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신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존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개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먼저 하나님의 형상론을 통하여 인간의 본래적 형상에 대하여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죄론에서 전적부패, 전적무능의 상태인 원죄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칭의와 중생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그들 속에는 여전히 어느 정도 영혼의 부패성과 무능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서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즉 칭의 중생으로 모든 죄가 도말되고 이겐 하나님의 자녀로 죄가 없는 상태라고 인식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지금까지 신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존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개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먼저 하나님의 형상론을 통하여 인간의 본래적 형상에 대하여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죄론에서 전적부패, 전적무능의 상태인 원죄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칭의와 중생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그들 속에는 여전히 어느 정도 영혼의 부패성과 무능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서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즉 칭의 중생으로 모든 죄가 도말되고 이겐 하나님의 자녀로 죄가 없는 상태라고 인식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중생한 자 속에 남아 있는 본성의 부패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 장에서 영혼의 부패성을 제거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완전을 받는 자의 영혼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하였고, 이 믿음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 믿음으로 관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살펴본 것이 완전을 묘사하는 부정적 표현과 긍정적 표현들을 살펴보면서 완전의 정의를 내려 보았다. 즉,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중생한 사람에게 남아 있던 어느 정도의 영혼의 부패성마저 깨끗이 제거되어서 영혼의 이해력과 의지와 정서와 자유가 온전히 의와 진정한 거룩 안에서 기능하며 그래서 그 영혼의 부패성에서 비롯되었던 어느 정도의 불신앙과 교만 및 자기의지와 세상 사랑이라는 악한 기질들이 전혀 나오지 않으며, 그 반대로 오직 믿음과 겸손 및 순종과 하나님 사랑이라는 기질만이 나오는 상태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완전 상태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완전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며, 매일 자기 자신을 부인하며, 금식을 하며, 은혜의 수단을 철저히 준행하면서 완전을 얻게 하는 믿음을 달라고 간절히 끈기 있게 구하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할 때 완전은 언제 이루어지는가?에서 살펴보았듯이, 믿음 즉, 하나님이 주시는 자명성과 그에 의하여 확실하게 인식함을 뜻하는 이 믿음을 한 순간에 주시고, 따라서 이 믿음이 가져오는 그 구원(완전)도 한 순간에 주어지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관전을 얻은 자의 증거에서 자각증거로는 칭의 후 내적 죄에 대한 더 깊고 선명한 깨달음과 점진적인 죽음 그리고 그 죄에 대한 완전한 죽음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형상 안에서 완전히 새로워짐을 체험하고 그리하여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 하게 되는 때가 바로 완전의 상태임을 살펴보았다. 그 다음으로 완전에 대한 오해를 살펴보았는데, 일반적으로 완전이라고 하면, 사전적 의미로 인식 하는 경향들이 있어 오해하는 것 같고, 웨슬리의 완전 개념에 대하여 바로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완전에 대한 해석의 오류들에서는 이신칭의에 대한 오해와 오류, 그리고 그로 인하여 발생한 부작용들을 살펴보았고, 또한 타교단들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반응의 이치에 대한 오해들을 살펴보면서, 실예로 감신대 김홍기교수의 복음주의적 신인협동설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웨슬리가 말하는 완전에 이르는 조건과 김교수가 말하는 완전성화의 조건이 상이함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완전 개념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그 핵심에 믿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칭의, 중생 때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처럼 믿음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성화의 단계에 들어서면 믿음과 선행이 함께 하여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칭의, 중생 때도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완전에 들어갈 때에도 오직 믿음뿐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오해가 야기된 것은 바로 믿음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즉, 칭의 중생 때에 받는 믿음은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들어갈 때 받는 믿음은 어떠한 것인지? 를 정확히 알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이 지면을 통하여 다시 한번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웨슬리가 말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이 말씀의 창조적 능력을 통하여 영혼의 이해력의 직관을 열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들에 관하여 자명하게 알게 하심으로써 이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게 된 영혼의 상태를 의미 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죄 하에 있는 인간의 영혼이, 즉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의 상태에 있는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건짐을 받고 칭의와 중생을 받을 때 이 믿음이 필요한데, 이때의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의 기능 가운데 이해력에 빛을 비춰 주셔서 이해력의 눈을 열어주사 직관력을 회복시켜주신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칭의와 중생 때 영혼의 이해력의 눈이 열려 정상적으로 작동하므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인식하여 그 내용을 의지와 정서에 제공하기 때문에 동시에 의지와 정서도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본래의 기능이 회복되는 것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하나님이 그들의 가슴(=영혼)을 믿음으로써 깨끗케 하신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중생한 자의 영혼에 남아 있는 부패성을 깨끗이 제거하면서 완전을 얻게 하는 것도 오직 믿음이라고 했다. 그러면, 완전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이미 중생자의 완전에서 살펴보았듯이 중생자의 경우 이미 칭의 시에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면서 영혼의 이해력의 눈을 열어 빛을 비춘 상태이기 때문에, 완전을 주실 때, 또 다시 이해력의 눈을 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오직 한 가지만을 바라보는 눈(a single eye)을 주신다. 즉 이해력의 눈이 이제는 완전히 오직 하나님께만 고정되어 하나님만을 알아보는 직관을 주셔서 그들의 가슴을 믿음으로써 깨끗케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원죄 하에 있는 인간의 영혼을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으로부터 건지면서 칭의와 중생을 받게 하는 것도 오직 믿음이요, 중생한 자의 영혼에 남아 있는 부패성을 깨끗이 제거하면서 완전을 얻게 하는 것도 오직 믿음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감리교단내에서 신인협통설 또는 복음적 신인협동설을 주장하는 것은 웨슬리의 믿음 개념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이며, 웨슬리의 인간론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믿음은 인간 자신 속에서 나오는 여하한 지식도 아니고, 의지의 결단도 아니고, 정서적 느낌도 아니며, 전인격적인 무엇도 아닌 것이다. 바라기는 감리교단이 믿음으로 바로 세워지길 소망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진정한 믿음으로 다시 세워지길 소망한다.
지금까지 신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존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개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먼저 하나님의 형상론을 통하여 인간의 본래적 형상에 대하여 살펴보았고, 다음으로 죄론에서 전적부패, 전적무능의 상태인 원죄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칭의와 중생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그들 속에는 여전히 어느 정도 영혼의 부패성과 무능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서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즉 칭의 중생으로 모든 죄가 도말되고 이겐 하나님의 자녀로 죄가 없는 상태라고 인식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중생한 자 속에 남아 있는 본성의 부패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 장에서 영혼의 부패성을 제거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완전을 받는 자의 영혼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하였고, 이 믿음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 믿음으로 관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살펴본 것이 완전을 묘사하는 부정적 표현과 긍정적 표현들을 살펴보면서 완전의 정의를 내려 보았다. 즉,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란 중생한 사람에게 남아 있던 어느 정도의 영혼의 부패성마저 깨끗이 제거되어서 영혼의 이해력과 의지와 정서와 자유가 온전히 의와 진정한 거룩 안에서 기능하며 그래서 그 영혼의 부패성에서 비롯되었던 어느 정도의 불신앙과 교만 및 자기의지와 세상 사랑이라는 악한 기질들이 전혀 나오지 않으며, 그 반대로 오직 믿음과 겸손 및 순종과 하나님 사랑이라는 기질만이 나오는 상태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완전 상태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완전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며, 매일 자기 자신을 부인하며, 금식을 하며, 은혜의 수단을 철저히 준행하면서 완전을 얻게 하는 믿음을 달라고 간절히 끈기 있게 구하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할 때 완전은 언제 이루어지는가?에서 살펴보았듯이, 믿음 즉, 하나님이 주시는 자명성과 그에 의하여 확실하게 인식함을 뜻하는 이 믿음을 한 순간에 주시고, 따라서 이 믿음이 가져오는 그 구원(완전)도 한 순간에 주어지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관전을 얻은 자의 증거에서 자각증거로는 칭의 후 내적 죄에 대한 더 깊고 선명한 깨달음과 점진적인 죽음 그리고 그 죄에 대한 완전한 죽음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형상 안에서 완전히 새로워짐을 체험하고 그리하여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 하게 되는 때가 바로 완전의 상태임을 살펴보았다. 그 다음으로 완전에 대한 오해를 살펴보았는데, 일반적으로 완전이라고 하면, 사전적 의미로 인식 하는 경향들이 있어 오해하는 것 같고, 웨슬리의 완전 개념에 대하여 바로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완전에 대한 해석의 오류들에서는 이신칭의에 대한 오해와 오류, 그리고 그로 인하여 발생한 부작용들을 살펴보았고, 또한 타교단들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반응의 이치에 대한 오해들을 살펴보면서, 실예로 감신대 김홍기교수의 복음주의적 신인협동설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웨슬리가 말하는 완전에 이르는 조건과 김교수가 말하는 완전성화의 조건이 상이함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완전 개념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그 핵심에 믿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칭의, 중생 때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처럼 믿음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성화의 단계에 들어서면 믿음과 선행이 함께 하여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칭의, 중생 때도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완전에 들어갈 때에도 오직 믿음뿐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오해가 야기된 것은 바로 믿음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즉, 칭의 중생 때에 받는 믿음은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들어갈 때 받는 믿음은 어떠한 것인지? 를 정확히 알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이 지면을 통하여 다시 한번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웨슬리가 말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이 말씀의 창조적 능력을 통하여 영혼의 이해력의 직관을 열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들에 관하여 자명하게 알게 하심으로써 이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게 된 영혼의 상태를 의미 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죄 하에 있는 인간의 영혼이, 즉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의 상태에 있는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건짐을 받고 칭의와 중생을 받을 때 이 믿음이 필요한데, 이때의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의 기능 가운데 이해력에 빛을 비춰 주셔서 이해력의 눈을 열어주사 직관력을 회복시켜주신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칭의와 중생 때 영혼의 이해력의 눈이 열려 정상적으로 작동하므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인식하여 그 내용을 의지와 정서에 제공하기 때문에 동시에 의지와 정서도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본래의 기능이 회복되는 것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하나님이 그들의 가슴(=영혼)을 믿음으로써 깨끗케 하신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중생한 자의 영혼에 남아 있는 부패성을 깨끗이 제거하면서 완전을 얻게 하는 것도 오직 믿음이라고 했다. 그러면, 완전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이미 중생자의 완전에서 살펴보았듯이 중생자의 경우 이미 칭의 시에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면서 영혼의 이해력의 눈을 열어 빛을 비춘 상태이기 때문에, 완전을 주실 때, 또 다시 이해력의 눈을 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오직 한 가지만을 바라보는 눈(a single eye)을 주신다. 즉 이해력의 눈이 이제는 완전히 오직 하나님께만 고정되어 하나님만을 알아보는 직관을 주셔서 그들의 가슴을 믿음으로써 깨끗케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원죄 하에 있는 인간의 영혼을 전적 부패와 전적 무능으로부터 건지면서 칭의와 중생을 받게 하는 것도 오직 믿음이요, 중생한 자의 영혼에 남아 있는 부패성을 깨끗이 제거하면서 완전을 얻게 하는 것도 오직 믿음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감리교단내에서 신인협통설 또는 복음적 신인협동설을 주장하는 것은 웨슬리의 믿음 개념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이며, 웨슬리의 인간론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믿음은 인간 자신 속에서 나오는 여하한 지식도 아니고, 의지의 결단도 아니고, 정서적 느낌도 아니며, 전인격적인 무엇도 아닌 것이다. 바라기는 감리교단이 믿음으로 바로 세워지길 소망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진정한 믿음으로 다시 세워지길 소망한다.
주제어
#존 웨슬리 구원론 그리스도인 완전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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