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단체들이 한국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세계선교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개혁주의 교회론에 비추어 볼 때 분명한 문제가 있는 선교단체도 있다는 것이다. 개혁주의자들의 연합과 분리의 원칙에 의한다면 선교단체의 교회론의 문제는 시정되어야 한다. 칼뱅의 종교개혁 당시의 로마교회는 그 교리가 부패하였다. 교황 수위권 등 성경과 전혀 무관한 교리를 주장하였기에 분리를 주장한 것이다. 차병준, “교회와 선교단체의 유기적인 관계성 연구” (신학석사학위논문, 아세아연합신학대 신학대학원, 2000) 35. 하지만 한국교회가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면 선교단체와 지역교회와의 분리를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선교단체는 종교개혁자들의 분리와 연합의 원칙을 잘 살피어 바른 교회론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김영철은 ‘대부분의 지역교회는 선교단체에 대해서 생각할 때 선교단체가 지역교회는 아니지만 지역교회와 더불어 존재하는 기관으로서 지역교회 사명의 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기관들이라고 인정한다.’ 김영철 66. 고 말한다. 실제로 선교단체들이 지역교회가 해야 할 복음전도사역 활성화나 체계 있는 성경공부를 통한 교육사역의 전문화로 지역교회에 도전을 주고 협력도 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선교사역의 전문화로 빠르고 정확한 정보와 축적된 노하우를 필요로 할 때나 선교 불모지에 대한 복음전파사역에서는 지역교회보다 선교단체가 그런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지역교회도 선교단체의 필요성과 역할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말이다. 지역교회와 선교단체는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충 혹은 보완관계가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역에 있어서는 각 문화 단위마다 전문적 복음화 전략과 구조가 필요하다.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각 분야들에 대해서 지역교회가 그 모든 분야들을 감당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부 대형교회를 제외하고는 지역성을 극복하는데도 실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역교회 중심의 선교운동들이 캠퍼스 내에서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인 집회 형태인 회중적 기능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다양한 구성원들로 구성된 지역교회는 특정대상의 복음화에 필요한 경험 있는 전문 인력과 전략적 안목을 갖추기 어렵다. 특정 대상의 복음화는 그 속에 있는 구성원에 의해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 즉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이, 외국인은 외국인이, 대학생은 대학생이, 서로 간의 문화적 갈등 없이 일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에게는 외국인을 전문으로 하는 해외 선교단체가 필요하며, 학생들에게는 학생들을 전문으로 하는 학생 선교단체가 필요하다. 선교단체를 지역교회라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는 지역교회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지역교회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선교단체에서는 지역교회의 모순을 들어 공격하며 진정한 지역교회는 어떤 건물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이라고 하여 반 지역교회적 색체까지 띤 단체도 있다. 선교단체에서 이루어지는 훈련은 개방적이기보다는 폐쇄적이고 인격적이기보다는 기능적이고 목회적이기보다는 의식화 교육식이어서 교조화되고 도식화된 제자를 배출할 경향성이 짙다. 때문에 인격적으로 교육하는데 실패하기가 쉽다. 그러나 제자훈련은 새로운 인격의 형성이지 세뇌는 아닌 것이다. 지역교회의 목회자는 개교회 성장위주의 자세를 지양해야 한다. 일부 대형교회들이 선교를 위한 연합운동에 저해요인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지역교회는 선교한다. 그러나 선교단체도 선교한다. 선교기관은 지역교회의 선교를 도와야 하며 위임을 받은 것을 가장 효과적인 선교기관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바, 주님이 오실 그때를 지역교회와 함께 기다리며 선교사명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역교회는 선교단체를 동반자의 관계에서 보고 함께하여야 할 것이다. 김성태는 ‘지역교회의 선교 활성화를 위해 지역교회는 선교문제를 교회 전체를 위해서 전담할 선교위원회를 조직해야 하며 선교위원회는 당회, 제직회, 각 전도분과, 대학부, 청년부, 권사회 등 지역교회의 각 부서를 대변할 수 있는 전체 기관에서 구성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선교계획이 교회 전체적으로 이해되고 교회적인 결집 속에서 선교가 수행될 수 있다.’ 김성태 8. 고 말한다. 이제 한국의 교회와 선교는 함께 해야 한다. 이미 함께 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서로 보다 원활한 협력관계를 위한 서로의 양보와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선교사가 파송되기 전 선교사 훈련과정에서 에큐메니칼 운동 및 선교협력의 목적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교육하여 선교협력 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에큐메니칼 협력관계에서 보면 선교는 선교하는 지역교회와 선교현지교회 사이에 상호 주체적 존중과 문화와 형태의 차이에 근거한 다양한 기독교 신앙의 경험과 차이의 인정, 그리고 상호 배움과 상호변혁을 위한 ...
선교단체들이 한국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세계선교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개혁주의 교회론에 비추어 볼 때 분명한 문제가 있는 선교단체도 있다는 것이다. 개혁주의자들의 연합과 분리의 원칙에 의한다면 선교단체의 교회론의 문제는 시정되어야 한다. 칼뱅의 종교개혁 당시의 로마교회는 그 교리가 부패하였다. 교황 수위권 등 성경과 전혀 무관한 교리를 주장하였기에 분리를 주장한 것이다. 차병준, “교회와 선교단체의 유기적인 관계성 연구” (신학석사학위논문, 아세아연합신학대 신학대학원, 2000) 35. 하지만 한국교회가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면 선교단체와 지역교회와의 분리를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선교단체는 종교개혁자들의 분리와 연합의 원칙을 잘 살피어 바른 교회론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김영철은 ‘대부분의 지역교회는 선교단체에 대해서 생각할 때 선교단체가 지역교회는 아니지만 지역교회와 더불어 존재하는 기관으로서 지역교회 사명의 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기관들이라고 인정한다.’ 김영철 66. 고 말한다. 실제로 선교단체들이 지역교회가 해야 할 복음전도사역 활성화나 체계 있는 성경공부를 통한 교육사역의 전문화로 지역교회에 도전을 주고 협력도 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선교사역의 전문화로 빠르고 정확한 정보와 축적된 노하우를 필요로 할 때나 선교 불모지에 대한 복음전파사역에서는 지역교회보다 선교단체가 그런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지역교회도 선교단체의 필요성과 역할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말이다. 지역교회와 선교단체는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충 혹은 보완관계가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역에 있어서는 각 문화 단위마다 전문적 복음화 전략과 구조가 필요하다.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각 분야들에 대해서 지역교회가 그 모든 분야들을 감당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부 대형교회를 제외하고는 지역성을 극복하는데도 실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역교회 중심의 선교운동들이 캠퍼스 내에서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인 집회 형태인 회중적 기능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다양한 구성원들로 구성된 지역교회는 특정대상의 복음화에 필요한 경험 있는 전문 인력과 전략적 안목을 갖추기 어렵다. 특정 대상의 복음화는 그 속에 있는 구성원에 의해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 즉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이, 외국인은 외국인이, 대학생은 대학생이, 서로 간의 문화적 갈등 없이 일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에게는 외국인을 전문으로 하는 해외 선교단체가 필요하며, 학생들에게는 학생들을 전문으로 하는 학생 선교단체가 필요하다. 선교단체를 지역교회라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는 지역교회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지역교회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선교단체에서는 지역교회의 모순을 들어 공격하며 진정한 지역교회는 어떤 건물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이라고 하여 반 지역교회적 색체까지 띤 단체도 있다. 선교단체에서 이루어지는 훈련은 개방적이기보다는 폐쇄적이고 인격적이기보다는 기능적이고 목회적이기보다는 의식화 교육식이어서 교조화되고 도식화된 제자를 배출할 경향성이 짙다. 때문에 인격적으로 교육하는데 실패하기가 쉽다. 그러나 제자훈련은 새로운 인격의 형성이지 세뇌는 아닌 것이다. 지역교회의 목회자는 개교회 성장위주의 자세를 지양해야 한다. 일부 대형교회들이 선교를 위한 연합운동에 저해요인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지역교회는 선교한다. 그러나 선교단체도 선교한다. 선교기관은 지역교회의 선교를 도와야 하며 위임을 받은 것을 가장 효과적인 선교기관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바, 주님이 오실 그때를 지역교회와 함께 기다리며 선교사명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역교회는 선교단체를 동반자의 관계에서 보고 함께하여야 할 것이다. 김성태는 ‘지역교회의 선교 활성화를 위해 지역교회는 선교문제를 교회 전체를 위해서 전담할 선교위원회를 조직해야 하며 선교위원회는 당회, 제직회, 각 전도분과, 대학부, 청년부, 권사회 등 지역교회의 각 부서를 대변할 수 있는 전체 기관에서 구성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선교계획이 교회 전체적으로 이해되고 교회적인 결집 속에서 선교가 수행될 수 있다.’ 김성태 8. 고 말한다. 이제 한국의 교회와 선교는 함께 해야 한다. 이미 함께 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서로 보다 원활한 협력관계를 위한 서로의 양보와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선교사가 파송되기 전 선교사 훈련과정에서 에큐메니칼 운동 및 선교협력의 목적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교육하여 선교협력 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에큐메니칼 협력관계에서 보면 선교는 선교하는 지역교회와 선교현지교회 사이에 상호 주체적 존중과 문화와 형태의 차이에 근거한 다양한 기독교 신앙의 경험과 차이의 인정, 그리고 상호 배움과 상호변혁을 위한 개방성의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지 상황에 따라 협력관계가 실현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여 개척선교 형태도 역시 존중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 문화권이나 공산권 지역, 개신교 약세 지역의 경우 협력관계 교단을 찾기 어려운 나라, 혹은 지역교회가 없는 곳에 개척해야 할 지역적 특수상황에서는 협력관계의 근본정신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하고 또는 교단의 위임을 받은 선교사가 현지 교단과 협력관계를 가질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어야 하겠다.
선교단체들이 한국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세계선교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개혁주의 교회론에 비추어 볼 때 분명한 문제가 있는 선교단체도 있다는 것이다. 개혁주의자들의 연합과 분리의 원칙에 의한다면 선교단체의 교회론의 문제는 시정되어야 한다. 칼뱅의 종교개혁 당시의 로마교회는 그 교리가 부패하였다. 교황 수위권 등 성경과 전혀 무관한 교리를 주장하였기에 분리를 주장한 것이다. 차병준, “교회와 선교단체의 유기적인 관계성 연구” (신학석사학위논문, 아세아연합신학대 신학대학원, 2000) 35. 하지만 한국교회가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는다면 선교단체와 지역교회와의 분리를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선교단체는 종교개혁자들의 분리와 연합의 원칙을 잘 살피어 바른 교회론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김영철은 ‘대부분의 지역교회는 선교단체에 대해서 생각할 때 선교단체가 지역교회는 아니지만 지역교회와 더불어 존재하는 기관으로서 지역교회 사명의 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기관들이라고 인정한다.’ 김영철 66. 고 말한다. 실제로 선교단체들이 지역교회가 해야 할 복음전도사역 활성화나 체계 있는 성경공부를 통한 교육사역의 전문화로 지역교회에 도전을 주고 협력도 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선교사역의 전문화로 빠르고 정확한 정보와 축적된 노하우를 필요로 할 때나 선교 불모지에 대한 복음전파사역에서는 지역교회보다 선교단체가 그런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지역교회도 선교단체의 필요성과 역할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말이다. 지역교회와 선교단체는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충 혹은 보완관계가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역에 있어서는 각 문화 단위마다 전문적 복음화 전략과 구조가 필요하다.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각 분야들에 대해서 지역교회가 그 모든 분야들을 감당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부 대형교회를 제외하고는 지역성을 극복하는데도 실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역교회 중심의 선교운동들이 캠퍼스 내에서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인 집회 형태인 회중적 기능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다양한 구성원들로 구성된 지역교회는 특정대상의 복음화에 필요한 경험 있는 전문 인력과 전략적 안목을 갖추기 어렵다. 특정 대상의 복음화는 그 속에 있는 구성원에 의해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 즉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이, 외국인은 외국인이, 대학생은 대학생이, 서로 간의 문화적 갈등 없이 일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에게는 외국인을 전문으로 하는 해외 선교단체가 필요하며, 학생들에게는 학생들을 전문으로 하는 학생 선교단체가 필요하다. 선교단체를 지역교회라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는 지역교회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지역교회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일부 선교단체에서는 지역교회의 모순을 들어 공격하며 진정한 지역교회는 어떤 건물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이라고 하여 반 지역교회적 색체까지 띤 단체도 있다. 선교단체에서 이루어지는 훈련은 개방적이기보다는 폐쇄적이고 인격적이기보다는 기능적이고 목회적이기보다는 의식화 교육식이어서 교조화되고 도식화된 제자를 배출할 경향성이 짙다. 때문에 인격적으로 교육하는데 실패하기가 쉽다. 그러나 제자훈련은 새로운 인격의 형성이지 세뇌는 아닌 것이다. 지역교회의 목회자는 개교회 성장위주의 자세를 지양해야 한다. 일부 대형교회들이 선교를 위한 연합운동에 저해요인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지역교회는 선교한다. 그러나 선교단체도 선교한다. 선교기관은 지역교회의 선교를 도와야 하며 위임을 받은 것을 가장 효과적인 선교기관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바, 주님이 오실 그때를 지역교회와 함께 기다리며 선교사명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역교회는 선교단체를 동반자의 관계에서 보고 함께하여야 할 것이다. 김성태는 ‘지역교회의 선교 활성화를 위해 지역교회는 선교문제를 교회 전체를 위해서 전담할 선교위원회를 조직해야 하며 선교위원회는 당회, 제직회, 각 전도분과, 대학부, 청년부, 권사회 등 지역교회의 각 부서를 대변할 수 있는 전체 기관에서 구성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선교계획이 교회 전체적으로 이해되고 교회적인 결집 속에서 선교가 수행될 수 있다.’ 김성태 8. 고 말한다. 이제 한국의 교회와 선교는 함께 해야 한다. 이미 함께 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서로 보다 원활한 협력관계를 위한 서로의 양보와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선교사가 파송되기 전 선교사 훈련과정에서 에큐메니칼 운동 및 선교협력의 목적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교육하여 선교협력 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에큐메니칼 협력관계에서 보면 선교는 선교하는 지역교회와 선교현지교회 사이에 상호 주체적 존중과 문화와 형태의 차이에 근거한 다양한 기독교 신앙의 경험과 차이의 인정, 그리고 상호 배움과 상호변혁을 위한 개방성의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지 상황에 따라 협력관계가 실현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여 개척선교 형태도 역시 존중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 문화권이나 공산권 지역, 개신교 약세 지역의 경우 협력관계 교단을 찾기 어려운 나라, 혹은 지역교회가 없는 곳에 개척해야 할 지역적 특수상황에서는 협력관계의 근본정신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하고 또는 교단의 위임을 받은 선교사가 현지 교단과 협력관계를 가질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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