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전쟁" 또는 "야웨 전쟁"은 그 개념에서 두 가지로 나뉘어짐을 살펴보았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전후에서 지휘하시고, 지지해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전쟁과 또 하나는 후대에 재 해석되어진 것으로 실재 역사적인 전쟁과는 거리가 있는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에서 각 학자들은 제의적인 관점에서 축제적인 의미의 전쟁 이데올로기로 보는가 하면, 역사적인 실제로서의 전쟁으로 보기도하고, 고대 근동의 신들의 전쟁에 영향을 받은 사건으로 이해하기 하였다. "거룩한 전쟁"이 성서에서 시대별로 나타나는 특징에서는 고대로 갈수록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하심을 강조하고 있으며, 후대로 갈수록 하나님의 전두지휘에서 후방 지원과 전쟁의 재가로 인간의 역할이 더 많아지고 있다.. 전쟁에 있어서 특징은 이스라엘의 방어적 개념의 전쟁과 생존권이 달린 전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패배에 있어서 관심을 두시기보다 인간들의 순종과 하나님을 경외함과 악을 떠남에 더 관심을 두고 계시다. 전쟁을 행할 때에는 먼저 하나님의 신언을 구하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법궤나 깃발을 사용하였으며, 전리품은 하나님께 드려지고 때로는 이스라엘의 군대와 백성, 제사장에게 나누어 분대하였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전쟁에 있어서, 헤렘 사상에 입각한 전멸시키라는 말씀이 가나안 지역에만 국한되어지며 당시의 "거룩한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만 인정되었던 특수상황이었기에 현대에 있어서는 그 적용이 이루어 질수 없다. 헤렘 사상이 주는 진멸과 아울러 전쟁은 생명과 재산을 파괴한다. 과거의 재래적 싸움에서 현대전으로의 전환은 전쟁이 국지전이 아닌 세계전으로 돌입하며, 국가와 국가의 다툼에서 모든 국가의 다툼으로 야기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쟁의 당위성의 논란에 있어 이견들로서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들과 평화주의자들, 핵 평화주의자들을 거론하였다. 일반적으로 헤렘이라는 말은 특수한 상황에서 주어진 "전멸"사상이라고 말을 하나 본인은 헤렘의 어원의 사용을 살펴 모든 곳에서 파괴와 죽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하였다. 즉 때로는 봉헌으로, 때로는 신체적 장애를 표현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신명기와 여호수아에서 특별히 많이 나오는 이 단어가 민수기 21장에서는 아모리 왕 시혼과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한 것으로만 이야기하나 신명기에서는 모세가 회상하며 설교하는 가운데 힘없는 노인과 유아까지 "진멸"시켰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호수아에서도 가나안 6족속을 진멸한 것으로 이야기 하나 사사기에는 그 족속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순종의 여부를 시험하시고자 남겨두셨다고 하는 대목은 단순히 헤렘이라는 사상이 "호흡이 있는 자"를 몰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봉헌과 드려짐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유출해 내었다. 전쟁은 성서에서 상고하여 볼 때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모두 하나님의 긍정적 재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상에서 출발한 전쟁의 입장은 다양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데 어찌하여 죽음의 슬픔을 용납하시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이러한 질문은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으로 정의하고 그러한 틀에 하나님을 묶어두고 인간의 슬픔의 이유를 그 틀에 맞추어 알고자 하는데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말처럼 전쟁은 죄악이 아니라 죄의 결과물이다. 즉 전쟁이 인간의 여타 다른 죄들로 인해 발생하는 살인, 방화, 약탈, 강간, 사기 등의 결과물처럼 인간의 죄된 모습의 또 다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악의 관영함"을 인하여 발생되어지는 징벌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오는 저주처럼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오는 징벌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전쟁을 통해 우리에게 우리의 악한 모습을 보게 하시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게 하신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경고와 사랑의 편지로서 성서를 통해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신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
"거룩한 전쟁" 또는 "야웨 전쟁"은 그 개념에서 두 가지로 나뉘어짐을 살펴보았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전후에서 지휘하시고, 지지해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전쟁과 또 하나는 후대에 재 해석되어진 것으로 실재 역사적인 전쟁과는 거리가 있는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에서 각 학자들은 제의적인 관점에서 축제적인 의미의 전쟁 이데올로기로 보는가 하면, 역사적인 실제로서의 전쟁으로 보기도하고, 고대 근동의 신들의 전쟁에 영향을 받은 사건으로 이해하기 하였다. "거룩한 전쟁"이 성서에서 시대별로 나타나는 특징에서는 고대로 갈수록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하심을 강조하고 있으며, 후대로 갈수록 하나님의 전두지휘에서 후방 지원과 전쟁의 재가로 인간의 역할이 더 많아지고 있다.. 전쟁에 있어서 특징은 이스라엘의 방어적 개념의 전쟁과 생존권이 달린 전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패배에 있어서 관심을 두시기보다 인간들의 순종과 하나님을 경외함과 악을 떠남에 더 관심을 두고 계시다. 전쟁을 행할 때에는 먼저 하나님의 신언을 구하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법궤나 깃발을 사용하였으며, 전리품은 하나님께 드려지고 때로는 이스라엘의 군대와 백성, 제사장에게 나누어 분대하였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전쟁에 있어서, 헤렘 사상에 입각한 전멸시키라는 말씀이 가나안 지역에만 국한되어지며 당시의 "거룩한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만 인정되었던 특수상황이었기에 현대에 있어서는 그 적용이 이루어 질수 없다. 헤렘 사상이 주는 진멸과 아울러 전쟁은 생명과 재산을 파괴한다. 과거의 재래적 싸움에서 현대전으로의 전환은 전쟁이 국지전이 아닌 세계전으로 돌입하며, 국가와 국가의 다툼에서 모든 국가의 다툼으로 야기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쟁의 당위성의 논란에 있어 이견들로서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들과 평화주의자들, 핵 평화주의자들을 거론하였다. 일반적으로 헤렘이라는 말은 특수한 상황에서 주어진 "전멸"사상이라고 말을 하나 본인은 헤렘의 어원의 사용을 살펴 모든 곳에서 파괴와 죽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하였다. 즉 때로는 봉헌으로, 때로는 신체적 장애를 표현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신명기와 여호수아에서 특별히 많이 나오는 이 단어가 민수기 21장에서는 아모리 왕 시혼과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한 것으로만 이야기하나 신명기에서는 모세가 회상하며 설교하는 가운데 힘없는 노인과 유아까지 "진멸"시켰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호수아에서도 가나안 6족속을 진멸한 것으로 이야기 하나 사사기에는 그 족속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순종의 여부를 시험하시고자 남겨두셨다고 하는 대목은 단순히 헤렘이라는 사상이 "호흡이 있는 자"를 몰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봉헌과 드려짐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유출해 내었다. 전쟁은 성서에서 상고하여 볼 때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모두 하나님의 긍정적 재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상에서 출발한 전쟁의 입장은 다양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데 어찌하여 죽음의 슬픔을 용납하시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이러한 질문은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으로 정의하고 그러한 틀에 하나님을 묶어두고 인간의 슬픔의 이유를 그 틀에 맞추어 알고자 하는데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말처럼 전쟁은 죄악이 아니라 죄의 결과물이다. 즉 전쟁이 인간의 여타 다른 죄들로 인해 발생하는 살인, 방화, 약탈, 강간, 사기 등의 결과물처럼 인간의 죄된 모습의 또 다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악의 관영함"을 인하여 발생되어지는 징벌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오는 저주처럼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오는 징벌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전쟁을 통해 우리에게 우리의 악한 모습을 보게 하시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게 하신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경고와 사랑의 편지로서 성서를 통해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신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사 55:1-13)
"거룩한 전쟁" 또는 "야웨 전쟁"은 그 개념에서 두 가지로 나뉘어짐을 살펴보았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전후에서 지휘하시고, 지지해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전쟁과 또 하나는 후대에 재 해석되어진 것으로 실재 역사적인 전쟁과는 거리가 있는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에서 각 학자들은 제의적인 관점에서 축제적인 의미의 전쟁 이데올로기로 보는가 하면, 역사적인 실제로서의 전쟁으로 보기도하고, 고대 근동의 신들의 전쟁에 영향을 받은 사건으로 이해하기 하였다. "거룩한 전쟁"이 성서에서 시대별로 나타나는 특징에서는 고대로 갈수록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하심을 강조하고 있으며, 후대로 갈수록 하나님의 전두지휘에서 후방 지원과 전쟁의 재가로 인간의 역할이 더 많아지고 있다.. 전쟁에 있어서 특징은 이스라엘의 방어적 개념의 전쟁과 생존권이 달린 전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에서의 승리와 패배에 있어서 관심을 두시기보다 인간들의 순종과 하나님을 경외함과 악을 떠남에 더 관심을 두고 계시다. 전쟁을 행할 때에는 먼저 하나님의 신언을 구하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법궤나 깃발을 사용하였으며, 전리품은 하나님께 드려지고 때로는 이스라엘의 군대와 백성, 제사장에게 나누어 분대하였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전쟁에 있어서, 헤렘 사상에 입각한 전멸시키라는 말씀이 가나안 지역에만 국한되어지며 당시의 "거룩한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만 인정되었던 특수상황이었기에 현대에 있어서는 그 적용이 이루어 질수 없다. 헤렘 사상이 주는 진멸과 아울러 전쟁은 생명과 재산을 파괴한다. 과거의 재래적 싸움에서 현대전으로의 전환은 전쟁이 국지전이 아닌 세계전으로 돌입하며, 국가와 국가의 다툼에서 모든 국가의 다툼으로 야기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쟁의 당위성의 논란에 있어 이견들로서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들과 평화주의자들, 핵 평화주의자들을 거론하였다. 일반적으로 헤렘이라는 말은 특수한 상황에서 주어진 "전멸"사상이라고 말을 하나 본인은 헤렘의 어원의 사용을 살펴 모든 곳에서 파괴와 죽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 하였다. 즉 때로는 봉헌으로, 때로는 신체적 장애를 표현하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신명기와 여호수아에서 특별히 많이 나오는 이 단어가 민수기 21장에서는 아모리 왕 시혼과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한 것으로만 이야기하나 신명기에서는 모세가 회상하며 설교하는 가운데 힘없는 노인과 유아까지 "진멸"시켰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호수아에서도 가나안 6족속을 진멸한 것으로 이야기 하나 사사기에는 그 족속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순종의 여부를 시험하시고자 남겨두셨다고 하는 대목은 단순히 헤렘이라는 사상이 "호흡이 있는 자"를 몰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봉헌과 드려짐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유출해 내었다. 전쟁은 성서에서 상고하여 볼 때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모두 하나님의 긍정적 재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상에서 출발한 전쟁의 입장은 다양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데 어찌하여 죽음의 슬픔을 용납하시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이러한 질문은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으로 정의하고 그러한 틀에 하나님을 묶어두고 인간의 슬픔의 이유를 그 틀에 맞추어 알고자 하는데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말처럼 전쟁은 죄악이 아니라 죄의 결과물이다. 즉 전쟁이 인간의 여타 다른 죄들로 인해 발생하는 살인, 방화, 약탈, 강간, 사기 등의 결과물처럼 인간의 죄된 모습의 또 다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악의 관영함"을 인하여 발생되어지는 징벌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오는 저주처럼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오는 징벌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전쟁을 통해 우리에게 우리의 악한 모습을 보게 하시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게 하신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경고와 사랑의 편지로서 성서를 통해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신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사 5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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