 연간(光武年間, 1897~1907) 한성부 호적에 나타난 가택정보를 이용하여 건양(建陽) 원년(1896)에 반포된 「호구조사세칙(戶口調査細 則)」의 적용 양상을 살피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당시의 공간과 사회를 복원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수도인 한성부(漢城府)에는 건국 초기에 하위 행정단위로 5개의 부(部)와 52개의 방(坊)을 두었다. 1894년의 갑오개혁으로 5개의 부는 5개의 서 (署)로 바뀌었고, 52방 체제는 47방 체제로 바뀌었다.
조선이 인구 통제의 수단으로 도입된 제도의 발전사는? 작통(作統)은 많은 사람이 살고, 인구 이동이 많은 도성에서 인구 통제의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서로 이웃한 주민을 하나의 단위로 묶는 인보법(隣保法)을 시행하였으며, 그 방식으로 5개의 집을 하나로 묶는 오가작통을 실시하였다.2) 거처가 없거나 부역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도성 지역에서 나타났고, 이들을 모두 통제하기에 오가작통이 부족함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 보완책으로 여러 제도들이 시도되었다.3) 세종 32년(1440)에는 5개의 집을 하나로하여 소통(小統)으로 삼고 10개의 집을 1통(統)으로 삼 는 방식이 고안되었고, 중종 21년(1526)에는 10개의 집을 하나로 묶는 십가작통이 제안되었다. 숙종 원년 (1661)에는 21개 조의 「오가작통사목(五家作統事目)」 을 반포하여, 5개의 호를 한 통으로 삼는 오가작통을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다. 그 후에 오가작통이 일정하게 정착하였다. 순조 18년(1818)에 이르러서는 오가작통과 십가작패(十家作牌)를 동시에 실시하였다.4) 이와 같이 인구통제의 수법은 계속 유동하여 왔다. 광무 연간의 신식 호적이 원칙으로 삼는「호구조사세칙」은, 오가 작통에서 드러났던 여러 가지 한계들을 수정하기 위하여 십가작통을 원칙으로 명시하였다.
조선시대의 호구조사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이 연구의 대상은 광무 연간(1897~1907)의 한성부 호적이다. 조선시대의 호구조사는 본래 각 행정단위에서 개별 가호로부터 거두어들인 호구단자(戶口單子)를 수리하여 호적을 개수(改修)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여 왔다. 그러다가 광무 연간에 들어서는 매년 호구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중앙정부가 직접 호적 양식을 발급하고, 현지에서 통수(統首)가 이를 기입하여 제출하는 방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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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6)

  1. 吉田光男, 戶籍から見た20世初頭ソウルの 人と家, 朝鮮學報, 第147輯, 1993 

  2. 吉田光男, 近世ソウル都市社會硏究, 草風館, 2009. 

  3. 서울역사박물관 편, 아스팔트 아래 운종가, 서울역사박물관, 2012 

  4. 문현주, 조선후기 漢城府에서의 戶口單子?準戶口 작성 과정에 관한 再考, 古文書硏究, 42권, 2013 

  5. 이길훈, 우동선, 계와 동으로 본 서린방의 공간과 사회, 건축역사연구, 27권, 2호, 2018 

  6. 우동선, 조윤오, 서울 입정동 일대 도시조직의 적응 유형, 대한건축학회 논문집 계획계, 34권, 7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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