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개인적 이익이나 행복에 대한 강력한 동기를 갖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있어서는 도덕적 의무에 충실하기가 지극히 힘든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윤리적 행위가 인간의 즐거움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자기 희생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연 ‘덕은 행복과 상충하는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만일 덕을 실천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거나 귀찮은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라면, 덕을 의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습관적이면서도 자율적으로 반복하여 실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
흔히들 개인적 이익이나 행복에 대한 강력한 동기를 갖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있어서는 도덕적 의무에 충실하기가 지극히 힘든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윤리적 행위가 인간의 즐거움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자기 희생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연 ‘덕은 행복과 상충하는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만일 덕을 실천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거나 귀찮은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라면, 덕을 의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습관적이면서도 자율적으로 반복하여 실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실천하는 생활 그 자체가 행복한 생활임을 역설함으로써 명쾌한 대답을 내 놓는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행복은 바로 덕 그 자체였다. 덕은 고귀한 것이며, 고귀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본성상 즐거운 것을 즐거운 것으로 볼 줄 알며, 유덕한 행위야 말로 본성에 있어서 즐거운 것이기에 그 자체 속에 쾌락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에 있으며, 행복은 덕을 실천하는 생활에서 온다고 하였다. 또한, 행복은 여러 가지 도덕적 덕을 통해서 얻어지지만, 그중에서도 관조를 통해 얻어지는 행복을 최고 경지의 행복이라고 여기며 이런 까닭에 이성적 생활은 가장 행복한 생활이라고 보았다. 즉, 인간적인 삶에 바탕을 둔 도덕적 덕을 통하여 얻어지는 행복과 신적 활동에 가까운 관조를 통해 얻는 행복 모두의 가치를 인정하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렇게 두 행복의 의미를 부여한 까닭은, 인간은 육체와 이성을 구성요소로 하는 까닭에 이성적 삶의 관조와 행동적 요소의 도덕적 삶이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관조를 정점으로 하는 최고 경지의 행복과 관조가 아닌 덕들을 발휘하여 오는 행복들은 서로 서열로 매겨지는 상태가 아니다. 관조는 목적으로서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다른 요소들의 덕은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중층적 구조를 이룬다. 이들 덕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덕은 이성으로서의 지적 덕이지만, 지적 덕은 도덕적 덕의 형성이 있은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도덕적 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랜 훈련과 반복적인 습관에서 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초기의 도덕교육은 고귀하고 옳은 것을 행하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는 데에 싫어함을 갖도록 습관화하도록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아동들이 어려서부터 고귀한 행위, 즉 덕을 행하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덕을 즐겨 실천하는 습관’을 길러 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덕의 습관화’를 우선 지도한 후에 ‘이성’의 지도로 넘어가고자 하였던 덕의 지도방안은 그 내용, 순서, 방법적인 면을 달리하고는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초등학교 도덕교육의 지도방안을 이루고 있는 핵심적 내용이다. 이와 관련하여 초등 도덕과의 덕 지도방안은, 덕을 지도함에 있어서 수업시간 중에 덕을 통합적으로 지도하는 수업 내적 활동과, 수업 시간 내에 지도된 덕이 일상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실현되어 반복적으로 실행되고 그 결과 제 2의 천성으로서의 습관을 가지게 될 때까지 이끌어주는 수업 외적 활동으로 구분된다. 먼저 수업 내적 활동으로, 도덕과 시간의 덕목지도의 순서는 인지적, 정의적, 행동적 요소의 순서로 지도된다. 즉, 덕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덕의 가치를 정서적으로 느끼게 하여, 바른 행동을 실천하게 하는 순서로 지도된다. 이상적인 도덕과 수업은 ‘덕을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큰 감화를 받아서, 그 감동의 결과로 덕을 실천하는’ 수업이다. 하지만, 이러한 순서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덕지도 방법들은 한 시간의 단위수업 시간에 지․정․행의 총체적인 개념을 지도함에 있어서 종래의 ‘인지→정의→행동’이라는 고정된 수업틀에서 벗어나 그 순서와 방법 및 내용을 다양하고 유연하게, 그리고 유기적이고 창의적인 통합 방식으로 전개하고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수업 외적 활동은, 수업 시간중에 지․정․행의 통합적인 지도를 통하여 형성된 덕이 수업시간 밖에서 제2의 천성인 습관으로 자리잡게 하기 위한 활동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생활습관, 기본적 예절 실천, 생활규범의 습관화 등이 반복 지도되어야 한다. 그리고, 습관지도는 매일 되풀이되어서 지도되어야 하는 까닭에 행동주의 및 사회주의 학습이론의 보상과 벌, 모델링의 방법 등을 적용할 수 있고, 이는 반복성․지속성․일관성의 원리로 지도되어야 하며, 의도적이고 계획적이며 타율적인 습관형성에서 자율적 습관형성으로 바뀌어 가도록 해야 하고, 구체적이고 자상한 직접적인 안내, 학급․학교․가정․사회와의 연계지도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측면들 중에서도 특히 초등 도덕교육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이 주목받는 이유는 초기 도덕교육에서 아름답고 고귀한 것을 사랑하고 이를 실천할 줄 아는 습관을 강조한 까닭이다. 덕의 습관화가 이루어진 상태에서는 바른 생활규범을 실천함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바른 이성적 판단을 함에도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덕은 단지 의무로서의 규율이 아니라, 이를 실천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이나 여유, 관조를 누리는 삶으로 이어지는 까닭에 덕을 실천하는 그 자체는 즐겁고 행복한 행위로 간주되어 자율적이며, 적극적인 덕의 실천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흔히들 개인적 이익이나 행복에 대한 강력한 동기를 갖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있어서는 도덕적 의무에 충실하기가 지극히 힘든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윤리적 행위가 인간의 즐거움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자기 희생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연 ‘덕은 행복과 상충하는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만일 덕을 실천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거나 귀찮은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라면, 덕을 의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습관적이면서도 자율적으로 반복하여 실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실천하는 생활 그 자체가 행복한 생활임을 역설함으로써 명쾌한 대답을 내 놓는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행복은 바로 덕 그 자체였다. 덕은 고귀한 것이며, 고귀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본성상 즐거운 것을 즐거운 것으로 볼 줄 알며, 유덕한 행위야 말로 본성에 있어서 즐거운 것이기에 그 자체 속에 쾌락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에 있으며, 행복은 덕을 실천하는 생활에서 온다고 하였다. 또한, 행복은 여러 가지 도덕적 덕을 통해서 얻어지지만, 그중에서도 관조를 통해 얻어지는 행복을 최고 경지의 행복이라고 여기며 이런 까닭에 이성적 생활은 가장 행복한 생활이라고 보았다. 즉, 인간적인 삶에 바탕을 둔 도덕적 덕을 통하여 얻어지는 행복과 신적 활동에 가까운 관조를 통해 얻는 행복 모두의 가치를 인정하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렇게 두 행복의 의미를 부여한 까닭은, 인간은 육체와 이성을 구성요소로 하는 까닭에 이성적 삶의 관조와 행동적 요소의 도덕적 삶이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관조를 정점으로 하는 최고 경지의 행복과 관조가 아닌 덕들을 발휘하여 오는 행복들은 서로 서열로 매겨지는 상태가 아니다. 관조는 목적으로서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다른 요소들의 덕은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중층적 구조를 이룬다. 이들 덕중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덕은 이성으로서의 지적 덕이지만, 지적 덕은 도덕적 덕의 형성이 있은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도덕적 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랜 훈련과 반복적인 습관에서 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초기의 도덕교육은 고귀하고 옳은 것을 행하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는 데에 싫어함을 갖도록 습관화하도록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아동들이 어려서부터 고귀한 행위, 즉 덕을 행하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덕을 즐겨 실천하는 습관’을 길러 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덕의 습관화’를 우선 지도한 후에 ‘이성’의 지도로 넘어가고자 하였던 덕의 지도방안은 그 내용, 순서, 방법적인 면을 달리하고는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초등학교 도덕교육의 지도방안을 이루고 있는 핵심적 내용이다. 이와 관련하여 초등 도덕과의 덕 지도방안은, 덕을 지도함에 있어서 수업시간 중에 덕을 통합적으로 지도하는 수업 내적 활동과, 수업 시간 내에 지도된 덕이 일상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실현되어 반복적으로 실행되고 그 결과 제 2의 천성으로서의 습관을 가지게 될 때까지 이끌어주는 수업 외적 활동으로 구분된다. 먼저 수업 내적 활동으로, 도덕과 시간의 덕목지도의 순서는 인지적, 정의적, 행동적 요소의 순서로 지도된다. 즉, 덕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덕의 가치를 정서적으로 느끼게 하여, 바른 행동을 실천하게 하는 순서로 지도된다. 이상적인 도덕과 수업은 ‘덕을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큰 감화를 받아서, 그 감동의 결과로 덕을 실천하는’ 수업이다. 하지만, 이러한 순서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덕지도 방법들은 한 시간의 단위수업 시간에 지․정․행의 총체적인 개념을 지도함에 있어서 종래의 ‘인지→정의→행동’이라는 고정된 수업틀에서 벗어나 그 순서와 방법 및 내용을 다양하고 유연하게, 그리고 유기적이고 창의적인 통합 방식으로 전개하고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수업 외적 활동은, 수업 시간중에 지․정․행의 통합적인 지도를 통하여 형성된 덕이 수업시간 밖에서 제2의 천성인 습관으로 자리잡게 하기 위한 활동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생활습관, 기본적 예절 실천, 생활규범의 습관화 등이 반복 지도되어야 한다. 그리고, 습관지도는 매일 되풀이되어서 지도되어야 하는 까닭에 행동주의 및 사회주의 학습이론의 보상과 벌, 모델링의 방법 등을 적용할 수 있고, 이는 반복성․지속성․일관성의 원리로 지도되어야 하며, 의도적이고 계획적이며 타율적인 습관형성에서 자율적 습관형성으로 바뀌어 가도록 해야 하고, 구체적이고 자상한 직접적인 안내, 학급․학교․가정․사회와의 연계지도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측면들 중에서도 특히 초등 도덕교육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이 주목받는 이유는 초기 도덕교육에서 아름답고 고귀한 것을 사랑하고 이를 실천할 줄 아는 습관을 강조한 까닭이다. 덕의 습관화가 이루어진 상태에서는 바른 생활규범을 실천함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바른 이성적 판단을 함에도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덕은 단지 의무로서의 규율이 아니라, 이를 실천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이나 여유, 관조를 누리는 삶으로 이어지는 까닭에 덕을 실천하는 그 자체는 즐겁고 행복한 행위로 간주되어 자율적이며, 적극적인 덕의 실천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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