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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는 문학사기술이나 비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전통철학에서 은유는 세계를 해석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가져오기보다는 단순한 장식적 표현으로 보아왔다. 그러나 최근에 철학에서도 은유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있다. 우리는 이 경향을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서양학문에서 은유는 수사학과 시학에 기초한 문예비평에서 주로 다루어졌는데 라깡은 언어과학을 토대로 재무장한 정신분석학을 통해 은유를 의미세계의 전변에 동장시킴으로써 은유에 대해 새롭게 사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우선 은유는 이미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정신분석학에서 이미지에 대한 주목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부터 나타난다. 프로이트는 꿈이미지의 형상적 특성에 주목하면서 이미지의 압축, 전치 동을 통해 꿈의 왜곡 기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라깡은 이미지의 문자적 기능을 강조하면서 꿈이미지를 상상계에 침투한 기표들의 놀이로 본다. 즉 이미지를 기표로 해석하면서 은유의 기능이 드러나는 것이다. 언어학적 전회 이후로 라깡은 이미지보다는 은유와 환유같은 문체론적 장치들에 기초하여 의미의 생성을 탐구한다. 이 장치들은 상징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데 특히 언어로부터 욕망이나 결핍, 아버지의 은유처럼 인간과 사회를 추동하는 궁극적인 힘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나 라깡의 정신분석학이 과연 언어학에 기초하는가 아니면 그 일부에 해당하는, 혹은 전통적으로 수사학의 영역으로 불리던 문체론에 기초하는가 하는 것은 문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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