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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룡(趙熙龍)의 집필활동(執筆活動)과 회화심미(繪畵審美) 고찰 - 임자도(荏子島) 유배기(流配期)(1851~1853)와 관련하여...-
A Study on the Jo Hee-Ryong's work in Writing and Painting's Aesthetic - In relation to the term of banishment(1851~1853) on Imja Island- 원문보기

Journal of the convergence on culture technology : JCCT = 문화기술의 융합, v.5 no.2, 2019년, pp.279 - 286  

김도영 (예원예술대학교 교양학부)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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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묵장(墨場)의 영수(領岫)로 불리었던 조희룡(趙熙龍)(1789~1866)은 양반가문 출신이었지만 스스로 여항인(閭巷人)이라고 자처하였으며, 중인(中人)들을 중심으로 벽오사(碧梧社)를 결성하여 문예 활동을 하였다. 우봉(又峯)은 "불긍거후(不肯車後)"를 전 생애를 관통하는 예술정신으로 삼았으며, 성영론(性靈論)을 내세워 감성 내지 영감을 예술의 요체로 여겨 진정(眞正)과 개성(個性)을 중시한 독창적 회화심미를 추구하였다. 60대 초반에 약 3년간의 임자도 유배기간은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정체성과 방향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기간에 "화구암란묵(畵鷗??墨)", "우해악암고(又海岳庵稿)", "수경재해외적독(壽鏡齋海外赤牘)",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 등 4권의 저술을 썼으며, 당호(堂號)가 있는 그의 회화 19점 중 "황산냉운도(荒山冷雲圖)", "방운임산수도(倣雲林山水圖)",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등 8점이 이때 제작되었다. 이들 작품을 통해 유희적(遊戱的) 속미(俗美) 정신과 수예(手藝)의 기괴(奇怪)함, 그리고 천예(天倪)의 자연스러운 회화심미를 드러내고 있다.

Abstract AI-Helper 아이콘AI-Helper

Jo, Hee-ryong(1789-1866), who was given the title of "boss of the world handling a China inkt"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from a noble family, but he claimed to be a yeohang-in himself. The byeoggyesa was formed based on Jong-in and they are engaged in literary activities. Hee-ryong Jo, "I do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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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본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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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 본 연구를 통해 고독과 불안감이 팽배했던 謫居期에 이루어진 趙熙龍의 집필활동과 회화작품의 심미 고찰을 통해 한국미술사에서의 그의 위상을 재확인·재평가하고자 한다.
  • 이들 저술을 통해 又峯의 서화론 및 19세기 문단이나 화단의 구체적인 상황 파악, 그리고 여항인들에 대한 애정, 예술을 단순한 여흥거리 정도로만 취급했던 양반 사대부의 봉건문화에 대한 비판적 견해 등을 엿볼 수 있다. 유배기간과 관련된 저서의 주요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자.

가설 설정

  • 에도 있지 않고 今에도 있지 않으니, 한 가닥 마음의 향기는 古도 아니고 今도 아닌 그 사이에서 나온 것이므로, 스스로 古를 만들고 스스로 今을 만들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이를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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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조희룡(趙熙龍)은 무엇을 자처하였는가? 조선 후기 묵장(墨場)의 영수(領岫)로 불리었던 조희룡(趙熙龍)(1789~1866)은 양반가문 출신이었지만 스스로 여항인(閭巷人)이라고 자처하였으며, 중인(中人)들을 중심으로 벽오사(碧梧社)를 결성하여 문예 활동을 하였다. 우봉(又峯)은 "불긍거후(不肯車後)"를 전 생애를 관통하는 예술정신으로 삼았으며, 성영론(性靈論)을 내세워 감성 내지 영감을 예술의 요체로 여겨 진정(眞正)과 개성(個性)을 중시한 독창적 회화심미를 추구하였다.
又峯이 가지고 있던 이중성은? 25세(1813년)에 式年文科에 丙科로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五衛將을 지낸 양반 출신으로서 청·장년기부터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金正喜의 문인으로 드나들며 閭巷 藝壇에 편입되었다. 又峯은 스스로 閭巷人임을 자처 하였는데, 사대부 가문 출신의 문인화가이면서 그보다 신분이 낮은 中人 계층의 閭巷人이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었다. 又峯의 성장과정이나 화가로서의 입문 등 50세 이전의 기록은 거의 없다.
壽鏡齋海外赤牘의 내용은 어떠한가? 『壽鏡齋海外赤牘』은 조선 후기의 소품문적 산문 경향의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는 서간문집이다. 유배기에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보낸 절실한 사랑과 우정, 적거지에서의 고단한 생활에 대한 토로와 부탁을 하는 편지들을 모은 글로써 추후 자신이 직접 揀選하였다. ‘壽鏡齋’란 사람이 해외에서 보낸 짧은 편지집이란 뜻이며, ‘赤牘’은 ‘尺牘’과 같은 말로 짧은 편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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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5)

  1. HeeRyong Jo, Sugyeongjaehaeoejeogdog (壽鏡齋海外赤牘) 

  2. HeeRyong Jo, Uhaeagamgo (又海岳庵稿) 

  3. HeeRyong Jo, Hanwaheonjehwajabjon (漢瓦軒題畵雜存) 

  4. HeeRyong Jo, Hwaguamlanmug (畵鷗??墨) 

  5. KyoungJa Lee(2009), A Study on the asog aesthetic of Hosan Jo, HeeRyong's Literary Artists' Paintings, A doctoral dissertation of Graduate School of Sungkyunkwan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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