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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조선조 후기의 사회는 봉건주의의 모순과 지배층의 분열, 예학의 의식화, 성리학의 관념화로 극도로 혼란하였으며, 정치적 기강 또한 불안한 상황이었다. 任辰.丙子의 兩亂을 치른 후 사회적 혼란이 거듭되고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났으나, 그에 대한 反動으로 反省과 批判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實學이라는 새로운 學風이 時代的 必然性을 지니고 일어나게 되면서 文化의 安定과 發展이 시작된다. 경세치용(經世治用).이용후생(利用厚生).실사구시(實事求是)의 새로운 實學情神은 경시하던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을 불러 일으켰으며 自己發見을 위한 反省과 再創造의 機會를 주었다. 實學은 곧 농. 공. 상에 관한 학문이었으니 서민들의 경제가 발전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숙종조에는 문학면에서 세종조 이래로 천시되던 우리말인 언문을 사용한 서민들의 문학이 발생하였다. 또한 회화면에서는 실증적인 사고에 의하여 우리 것을 주체적으로 인식하고 애착을 갖음으로써 중국 산수화의 정형에서 벗어나 산수화가 출현하게 되고,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꾸밈없이 묘사하는 風俗畵가 유행하게 된다. 조선조 후지 風俗畵는 세 가지의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절대왕권과 봉건체제하에서 억눌린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의 휴머니즘 예술이라는 점니다. 또 하나는 중국의 예술을 모방만 하던 단계에서 우리 것을 찾자는 주체적 자아관념의 예술이라는 점이다. 부정적인 관점에서 그 시대의 풍속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서민의 삶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으며 그들의 힘들고 고된 삶을 해학과 풍자로 표현하고 있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서민 생활을 소재로 삼아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과 이러한 소재들을 기존의 화보나 모방에 따르지 않고 진경산수화와 마찬가지로 사생에 의하여 작품화하였다는 점, 그리고 당시의 전통산수화에서 신경을 쓰지 않았던 여백을 화면구성의 한 요소로 사용한 점은 풍속화가 오늘날까지 대중에게 친근감을 주는 중요한 이유들이다. 풍속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양반 사대부가 아닌 서민과 하층계급이 주를 이루어 이들이 나타내는 해학적인 골계미는 한국적인 정취를 더욱 짙게 해주고 있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와 함께 김홍도와 김득신, 신윤복에 의해 주도된 풍속화는 그 시대의 생활풍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들이다.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주로 그리면서 김홍도가 서민들의 애정 ...
저자 | 유미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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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수여기관 | 水原大學校 敎育大學院 |
학위구분 | 국내석사 |
학과 | 美術敎育專攻 |
발행연도 | 1999 |
총페이지 | ii, 68 p. |
언어 | kor |
원문 URL | http://www.riss.kr/link?id=T8954116&outLink=K |
정보원 | 한국교육학술정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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