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격변하는 영국의 시대 상황 속에서 복음의 본질을 지키며 교회를 개혁하고자 한 청교도 신학자 오웬은 동시에 성경적인 성도의 삶에 대해 고민했던 목회자이기도 했다. 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간의 비참한 상황의 철저한 인식에서 출발한 오웬의 성화론은 오웬이 정서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살필 때 더 분명해진다. 오웬은 죄를 법(a law)이라 정의하고, 이 법의 특징으로 지배권(dominion)을 제시했다. 이 지배권은 사람의 행동원리인 마음에 작용한다. 문제는 구원받은 신자에게 이 죄가 여전히 지배력을 발휘하는가에 대한 것...
17세기 격변하는 영국의 시대 상황 속에서 복음의 본질을 지키며 교회를 개혁하고자 한 청교도 신학자 오웬은 동시에 성경적인 성도의 삶에 대해 고민했던 목회자이기도 했다. 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간의 비참한 상황의 철저한 인식에서 출발한 오웬의 성화론은 오웬이 정서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살필 때 더 분명해진다. 오웬은 죄를 법(a law)이라 정의하고, 이 법의 특징으로 지배권(dominion)을 제시했다. 이 지배권은 사람의 행동원리인 마음에 작용한다. 문제는 구원받은 신자에게 이 죄가 여전히 지배력을 발휘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죄의 지배가 신자가 중생한 시점에 어떤 변화를 보이며,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지에 큰 관심을 가졌다. 여전히 신자 안에 내재하고 있는 죄(indwelling sin)는 성화의 필요성을 성도들에게 상기시키며, 성도를 죄의 오염과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정화하고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 성화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 성화는 신자들의 영혼에 대한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주어진 것으로, 오웬은 순종과 의무가 은혜의 일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오웬의 성화관은 오웬의 정서 이해를 통해 더 구체화 된다. 오웬은 인간이 구원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성주의에 대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부패한 정서를 통해 명백히 보여주었다. 중생하지 않은 부패한 정서로는 경건의 모양을 가장한 행위의 의만을 추구하게 된다. 오웬은 구원과 성화에 미치는 정서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이성은 정서의 좌소이며, 우리 마음의 정서가 이성의 생각들을 통해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낸다. 오웬이 정의한 정서는 첫째, 통상적 의미에서 마음의 구성 요소이며 혼(soul)이다. 둘째, 주어지는 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역할을 한다. 셋째,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하는 동인이다. 타락 후 인간의 정서는 본질상 전부 부패하고 뒤틀려 있으며, 부패한 정서는 육체와 영의 모든 욕심의 좌소가 되면서 아울러 그 욕심의 하수인이 되었다. 부패한 정서 그 자체만으로는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반면, 영적으로 새로워진 정서는 하나님께 기쁨으로 향한다. 죄와의 싸움도, 성화도 새롭게 된 정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간 안에 새로운 영적 생명의 원소(principle)를 주입하고 성령의 영향 아래 하나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 중생이며, 중생을 통해 영혼의 지배적 성향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때 부패한 정서는 새로워진다. 이 정서는 영적으로 생각하는 일의 고유한 샘과 본질을 이룬다. 그러므로 오웬은 믿음이 역사할 때 쓰는 방편이 정서라고 보았다. 영적으로 새롭게 된 정서 속에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중심에 있다. 오웬은 이렇게 영적으로 새롭게 된 정서와 생각들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향하면,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영적인 정서가 계속 바른 대상을 향하여 자기 활동을 해야만 전체 영혼 속에서 모든 것들이 질서 있게 보전되는데 오웬은 이 영적인 정서를 생명과 평안이라고 정의했다. 정서는 성화의 척도가 되며 성도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웬은 정서의 연약 때문에 정서가 이 세상의 삶 속에서 완전한 안식과 만족에 이르지 못하고 지상에서 완전함을 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서가 부분적으로만 새로워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웬은 영적인 정서를 순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믿음을 행사할 것을 권면했다. 이렇게 신령한 하늘에 속한 것들에 정서를 집중시킬 때,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헛된 것의 잔재를 이길 새 힘을 얻게 된다. 오웬은 성도의 신앙생활의 근원을 정서라고 이해했다. 인간 내면의 정서가 영적으로 새롭게 된 정서일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이 정서를 후패하지 않도록 영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성화이다. 정서를 보호하는 것은 죄를 죽이는 것과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두 방편의 실현은 인간이 노력한다고 해서 이룰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결국 오웬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웬의 정서 이해는 구원과 성화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개혁신학적 관점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은혜의 지배 아래 있는 성도의 삶이 소극적인 죄 극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 있음을 고백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로 나아가야 함을 보여준다. 이렇듯 성경에 근거하여 인간의 마음과 정서를 통해 일어나는 성화가 성령 하나님의 내적사역임을 보여준 오웬의 성화관을 통해, 본 연구는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만 사람의 생각, 행동, 의지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이것이 단
17세기 격변하는 영국의 시대 상황 속에서 복음의 본질을 지키며 교회를 개혁하고자 한 청교도 신학자 오웬은 동시에 성경적인 성도의 삶에 대해 고민했던 목회자이기도 했다. 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간의 비참한 상황의 철저한 인식에서 출발한 오웬의 성화론은 오웬이 정서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살필 때 더 분명해진다. 오웬은 죄를 법(a law)이라 정의하고, 이 법의 특징으로 지배권(dominion)을 제시했다. 이 지배권은 사람의 행동원리인 마음에 작용한다. 문제는 구원받은 신자에게 이 죄가 여전히 지배력을 발휘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죄의 지배가 신자가 중생한 시점에 어떤 변화를 보이며,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지에 큰 관심을 가졌다. 여전히 신자 안에 내재하고 있는 죄(indwelling sin)는 성화의 필요성을 성도들에게 상기시키며, 성도를 죄의 오염과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정화하고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는 성화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 성화는 신자들의 영혼에 대한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주어진 것으로, 오웬은 순종과 의무가 은혜의 일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오웬의 성화관은 오웬의 정서 이해를 통해 더 구체화 된다. 오웬은 인간이 구원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성주의에 대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부패한 정서를 통해 명백히 보여주었다. 중생하지 않은 부패한 정서로는 경건의 모양을 가장한 행위의 의만을 추구하게 된다. 오웬은 구원과 성화에 미치는 정서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이성은 정서의 좌소이며, 우리 마음의 정서가 이성의 생각들을 통해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낸다. 오웬이 정의한 정서는 첫째, 통상적 의미에서 마음의 구성 요소이며 혼(soul)이다. 둘째, 주어지는 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역할을 한다. 셋째,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하는 동인이다. 타락 후 인간의 정서는 본질상 전부 부패하고 뒤틀려 있으며, 부패한 정서는 육체와 영의 모든 욕심의 좌소가 되면서 아울러 그 욕심의 하수인이 되었다. 부패한 정서 그 자체만으로는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반면, 영적으로 새로워진 정서는 하나님께 기쁨으로 향한다. 죄와의 싸움도, 성화도 새롭게 된 정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간 안에 새로운 영적 생명의 원소(principle)를 주입하고 성령의 영향 아래 하나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 중생이며, 중생을 통해 영혼의 지배적 성향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때 부패한 정서는 새로워진다. 이 정서는 영적으로 생각하는 일의 고유한 샘과 본질을 이룬다. 그러므로 오웬은 믿음이 역사할 때 쓰는 방편이 정서라고 보았다. 영적으로 새롭게 된 정서 속에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중심에 있다. 오웬은 이렇게 영적으로 새롭게 된 정서와 생각들이 하나님께 기쁨으로 향하면,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영적인 정서가 계속 바른 대상을 향하여 자기 활동을 해야만 전체 영혼 속에서 모든 것들이 질서 있게 보전되는데 오웬은 이 영적인 정서를 생명과 평안이라고 정의했다. 정서는 성화의 척도가 되며 성도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웬은 정서의 연약 때문에 정서가 이 세상의 삶 속에서 완전한 안식과 만족에 이르지 못하고 지상에서 완전함을 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서가 부분적으로만 새로워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웬은 영적인 정서를 순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믿음을 행사할 것을 권면했다. 이렇게 신령한 하늘에 속한 것들에 정서를 집중시킬 때,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헛된 것의 잔재를 이길 새 힘을 얻게 된다. 오웬은 성도의 신앙생활의 근원을 정서라고 이해했다. 인간 내면의 정서가 영적으로 새롭게 된 정서일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이 정서를 후패하지 않도록 영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성화이다. 정서를 보호하는 것은 죄를 죽이는 것과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두 방편의 실현은 인간이 노력한다고 해서 이룰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결국 오웬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웬의 정서 이해는 구원과 성화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개혁신학적 관점을 전제하고 있다. 이것은 은혜의 지배 아래 있는 성도의 삶이 소극적인 죄 극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 있음을 고백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로 나아가야 함을 보여준다. 이렇듯 성경에 근거하여 인간의 마음과 정서를 통해 일어나는 성화가 성령 하나님의 내적사역임을 보여준 오웬의 성화관을 통해, 본 연구는 성령의 사역에 의해서만 사람의 생각, 행동, 의지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이것이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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