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룡(趙熙龍)의 집필활동(執筆活動)과 회화심미(繪畵審美) 고찰 - 임자도(荏子島) 유배기(流配期)(1851~1853)와 관련하여...- A Study on the Jo Hee-Ryong's work in Writing and Painting's Aesthetic - In relation to the term of banishment(1851~1853) on Imja Island-원문보기
조선 후기 묵장(墨場)의 영수(領岫)로 불리었던 조희룡(趙熙龍)(1789~1866)은 양반가문 출신이었지만 스스로 여항인(閭巷人)이라고 자처하였으며, 중인(中人)들을 중심으로 벽오사(碧梧社)를 결성하여 문예 활동을 하였다. 우봉(又峯)은 "불긍거후(不肯車後)"를 전 생애를 관통하는 예술정신으로 삼았으며, 성영론(性靈論)을 내세워 감성 내지 영감을 예술의 요체로 여겨 진정(眞正)과 개성(個性)을 중시한 독창적 회화심미를 추구하였다. 60대 초반에 약 3년간의 임자도 유배기간은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정체성과 방향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기간에 "화구암란묵(畵鷗??墨)", "우해악암고(又海岳庵稿)", "수경재해외적독(壽鏡齋海外赤牘)",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 등 4권의 저술을 썼으며, 당호(堂號)가 있는 그의 회화 19점 중 "황산냉운도(荒山冷雲圖)", "방운임산수도(倣雲林山水圖)",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등 8점이 이때 제작되었다. 이들 작품을 통해 유희적(遊戱的) 속미(俗美) 정신과 수예(手藝)의 기괴(奇怪)함, 그리고 천예(天倪)의 자연스러운 회화심미를 드러내고 있다.
조선 후기 묵장(墨場)의 영수(領岫)로 불리었던 조희룡(趙熙龍)(1789~1866)은 양반가문 출신이었지만 스스로 여항인(閭巷人)이라고 자처하였으며, 중인(中人)들을 중심으로 벽오사(碧梧社)를 결성하여 문예 활동을 하였다. 우봉(又峯)은 "불긍거후(不肯車後)"를 전 생애를 관통하는 예술정신으로 삼았으며, 성영론(性靈論)을 내세워 감성 내지 영감을 예술의 요체로 여겨 진정(眞正)과 개성(個性)을 중시한 독창적 회화심미를 추구하였다. 60대 초반에 약 3년간의 임자도 유배기간은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정체성과 방향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기간에 "화구암란묵(畵鷗??墨)", "우해악암고(又海岳庵稿)", "수경재해외적독(壽鏡齋海外赤牘)",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 등 4권의 저술을 썼으며, 당호(堂號)가 있는 그의 회화 19점 중 "황산냉운도(荒山冷雲圖)", "방운임산수도(倣雲林山水圖)",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등 8점이 이때 제작되었다. 이들 작품을 통해 유희적(遊戱的) 속미(俗美) 정신과 수예(手藝)의 기괴(奇怪)함, 그리고 천예(天倪)의 자연스러운 회화심미를 드러내고 있다.
Jo, Hee-ryong(1789-1866), who was given the title of "boss of the world handling a China inkt"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from a noble family, but he claimed to be a yeohang-in himself. The byeoggyesa was formed based on Jong-in and they are engaged in literary activities. Hee-ryong Jo, "I do n...
Jo, Hee-ryong(1789-1866), who was given the title of "boss of the world handling a China inkt"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from a noble family, but he claimed to be a yeohang-in himself. The byeoggyesa was formed based on Jong-in and they are engaged in literary activities. Hee-ryong Jo, "I do not follow people's back" is the art spirit of my life. The theory of the Holy Spirit has inspired emotion or inspiration as the essence of art. He pursued original aesthetics of painting with the true nature and personality as important. During his early 60s, the period of banishment for about three years had a profound impact on the identity and direction of his art world. During this period, he wrote four volumes, including "Hwaguamlanmug", "Uhaeagamgo", "Sugyeongjaehaeoejeogdog", "Hanwaheonjehwajabjon" and among his paintings with 19 paintings, eight paintings were produced, including "Hwangsannaengundo", "Bangunlimsansudo", "Maehwaseoogdo". These works reveal the Playful sokmi sprit, the grotesque of manual dexterity, and the aesthetic of painting through the natural divergence of natural nature.
Jo, Hee-ryong(1789-1866), who was given the title of "boss of the world handling a China inkt"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from a noble family, but he claimed to be a yeohang-in himself. The byeoggyesa was formed based on Jong-in and they are engaged in literary activities. Hee-ryong Jo, "I do not follow people's back" is the art spirit of my life. The theory of the Holy Spirit has inspired emotion or inspiration as the essence of art. He pursued original aesthetics of painting with the true nature and personality as important. During his early 60s, the period of banishment for about three years had a profound impact on the identity and direction of his art world. During this period, he wrote four volumes, including "Hwaguamlanmug", "Uhaeagamgo", "Sugyeongjaehaeoejeogdog", "Hanwaheonjehwajabjon" and among his paintings with 19 paintings, eight paintings were produced, including "Hwangsannaengundo", "Bangunlimsansudo", "Maehwaseoogdo". These works reveal the Playful sokmi sprit, the grotesque of manual dexterity, and the aesthetic of painting through the natural divergence of natural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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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본 연구를 통해 고독과 불안감이 팽배했던 謫居期에 이루어진 趙熙龍의 집필활동과 회화작품의 심미 고찰을 통해 한국미술사에서의 그의 위상을 재확인·재평가하고자 한다.
이들 저술을 통해 又峯의 서화론 및 19세기 문단이나 화단의 구체적인 상황 파악, 그리고 여항인들에 대한 애정, 예술을 단순한 여흥거리 정도로만 취급했던 양반 사대부의 봉건문화에 대한 비판적 견해 등을 엿볼 수 있다. 유배기간과 관련된 저서의 주요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가설 설정
古에도 있지 않고 今에도 있지 않으니, 한 가닥 마음의 향기는 古도 아니고 今도 아닌 그 사이에서 나온 것이므로, 스스로 古를 만들고 스스로 今을 만들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이를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제안 방법
又峯의 산수화는 宋代 郭熙가 이룬 산수화 개념을 수정하여 '조선적 산수화' 특유의 감각미를 구현하였다.
又峯은 저술활동도 멈추지 않았는데, 유배 이전의 작품집으로 『一石山房小稿』 , 『壺山外記』 등이, 임자도 유배기와 관련된 책은 산문집 『畵鷗盦讕墨』 , 시집 『又海岳庵稿』 , 서간문집 『壽鏡齋海外赤牘』 , 화제 모음집 『漢瓦軒題畵雜存』 등 4권이다. 그리고 해배 이후에는 『石友忘年錄』 , 『漢瓦軒題畵雜存』 등을 저술하였다. 이들 저술을 통해 又峯의 서화론 및 19세기 문단이나 화단의 구체적인 상황 파악, 그리고 여항인들에 대한 애정, 예술을 단순한 여흥거리 정도로만 취급했던 양반 사대부의 봉건문화에 대한 비판적 견해 등을 엿볼 수 있다.
『壽鏡齋海外赤牘』 은 조선 후기의 소품문적 산문 경향의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는 서간문집이다. 유배기에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보낸 절실한 사랑과 우정, 적거지에서의 고단한 생활에 대한 토로와 부탁을 하는 편지들을 모은 글로써 추후 자신이 직접 揀選하였다. ‘壽鏡齋’란 사람이 해외에서 보낸 짧은 편지집이란 뜻이며, ‘赤牘’은 ‘尺牘’과 같은 말로 짧은 편지를 의미한다.
이 작품은 渴筆로써 약간 물결치듯 꺼칠꺼칠하게 산세를 표현한 披麻皴과 潤墨에 의한 흑점을 옆으로 뉘어 찍은 米點을 사용하여 낮은 언덕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간략한 선으로 쓸쓸하고 적막한 초옥의 모습을 簡遠하게 표현하여 전형적인 古雅한 남종문인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대상 데이터
그리고 1853년(64세) 1년 7개월 만에 해배되었고, 그해 稷下社를 결성했다. 1863년(75세)에 회고록인 『石友忘年錄』 을 저술하였으며, 말년에는 날마다 향을 피우고 『維摩經』 을 외우며 마치 불가에서 수행하듯 지내다가 1866년(78세)에 별세하였다.
25세(1813년)에 式年文科에 丙科로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五衛將을 지낸 양반 출신으로서 청·장년기부터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金正喜의 문인으로 드나들며 閭巷 藝壇에 편입되었다.
1847년(58세) 평소 碧梧堂에 모여 문예 활동을 함께하던 柳最鎭, 李基福, 吳昌烈, 田琦, 羅岐, 李八元 등의 여항출신들과 碧梧社를 결성하였고, 哲宗 2년(1851년, 62세) 憲宗의 묘를 이장하는 禮論에 연루되어 金正喜의 심복으로 지목받아 당대의 대표적 세도가문이었던 安東 金門의 공격을 받아 中人으로서는 처음으로 유배 조치되었다. 그리고 1853년(64세) 1년 7개월 만에 해배되었고, 그해 稷下社를 결성했다. 1863년(75세)에 회고록인 『石友忘年錄』 을 저술하였으며, 말년에는 날마다 향을 피우고 『維摩經』 을 외우며 마치 불가에서 수행하듯 지내다가 1866년(78세)에 별세하였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조희룡(趙熙龍)은 무엇을 자처하였는가?
조선 후기 묵장(墨場)의 영수(領岫)로 불리었던 조희룡(趙熙龍)(1789~1866)은 양반가문 출신이었지만 스스로 여항인(閭巷人)이라고 자처하였으며, 중인(中人)들을 중심으로 벽오사(碧梧社)를 결성하여 문예 활동을 하였다. 우봉(又峯)은 "불긍거후(不肯車後)"를 전 생애를 관통하는 예술정신으로 삼았으며, 성영론(性靈論)을 내세워 감성 내지 영감을 예술의 요체로 여겨 진정(眞正)과 개성(個性)을 중시한 독창적 회화심미를 추구하였다.
又峯이 가지고 있던 이중성은?
25세(1813년)에 式年文科에 丙科로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五衛將을 지낸 양반 출신으로서 청·장년기부터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金正喜의 문인으로 드나들며 閭巷 藝壇에 편입되었다. 又峯은 스스로 閭巷人임을 자처 하였는데, 사대부 가문 출신의 문인화가이면서 그보다 신분이 낮은 中人 계층의 閭巷人이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었다. 又峯의 성장과정이나 화가로서의 입문 등 50세 이전의 기록은 거의 없다.
壽鏡齋海外赤牘의 내용은 어떠한가?
『壽鏡齋海外赤牘』은 조선 후기의 소품문적 산문 경향의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는 서간문집이다. 유배기에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보낸 절실한 사랑과 우정, 적거지에서의 고단한 생활에 대한 토로와 부탁을 하는 편지들을 모은 글로써 추후 자신이 직접 揀選하였다. ‘壽鏡齋’란 사람이 해외에서 보낸 짧은 편지집이란 뜻이며, ‘赤牘’은 ‘尺牘’과 같은 말로 짧은 편지를 의미한다.
참고문헌 (5)
HeeRyong Jo, Sugyeongjaehaeoejeogdog (壽鏡齋海外赤牘)
HeeRyong Jo, Uhaeagamgo (又海岳庵稿)
HeeRyong Jo, Hanwaheonjehwajabjon (漢瓦軒題畵雜存)
HeeRyong Jo, Hwaguamlanmug (畵鷗??墨)
KyoungJa Lee(2009), A Study on the asog aesthetic of Hosan Jo, HeeRyong's Literary Artists' Paintings, A doctoral dissertation of Graduate School of Sungkyunkwan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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