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성화와 오직믿음이라는 주제 아래, 칭의와 성화의 비동시성과 동시성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다뤄보았다. 첫 번째로는, 루이스 벌코프의 점진적 성화론과 존 머레이의 결정적 성화론의 입장, 그리고 안토니 후크마의 점진성과 결정성의 균형점까지의 입장을 살펴보았다. 벌코프는 칭의와 성화의 간격을 분리하지는 않았지만, 구분지음으로서, 칭의와 성화의 믿음의 한 맥을 잃어버리게 하는 우를 낳았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성화의 점진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결정성을 도외시했던 잘못을 낳았다. 존 머레이 같은 경우는, 결정적 성화론의 입장에서 점진성도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지만, 그 역시 명확한 성화론의 균형점을 찾지는 못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 성화론에서 믿음으로의 성화교리를 벌코프보다는 조금 더 선명하게 전달했다고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안토니 후크마는 위의 두 사람의 견해를 잘 균형 있게 조화시켜 균형 잡힌 성화교리를 소개하였고, 믿음으로 성화됨의 분명한 인식을 가지게 해준 점은 매우 고무적이며, 필자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두 번째로는, 성화의 점진성과 성화의 결정성에 관련된 성경구절을 살펴보았다. 성화의 점진성은 죄와의 끊임없는 투쟁을 강조하면서, 거룩함을 이루어 가야하며, 성화의 과정의 점진성을 매우 강조해왔고, 이 교리를 지지하는 수많은 본문들을 함께 찾아보았다. 그러나 성화의 점진성만을 강조하게 되었을 경우, 성화의 결정성을 강조한 본문들에 대해서 모순을 발생시키고 말았다. 반면에, 성화의 결정성을 지지하는 수많은 본문들도 우리는 함께 다루어보았다. 죄의 지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통하여 완전히 결박되었으며, 우리는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성경 말씀이 분명하게 명시해 주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성경에는 성화의 점진성과 결정성, 두 가지 모두, 함께 기록되어져있다고 보아야하며, 성화교리 안에 점진성과 결정성이 함께 병행되어져서 이루어진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그렇다면 칭의와 성화의 ...
우리는 성화와 오직믿음이라는 주제 아래, 칭의와 성화의 비동시성과 동시성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다뤄보았다. 첫 번째로는, 루이스 벌코프의 점진적 성화론과 존 머레이의 결정적 성화론의 입장, 그리고 안토니 후크마의 점진성과 결정성의 균형점까지의 입장을 살펴보았다. 벌코프는 칭의와 성화의 간격을 분리하지는 않았지만, 구분지음으로서, 칭의와 성화의 믿음의 한 맥을 잃어버리게 하는 우를 낳았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성화의 점진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결정성을 도외시했던 잘못을 낳았다. 존 머레이 같은 경우는, 결정적 성화론의 입장에서 점진성도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지만, 그 역시 명확한 성화론의 균형점을 찾지는 못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 성화론에서 믿음으로의 성화교리를 벌코프보다는 조금 더 선명하게 전달했다고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안토니 후크마는 위의 두 사람의 견해를 잘 균형 있게 조화시켜 균형 잡힌 성화교리를 소개하였고, 믿음으로 성화됨의 분명한 인식을 가지게 해준 점은 매우 고무적이며, 필자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두 번째로는, 성화의 점진성과 성화의 결정성에 관련된 성경구절을 살펴보았다. 성화의 점진성은 죄와의 끊임없는 투쟁을 강조하면서, 거룩함을 이루어 가야하며, 성화의 과정의 점진성을 매우 강조해왔고, 이 교리를 지지하는 수많은 본문들을 함께 찾아보았다. 그러나 성화의 점진성만을 강조하게 되었을 경우, 성화의 결정성을 강조한 본문들에 대해서 모순을 발생시키고 말았다. 반면에, 성화의 결정성을 지지하는 수많은 본문들도 우리는 함께 다루어보았다. 죄의 지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통하여 완전히 결박되었으며, 우리는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성경 말씀이 분명하게 명시해 주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성경에는 성화의 점진성과 결정성, 두 가지 모두, 함께 기록되어져있다고 보아야하며, 성화교리 안에 점진성과 결정성이 함께 병행되어져서 이루어진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그렇다면 칭의와 성화의 관계성 속에서 칭의가 그리스도의 의의 획득이었다면, 성화는 그 의를 입을 때, 죄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하게 되며, 성령을 통하여 성화의 과정 가운데 거룩함을 이루어간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런데 필자는 점진성과 결정성이 하나의 성화교리라는 단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둘의 관계가 믿음이라는 요소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칭의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우리는 성화 역시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룩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또한 분명하게 확인하게 된 것이 이 논의의 큰 수확이라고 여겨진다. 칭의와 성화는 결코 불가분리의 개념이 아니며, 한 구원 안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서정이며, 이 안에서 믿음이라는 요소는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에서도 핵심열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본문말씀들과 이 본문을 해석한 학자들의 견해가 필자의 주장을 지지해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필자는 칭의와 성화가 ‘믿음’이라는 핵심열쇠 안에서 연합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며,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으며, 동시에 ‘믿음’으로 성화의 길을 걷게 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는 바이다.
우리는 성화와 오직믿음이라는 주제 아래, 칭의와 성화의 비동시성과 동시성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다뤄보았다. 첫 번째로는, 루이스 벌코프의 점진적 성화론과 존 머레이의 결정적 성화론의 입장, 그리고 안토니 후크마의 점진성과 결정성의 균형점까지의 입장을 살펴보았다. 벌코프는 칭의와 성화의 간격을 분리하지는 않았지만, 구분지음으로서, 칭의와 성화의 믿음의 한 맥을 잃어버리게 하는 우를 낳았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성화의 점진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결정성을 도외시했던 잘못을 낳았다. 존 머레이 같은 경우는, 결정적 성화론의 입장에서 점진성도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지만, 그 역시 명확한 성화론의 균형점을 찾지는 못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 성화론에서 믿음으로의 성화교리를 벌코프보다는 조금 더 선명하게 전달했다고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안토니 후크마는 위의 두 사람의 견해를 잘 균형 있게 조화시켜 균형 잡힌 성화교리를 소개하였고, 믿음으로 성화됨의 분명한 인식을 가지게 해준 점은 매우 고무적이며, 필자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두 번째로는, 성화의 점진성과 성화의 결정성에 관련된 성경구절을 살펴보았다. 성화의 점진성은 죄와의 끊임없는 투쟁을 강조하면서, 거룩함을 이루어 가야하며, 성화의 과정의 점진성을 매우 강조해왔고, 이 교리를 지지하는 수많은 본문들을 함께 찾아보았다. 그러나 성화의 점진성만을 강조하게 되었을 경우, 성화의 결정성을 강조한 본문들에 대해서 모순을 발생시키고 말았다. 반면에, 성화의 결정성을 지지하는 수많은 본문들도 우리는 함께 다루어보았다. 죄의 지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통하여 완전히 결박되었으며, 우리는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성경 말씀이 분명하게 명시해 주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성경에는 성화의 점진성과 결정성, 두 가지 모두, 함께 기록되어져있다고 보아야하며, 성화교리 안에 점진성과 결정성이 함께 병행되어져서 이루어진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그렇다면 칭의와 성화의 관계성 속에서 칭의가 그리스도의 의의 획득이었다면, 성화는 그 의를 입을 때, 죄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하게 되며, 성령을 통하여 성화의 과정 가운데 거룩함을 이루어간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런데 필자는 점진성과 결정성이 하나의 성화교리라는 단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둘의 관계가 믿음이라는 요소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칭의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우리는 성화 역시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룩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또한 분명하게 확인하게 된 것이 이 논의의 큰 수확이라고 여겨진다. 칭의와 성화는 결코 불가분리의 개념이 아니며, 한 구원 안에서 일어나는 구원의 서정이며, 이 안에서 믿음이라는 요소는 칭의 뿐만 아니라 성화에서도 핵심열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본문말씀들과 이 본문을 해석한 학자들의 견해가 필자의 주장을 지지해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필자는 칭의와 성화가 ‘믿음’이라는 핵심열쇠 안에서 연합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며,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으며, 동시에 ‘믿음’으로 성화의 길을 걷게 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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