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民家)는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포함하고 한 시대를 반영하는 시회구조의 한 흐름 속에서 창출 된 유형적 자료로서, 그 시대의 일반적인 사회상을 함축하고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민가의 특성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원인에 맞추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면서 당시의 시대상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민가에 대한 연구는 현존하는 조선 중⋅후기 이후의 건물에 대한 조사연구와 다양한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 중기 혹은 그 이전시기의 현존하는 건물이 드물고 그나마 궁집(宮家), 제택(第宅) 등 상류주택이 드물게 남아있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번 증⋅개축되어 당시의 원형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또 조선시대 민가 연구에 문집, 고서화, 생활일기 등의 다양한 사료가 확보되고 이를 통해서 사대부주택인 반가(班家)에 대한 연구 성과는 보고되고 있으나 일반적인 서민주택인 민가의 경우는 실제적인 연구 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본 논문의 연구대상은 조선 전기의 가사령(家舍令)을 중심으로 하여 당시 신분계급상에서 서민이라 할 수 있는 서인(庶人)계층의 주택을 민가라 정의하고 ‘서울 종로 청진12∼16지구’ 발굴조사를 중심으로 조선전기 문화층 내 각 건물지들의 ...
민가(民家)는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포함하고 한 시대를 반영하는 시회구조의 한 흐름 속에서 창출 된 유형적 자료로서, 그 시대의 일반적인 사회상을 함축하고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민가의 특성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원인에 맞추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면서 당시의 시대상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민가에 대한 연구는 현존하는 조선 중⋅후기 이후의 건물에 대한 조사연구와 다양한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 중기 혹은 그 이전시기의 현존하는 건물이 드물고 그나마 궁집(宮家), 제택(第宅) 등 상류주택이 드물게 남아있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번 증⋅개축되어 당시의 원형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또 조선시대 민가 연구에 문집, 고서화, 생활일기 등의 다양한 사료가 확보되고 이를 통해서 사대부주택인 반가(班家)에 대한 연구 성과는 보고되고 있으나 일반적인 서민주택인 민가의 경우는 실제적인 연구 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본 논문의 연구대상은 조선 전기의 가사령(家舍令)을 중심으로 하여 당시 신분계급상에서 서민이라 할 수 있는 서인(庶人)계층의 주택을 민가라 정의하고 ‘서울 종로 청진12∼16지구’ 발굴조사를 중심으로 조선전기 문화층 내 각 건물지들의 가대(家垈) 면적과 건물지의 규모와 형태, 주칸거리에 대하여 분석하고 가사령의 규제와 건물지유적을 비교해 보았다. 지금까지 연구된 조선시대의 건축은 대부분 조선시대 주택들을 시대구분 없이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과정에서 현존하는 조선시대 중기(17세기 이후)이후 남아있는 주택유구들의 공간적 특성과 의장 및 양식적 특성을 규명하였지만 조선전기 주택의 시대적 배경과 특징을 부각시키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특히, 서민계층의 주택인 민가에 대해서는 전통민가에 대한 연구를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정립시키는 기초를 마련하였을 뿐 주택에 대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여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연구되지 못하였다. 16세기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사회모습을 살펴보면, 정치적으로는 사림의 정치적 역량증대와 관계진출로 유교적 윤리와 예학이 보급⋅확대되어 나갔으며, 사회적으로는 서류부가의 혼속 등이 유교사회의 확립과 더불어 사라져 가면서 가족구조가 재편되어 유교적인 종법제 확립, 양자제의 보편화 등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회변화 속에서 가대제한과 가사규제와 같은 제도적 장치도 병행하여 갔으며, 가례서 저술 등에 따라 유교적인 관념과 생활내용이 사대부 주거 속에 반영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유교사회로 이행하는 사회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사대부의 관념이 엄격한 신분제도로 인해 사대부뿐만 아니라 양반 이하 계층인 서민들에게까지 조영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본 논문 사례의 조영 배경 분석은 조선전기 가사령에 따른 가대제한과 가사규제를 바탕으로 하여 분석하였다. 일반적인 서민의 주택인 민가는 지리적 여건, 기후, 풍토 등 물리적인 자연환경 요인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문화적 환경 요인 및 풍수지리사상, 천문사상과 같은 사상적 요인의 인자에 영향을 받아 기능 및 사용목적에 적합하게 대응하면서 조영되었다. 하지만 한양이라는 도성 내의 민가는 자연환경 요인과 사상적 요인보다는 사회문화적 환경 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여 조영되었다. 본 논문은 실제 건물의 자료 부족으로 다루지 못하였던 조선전기의 민가에 대하여 사회문화적 요인이라 할 수 있는 가대제한과 가사규제에 비추어 당시 한양도성 내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청진동 일원의 민가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서 조선전기 한양 도성 내 민가의 특징을 유추해보고자 하였다.
민가(民家)는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포함하고 한 시대를 반영하는 시회구조의 한 흐름 속에서 창출 된 유형적 자료로서, 그 시대의 일반적인 사회상을 함축하고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민가의 특성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원인에 맞추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면서 당시의 시대상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민가에 대한 연구는 현존하는 조선 중⋅후기 이후의 건물에 대한 조사연구와 다양한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 중기 혹은 그 이전시기의 현존하는 건물이 드물고 그나마 궁집(宮家), 제택(第宅) 등 상류주택이 드물게 남아있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번 증⋅개축되어 당시의 원형을 판단하기 쉽지 않다. 또 조선시대 민가 연구에 문집, 고서화, 생활일기 등의 다양한 사료가 확보되고 이를 통해서 사대부주택인 반가(班家)에 대한 연구 성과는 보고되고 있으나 일반적인 서민주택인 민가의 경우는 실제적인 연구 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본 논문의 연구대상은 조선 전기의 가사령(家舍令)을 중심으로 하여 당시 신분계급상에서 서민이라 할 수 있는 서인(庶人)계층의 주택을 민가라 정의하고 ‘서울 종로 청진12∼16지구’ 발굴조사를 중심으로 조선전기 문화층 내 각 건물지들의 가대(家垈) 면적과 건물지의 규모와 형태, 주칸거리에 대하여 분석하고 가사령의 규제와 건물지유적을 비교해 보았다. 지금까지 연구된 조선시대의 건축은 대부분 조선시대 주택들을 시대구분 없이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과정에서 현존하는 조선시대 중기(17세기 이후)이후 남아있는 주택유구들의 공간적 특성과 의장 및 양식적 특성을 규명하였지만 조선전기 주택의 시대적 배경과 특징을 부각시키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특히, 서민계층의 주택인 민가에 대해서는 전통민가에 대한 연구를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정립시키는 기초를 마련하였을 뿐 주택에 대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여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연구되지 못하였다. 16세기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사회모습을 살펴보면, 정치적으로는 사림의 정치적 역량증대와 관계진출로 유교적 윤리와 예학이 보급⋅확대되어 나갔으며, 사회적으로는 서류부가의 혼속 등이 유교사회의 확립과 더불어 사라져 가면서 가족구조가 재편되어 유교적인 종법제 확립, 양자제의 보편화 등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회변화 속에서 가대제한과 가사규제와 같은 제도적 장치도 병행하여 갔으며, 가례서 저술 등에 따라 유교적인 관념과 생활내용이 사대부 주거 속에 반영되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유교사회로 이행하는 사회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사대부의 관념이 엄격한 신분제도로 인해 사대부뿐만 아니라 양반 이하 계층인 서민들에게까지 조영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본 논문 사례의 조영 배경 분석은 조선전기 가사령에 따른 가대제한과 가사규제를 바탕으로 하여 분석하였다. 일반적인 서민의 주택인 민가는 지리적 여건, 기후, 풍토 등 물리적인 자연환경 요인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문화적 환경 요인 및 풍수지리사상, 천문사상과 같은 사상적 요인의 인자에 영향을 받아 기능 및 사용목적에 적합하게 대응하면서 조영되었다. 하지만 한양이라는 도성 내의 민가는 자연환경 요인과 사상적 요인보다는 사회문화적 환경 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여 조영되었다. 본 논문은 실제 건물의 자료 부족으로 다루지 못하였던 조선전기의 민가에 대하여 사회문화적 요인이라 할 수 있는 가대제한과 가사규제에 비추어 당시 한양도성 내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청진동 일원의 민가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서 조선전기 한양 도성 내 민가의 특징을 유추해보고자 하였다.
A private house contains detailed, comprehensive life of ordinary people and is a typical visible data created from the stream of social structure that reflects a general social phenomenon of the society at certain times. For such reasons as mentioned, the features of the private house include chang...
A private house contains detailed, comprehensive life of ordinary people and is a typical visible data created from the stream of social structure that reflects a general social phenomenon of the society at certain times. For such reasons as mentioned, the features of the private house include changing periodical aspects at certain times. The study of a private house has been based on the research of the buildings and books after the mid-Joseon period. However, it is rare to find private houses (or buildings) before the mid-Joseon period and some houses and buildings still exist but they are for high class people and such as houses within palace and houses with pavilion. It is hard to find their original forms because of extending and reconstruction of the buildings. A study of a house of nobility is reported through the books, paintings and diaries from Chosun period but a study of a house for ordinary people do not have enough materials for research. The subject of this dissertation is that a private house for ordinary people is defined by the boundary of the house and social class in early-Chosun period and that the boundary, size, form of the house and distance between pillars are analyzed and the regulation of the house boundary is compared with structure site within occupation layer in early-Joseon period, based on excavation investigation on 12-16 Chungjin district, Jongno, Seoul, Korea. The study of architecture in Joseon until now confirms spatial, design and style features of the houses (or structure sites)existing after the mid-Joseon period (after17thcentury) without considering classifyingerain the whole Chosunperiod. It has a limitation to present features of the houses in the early-Joseon period. Especially, although it laid the foundation of the study of traditional houses in Joseon, the study of house for ordinary people did not conduct a study by stage because of lack of data. The social features in the 16th of Joseon are that the politically, Confucian ethics and the study of the proprieties came in to wide use because the scholars who study Confucian went into politics and became larger. Andsocially, as Confucian society enlarged, family structure was rearranged based on Confucian ideas that contain primogeniture and adoption system. We could think that the government provided an institutional strategy such as Housing law and publishing the Confucian book of the proprieties and then the conventions and social customs of the Confucian could start to be absorbed to nobility. We also could think that the idea of nobility could be reflected to ordinary people as a strict social class. In this dissertation, the case of back ground in constructing a house is analyzed by Housing law regulation in the early-Joseon period. A private house for ordinary people was builtby dealing with function and purpose and inspired by natural characteristics such as climate, society cultural background such as politics, economics and culture and additionally, aspects of ideas such as geometric geography and astronomical features. However, the house for ordinary people within Hanyang, the capital city, was built with society cultural background rather than natural characteristics and aspects of ideas. This dissertation assumes the features of the house for ordinary people that could not be dealt with by scanty information in early-Chosun period within Hanyang, considering the House law as an aspect of society cultural background based on Chunjin district where the city center of the capital was located at that time.
A private house contains detailed, comprehensive life of ordinary people and is a typical visible data created from the stream of social structure that reflects a general social phenomenon of the society at certain times. For such reasons as mentioned, the features of the private house include changing periodical aspects at certain times. The study of a private house has been based on the research of the buildings and books after the mid-Joseon period. However, it is rare to find private houses (or buildings) before the mid-Joseon period and some houses and buildings still exist but they are for high class people and such as houses within palace and houses with pavilion. It is hard to find their original forms because of extending and reconstruction of the buildings. A study of a house of nobility is reported through the books, paintings and diaries from Chosun period but a study of a house for ordinary people do not have enough materials for research. The subject of this dissertation is that a private house for ordinary people is defined by the boundary of the house and social class in early-Chosun period and that the boundary, size, form of the house and distance between pillars are analyzed and the regulation of the house boundary is compared with structure site within occupation layer in early-Joseon period, based on excavation investigation on 12-16 Chungjin district, Jongno, Seoul, Korea. The study of architecture in Joseon until now confirms spatial, design and style features of the houses (or structure sites)existing after the mid-Joseon period (after17thcentury) without considering classifyingerain the whole Chosunperiod. It has a limitation to present features of the houses in the early-Joseon period. Especially, although it laid the foundation of the study of traditional houses in Joseon, the study of house for ordinary people did not conduct a study by stage because of lack of data. The social features in the 16th of Joseon are that the politically, Confucian ethics and the study of the proprieties came in to wide use because the scholars who study Confucian went into politics and became larger. Andsocially, as Confucian society enlarged, family structure was rearranged based on Confucian ideas that contain primogeniture and adoption system. We could think that the government provided an institutional strategy such as Housing law and publishing the Confucian book of the proprieties and then the conventions and social customs of the Confucian could start to be absorbed to nobility. We also could think that the idea of nobility could be reflected to ordinary people as a strict social class. In this dissertation, the case of back ground in constructing a house is analyzed by Housing law regulation in the early-Joseon period. A private house for ordinary people was builtby dealing with function and purpose and inspired by natural characteristics such as climate, society cultural background such as politics, economics and culture and additionally, aspects of ideas such as geometric geography and astronomical features. However, the house for ordinary people within Hanyang, the capital city, was built with society cultural background rather than natural characteristics and aspects of ideas. This dissertation assumes the features of the house for ordinary people that could not be dealt with by scanty information in early-Chosun period within Hanyang, considering the House law as an aspect of society cultural background based on Chunjin district where the city center of the capital was located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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