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0년에서 1610년 사이에 상연된 영국극작품 가운데 26개의 극작품에 51명의 유령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 중 36명의 유령들이 복수극에 등장하고 있다. 가장 장 알려진 영국 복수극의 하나인 토마스 키드의 『스페인의 비극』에서 앤드리아의 유령이 나타나 그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종용하고 있으며, 셰익스피어의 『햄릿』 역시 유령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고 있다. 『햄릿』 1막의 850행 중 550행이 유령과 관련된 대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1막의 5장 중 제3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령과 관련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그만큼 유령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햄릿』에서 유령은 극의 전개에 부차적인 인물이 아니라, 클로디어스의 죄를 드러내고 극의 신비감을 조성하면서 주인공 햄릿의 행동에 깊이 관여하는 중요한 극중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유령은 복수를 둘러싼 셰익스피어 시대의 윤리와 종교, 그리고 사회적 인식을 드러내 주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하기도 한다.

『햄릿』의 유령에 대한 평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바텐하우스는 유령을 명부 혹은 지옥으로부터 출현한 존재로 간주하고, 윌슨은 유령을 연옥에서 나타난 혼령이라고 간주한다. 전자는 유령을 악령으로 간주하는 신교적 반응을 압축하며, 후자는 유령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상에 출현한 구원받은 혼령으로 간주하는 구교적 반응을 요약한다. 그러나 유령의 존재를 규명하기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유령은 주인공 햄릿에게 ‘마음을 더럽힐 수 있는’ 잔인한 복수를 명하는가 하면, “마음을 더럽히거나, 영혼을 해치면서 어머니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이율배반적인 명령을 한다(1막 5장). 햄릿도 유령이 “천상의 영기를 가져오는 천사(a spirit of health)인지, 지옥의 독기를 몰고 오는 저주 받은 악령(goblin damned)”인지를 의심한다(1악 4장). 이렇듯 유령의 존재와 성격은 애매한 점이 적지 않고, 이와 동시에 이율배반적인 유령의 명령은 햄릿의 복수지연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본 논문은 복수극에서 유령의 역할과 비중을 간략하게 개괄하고, 『햄릿』이란 극작품에 나타난 유령의 성격과 역할과 기능을 논의의 초점으로 삼는다. 이를 위하여 유령의 존재에 대한 셰익스피어 시대인들의 견해를 참조하며 유령의 실체에 대한 평자들의 견해를 참조한다. 나아가 유령의 모호성이 어떤 방식으로 햄릿이란 주인공의 복수지연 행위와 연결되고 있는가를 논의하고, 유령의 존재를 통하여 셰익스피어가 시사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