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내쳐진 이래 인간은 철저하게 ‘나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하느님은 그런 인간에게 당신의 손길을 내미시며,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금 에덴 동산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자 하셨다. ‘에덴’이라는 본래 자리로의 ‘회복’을 위해 역사 안에 펼쳐지는 이같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산’이라는 모티브를 중심으로 구원 역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인간 구원을 위한 결정적인 사건들이 많은 경우 ‘산’이라는 모티브와 연관되어 나타났고, 비록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내쳐진 이래 인간은 철저하게 ‘나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하느님은 그런 인간에게 당신의 손길을 내미시며,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금 에덴 동산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자 하셨다. ‘에덴’이라는 본래 자리로의 ‘회복’을 위해 역사 안에 펼쳐지는 이같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산’이라는 모티브를 중심으로 구원 역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인간 구원을 위한 결정적인 사건들이 많은 경우 ‘산’이라는 모티브와 연관되어 나타났고, 비록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적으로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협조자로서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과 가까움을 누리던 인물들(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등) 역시 언제나 그 ‘산’에 들어서 있었다. 여기에 구원 역사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산’이라는 것, 곧 ‘에덴 동산’과 ‘골고타 언덕’이라는 사실은 성경 전통 내에서 ‘산’이라는 모티브가 차지하고 있는 독특하고도 특별한 위치와 더불어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행보가 ‘산’이라는 구체적인 자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드러내 보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구원 역사 곳곳에 등장하는 산들에 대한 언급을 통해 그 자리가 하느님을 만나 생명을 얻어 누리고 구원의 선취를 이루는 자리로서 궁극적으로 구원의 역사가 완성될 자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보증으로서 주어진 땅에 대한 약속과 맞물려 보다 구체적으로 역사 안에 드러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모리야 산’, ‘시나이 산’, ‘시온 산’ 등 구원 역사 안에 위치하는 크고 작은 산들을 의미론적으로 같은 선상에 둘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는 우리의 논의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는데, 이 모든 산들이 구원이라는 넓은 지평 아래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비추어줌으로써 하나의 의미를 향해, 하나의 자리를 향해 최종적으로 방향 지어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주어질 땅에 대한 표상을 통해서 이미 예고되었듯이, 그곳은 다름 아닌 ‘회복된 에덴 동산’으로서 인간 구원을 위한 오랜 여정의 종착지가 될 ‘골고타 언덕’이다. 이로써 모든 구세사적인 중심이 ‘골고타 언덕’과 ‘그 언덕’을 걸어가신 예수님께로 집중되고, 이 구원의 드라마는 절정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하느님과 같아지려 했던 아담과 달리 하느님께 철저히 순종하심으로써 인간이 되어 죽음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인간은 죽음을 넘어선 부활을 희망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죽음의 자리는 역설적이게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자리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새 아담, 둘째 아담 그리고 마지막 아담(1코린 15,45)으로서 첫째 아담이 걸려 넘어진 그 자리에 들어서시어 죄와 죽음을 쳐 이기심으로써 인간이 다시금 낙원의 풍요로움을 맛보며 하느님과 가까움을 누리던 생명의 그 자리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이로 인해, 이제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넘어선 생명을 희망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에덴 동산에서 그랬던 것과 같이 그렇게 ‘하느님의 얼굴을 다시금 뵐 수 있게 될 것’이다(묵시 22,4).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내쳐진 이래 인간은 철저하게 ‘나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하느님은 그런 인간에게 당신의 손길을 내미시며,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금 에덴 동산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자 하셨다. ‘에덴’이라는 본래 자리로의 ‘회복’을 위해 역사 안에 펼쳐지는 이같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산’이라는 모티브를 중심으로 구원 역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인간 구원을 위한 결정적인 사건들이 많은 경우 ‘산’이라는 모티브와 연관되어 나타났고, 비록 하느님의 얼굴을 직접적으로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협조자로서 그 누구보다도 하느님과 가까움을 누리던 인물들(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등) 역시 언제나 그 ‘산’에 들어서 있었다. 여기에 구원 역사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산’이라는 것, 곧 ‘에덴 동산’과 ‘골고타 언덕’이라는 사실은 성경 전통 내에서 ‘산’이라는 모티브가 차지하고 있는 독특하고도 특별한 위치와 더불어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행보가 ‘산’이라는 구체적인 자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드러내 보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구원 역사 곳곳에 등장하는 산들에 대한 언급을 통해 그 자리가 하느님을 만나 생명을 얻어 누리고 구원의 선취를 이루는 자리로서 궁극적으로 구원의 역사가 완성될 자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보증으로서 주어진 땅에 대한 약속과 맞물려 보다 구체적으로 역사 안에 드러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모리야 산’, ‘시나이 산’, ‘시온 산’ 등 구원 역사 안에 위치하는 크고 작은 산들을 의미론적으로 같은 선상에 둘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는 우리의 논의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는데, 이 모든 산들이 구원이라는 넓은 지평 아래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비추어줌으로써 하나의 의미를 향해, 하나의 자리를 향해 최종적으로 방향 지어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주어질 땅에 대한 표상을 통해서 이미 예고되었듯이, 그곳은 다름 아닌 ‘회복된 에덴 동산’으로서 인간 구원을 위한 오랜 여정의 종착지가 될 ‘골고타 언덕’이다. 이로써 모든 구세사적인 중심이 ‘골고타 언덕’과 ‘그 언덕’을 걸어가신 예수님께로 집중되고, 이 구원의 드라마는 절정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하느님과 같아지려 했던 아담과 달리 하느님께 철저히 순종하심으로써 인간이 되어 죽음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인간은 죽음을 넘어선 부활을 희망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죽음의 자리는 역설적이게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자리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새 아담, 둘째 아담 그리고 마지막 아담(1코린 15,45)으로서 첫째 아담이 걸려 넘어진 그 자리에 들어서시어 죄와 죽음을 쳐 이기심으로써 인간이 다시금 낙원의 풍요로움을 맛보며 하느님과 가까움을 누리던 생명의 그 자리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이로 인해, 이제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넘어선 생명을 희망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에덴 동산에서 그랬던 것과 같이 그렇게 ‘하느님의 얼굴을 다시금 뵐 수 있게 될 것’이다(묵시 22,4).
주제어
#에덴동산 골고타 언덕 구원론 인간구원 산 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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