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일제강점기, 1950~60년대, 1970~80년대의 각 시기별, 음반과 방송에서 존재하였던 창극의 양상을 파악하고 그 특징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음반과 방송으로 존재하였던 창극이 갖는 의의를 창극사적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본고는 각 시기 음반과 방송에서의 창극 자료를 균등하게 갖지 못한 채 연구를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의 경우, 음반과 방송 모두 선학들의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객관적 자료가 정리되었지만, 20세기 중‧후반(1950~80년대)의 경우는 음반과 방송 쪽 모두 전무하다고 할 정도로 선행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음반의 경우, 당시 국악 음반의 현황이 일부 소개되기도 하였지만 본격적으로 정리되지 못하였고, 방송의 경우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필자는 1950~80년대 음반과 방송 창극을 연구함에 있어, 일차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확인하고, 정리하는 작업부터 진행하였다. 그 결과, 음반의 경우는 어느 정도 해당 시기의 작품들이 수집되고 정리가 되었지만, 방송 쪽 자료는 소멸하거나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따라서 방송의 경우는 신문 기사를 통해 당시 창극 방송의 목록을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특징을 추론하며 분석하는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신영희 명창의 도움으로 확보할 수 있는 대본에 한 해 실제적 작품 분석을 하기도 하였지만 대상 자료가 부족한 관계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향후 보다 많은 자료가 확보되고 정리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언급한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며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Ⅱ장과 Ⅲ장, Ⅳ장의 내용은 각 장의 ...
본고는 일제강점기, 1950~60년대, 1970~80년대의 각 시기별, 음반과 방송에서 존재하였던 창극의 양상을 파악하고 그 특징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음반과 방송으로 존재하였던 창극이 갖는 의의를 창극사적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본고는 각 시기 음반과 방송에서의 창극 자료를 균등하게 갖지 못한 채 연구를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의 경우, 음반과 방송 모두 선학들의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객관적 자료가 정리되었지만, 20세기 중‧후반(1950~80년대)의 경우는 음반과 방송 쪽 모두 전무하다고 할 정도로 선행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음반의 경우, 당시 국악 음반의 현황이 일부 소개되기도 하였지만 본격적으로 정리되지 못하였고, 방송의 경우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필자는 1950~80년대 음반과 방송 창극을 연구함에 있어, 일차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확인하고, 정리하는 작업부터 진행하였다. 그 결과, 음반의 경우는 어느 정도 해당 시기의 작품들이 수집되고 정리가 되었지만, 방송 쪽 자료는 소멸하거나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따라서 방송의 경우는 신문 기사를 통해 당시 창극 방송의 목록을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특징을 추론하며 분석하는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신영희 명창의 도움으로 확보할 수 있는 대본에 한 해 실제적 작품 분석을 하기도 하였지만 대상 자료가 부족한 관계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향후 보다 많은 자료가 확보되고 정리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언급한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며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Ⅱ장과 Ⅲ장, Ⅳ장의 내용은 각 장의 소결을 통해 요약, 정리를 하였는바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으로 정리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먼저 필자는 Ⅱ장에서 일제강점기 음반과 방송에서의 창극의 존재 양상과 특징을 설명하였다. 필자는 유성기음반과 경성방송국을 통해 당시 음반과 방송 창극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성기 창극 음반은 1930년대에 본격적으로 발매가 되는데 1930년대 前半期와 後半期에서 ‘창극’이라는 용어가 포괄하는 음반의 범주가 달라짐을 확인하였다. 즉, 1930년대 ‘창극’ 음반에 포섭되는 범위는 현재 통상 정의하는 ‘창극’과는 다르며 ‘판소리’를 비롯하여 ‘판소리의 새로운 레퍼토리’는 물론, ‘신극과 결합된 형태의 전통극’을 일컫기도 하였다. ‘창극’의 범주는 193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안정화되는데 이에는 무대극으로서 창극의 성립과 활동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 보았다. 일제강점기 방송에서 다루어진 창극의 경우 역시 경성방송국의 이중방송 실시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서 볼 필요가 있다. 이중방송이 실시되기 이전의 창극은 당시 무대극으로 인기가 있었던 구극단체 ‘광월단’의 배우들이 출연하여 연속적으로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형태로 방송이 되었다. 반면 이중방송 실시 이후에는 토막극 위주로 방송이 되었다. 연속형태로 작품의 전체를 방송하는 경우는 창극조(판소리) 방송으로 진행이 되었고, 창극의 경우는 연속형태도 아니었을 뿐더러 작품 전체의 방송을 지향하지도 않았다. Ⅲ장에서는 1950~60년대의 음반, 방송 창극의 존재양상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먼저 음반 쪽에서 창극은 1960년대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1950년대는 음반 시장 전체의 침체로 새로운 음반이 발매되기가 매우 어려웠고, 국악 음반의 경우는 그 수가 더욱 적었다. 더군다나 창극 음반은 이전 빅타의 <춘향전 전집>을 재발매한 음반만 있었을 뿐, 새로운 음반은 없었다. 1960년대 LP시대가 도래하면서 창극 음반은 새롭게 발매될 수 있었는데, 본고에서는 이 시기 창극 음반을 발매한 음반회사와 창극 작품, 그리고 녹음자 등을 목록을 통해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 발매된 창극 음반의 특징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언급하였다. 첫째, 이 시기 음반들은 작품 전체를 녹음하지 않고 일부의 장면을 녹음하는 것으로 창극 음반을 제작하였다. 둘째, 음반의 형식이 판소리가 아닌 창극임에도 판소리의 음악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방송의 경우를 살펴보면 1950년대 <라디오 창극>이라는 프로그램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창극을 방송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60년대에는 라디오 드라마의 활발한 제작과 인기 속에서 ‘연속 창극’의 이름으로 창극이 드라마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 시기 텔레비전에서도 창극 프로그램을 미약하게나마 볼 수 있었는데, 당대 인기를 끌었던 여성국극이 주요 내용이었다. 여성국극은 1960년대 텔레비전 프로로도 편성이 되는데, 무대극으로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여성국극이 방송으로 편입되어 2~3년간 지속되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부분이다. Ⅳ장은 1970~80년대의 음반과 방송에서 볼 수 있는 창극의 존재양상과 특징을 다룬 부분이다. 이 시기에는 음반은 물론 방송에서도 창극의 제작이 여느 시기와 견주어 활발하게 이루어진 때이다. 창극 음반의 발매도 많은 뿐 아니라, ‘창극’을 중심에 두고 본격적으로 방송을 제작한 유일한 시기이기도 하다. 본고는 1970~80년대의 경우에도 창극 음반을 최대한 수집하여 목록으로 작성하였고, 실제 음반을 들어봄으로써 이 시기 음반의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 작품의 전체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음반이 제작되었다. 둘째, 창극 음반의 음악적 성격이 판소리보다는 연극 소리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보다는 극에 중점을 두며 음반이 녹음되었다. 방송에서의 양상은 텔레비전에서 창극을 중점에 두고 제작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970년대 MBC의 <내 강산 우리노래>와 1980년대 KBS의 <KBS 지정석>이 그것이다. 이 두 프로그램은 국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성격으로 출발을 하였지만, 점차 ‘창극’에 무게를 두어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 방송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들 방송 창극의 특징으로 본고에서는 역시 세 가지를 언급하였다. 첫째, 방송에서의 창극 레퍼토리는 기존 고전소설을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였는데, 고전소설의 원작을 그대로 창극화한 것이 아닌, 내용을 흥미 있게 변형하여 창극화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방송 창극에서는 서술체인 도창자의 어투를 대화체로 바꾸고 도창자를 방송 무대 세트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도창자와 시청자와의 거리를 좁히도록 하였다. 셋째, 방송에서의 창극은 인물 간 대사의 비중을 높이고, 창의 비중은 낮추었다. 창 역시도 판소리의 공력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이 아닌 드라마의 분위기와 정서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구성을 하였다. 본고는 마지막으로 Ⅴ장을 통해 20세기 창극의 음반⋅방송화가 갖는 창극사적 의미를 탐색해보았다. 먼저, 음반과 방송은 ‘창극’이라는 용어의 등장과 용례에 대한 재검토의 기회를 마련하였다. 1930년대 ‘창극’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방송을 통해서였다. 이후 ‘창극’은 음반시장의 경쟁 논리 속에서 舊樂의 ‘새로움’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그 용례를 확장하여 사용하였다. 즉, ‘창극’이라는 용어의 초기 외연은 단지 판소리를 포함한 전통연희자들의 음악극 형태의 무대 공연만을 일컫지 않았다는 것이다. 1인창의 판소리는 물론, ‘새로운 레퍼토리’로서 판소리 작품, 그리고 신극 배우들과 구극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여 꾸미는 공연, 신극배우 중심이되 구극 배우가 참여한 공연 등 모두를 일컫는 매우 넓은 의미였다. 또한 초기 ‘창극’이 포괄했던 다양하고 넓은 의미는 이후 1934년 조선성악연구회 중심의 무대창극이 ‘창극’의 양식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바뀌고 혁신되어야 할 대상으로 작용하였다. 1920년대 이후 신파극과 신극의 영향으로 무대극으로 창극이 주춤할 때, 음반과 방송으로 창극은 존재하였다. 그 때 통용되었던 창극의 양식이 무대에도 적용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창을 맡은 부분과 극을 맡은 부분의 인물이 분리되거나, 창과 극이 어울리지 못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성악연구회는 음악과 극을 따로 분리하여 배우를 배치하고, 무대 창극을 구성하였던 부분을 지적하며, 한 사람이 한 배역을 함으로써 음악과 극이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歌劇’으로서 창극을 지향하였다. 음반과 방송 창극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무대창극을 보완하여, 무대극과 서로 상호작용을 해왔다는 점에서도 두 번째 의미를 갖는다. 창극은 20세기 무대를 통해 처음 등장했을 때, 매우 신선한 전통극의 장르였지만 일본의 신파극과 신극이 점차 무대를 장악하면서 舊劇/舊樂의 이름으로 무대에서 밀려나게 된다. 전통극으로서 창극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또한 이를 연행했던 연희자들의 입지가 좁아졌을 때, 신문명으로서 음반과 방송은 이를 해소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자 ‘도구’였다. 전통연희자들은 무대가 아닌 음반과 방송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며 창극을 유지시켜나갔고, 창극 역시 비단 무대가 아닌 음반과 방송을 통해 대중과 호흡할 수 있었다. 음반과 방송은 무대 창극이 약화되었을 때, 보완재로서 기능을 하였다. 이후 일본의 전시체제와 태평양 전쟁으로 음반과 방송에서 더 이상 창극을 다룰 수 없을 때에는 무대극으로 창극이 꾸준한 행보를 이어가며 창극의 존재를 유지하여 나갔다. 이러한 흐름은 1950~80년대에서도 볼 수 있는 바이다. 1950년대 여성국극이 무대를 장악하였을 때, 라디오 프로그램으로서 <라디오 창극>은 꾸준히 방송이 되었다. 여성국극이 무대에서 밀려나는 1960년대에는 <국극무대>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국극을 볼 수 있었다. 1970년대 국립창극단의 소속 배우들은 국립창극단을 나와 텔레비전 창극 프로그램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국립창극단이 안정화되면서는 더 이상 음반과 방송을 통해 창극을 볼 수 있는 일이 없어졌다. 음반과 방송은 창극의 연행자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였으며 활동의 또 다른 공간이었다. 그리고 무대극과 달리 창극의 드라마적 요소(극적 요소)를 충실히 발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장이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음반과 방송은 ‘공공성’과 ‘전파성’을 갖는 매체라는 점에서 창극을 대중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였다. 1960년대 이후 전통문화에 대한 보호와 육성의 정책이 실시되면서, 판소리와 창극은 물론 ‘국악’은 보호하고 지켜야 할 당위의 대상이 되었다. 대중들은 다양한 문화의 홍수 속에서 ‘전통’문화를 자발적으로 즐기지 않았고, 이에 따라 전통문화는 존재의 위기를 겪게 되었다. 사회지도층은 물론 일반 시민들은 ‘국악’을 방송과 음반으로 제작하라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며, 방송의 사회적, 교육적 기능을 말하였고, 또한 음반의 기록성을 강조하였다. ‘창극’은 전통음악(국악)의 여러 영역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 가운데 하나였다. 바로 창극이 갖고 있는 드라마 즉, 극적 속성 때문이다. 창극은 전통음악을 주재료로 하면서도 ‘이야기’를 갖고 있는 전통예술이라는 점에서 드라마와 서사를 좋아하는 대중들에게 다른 국악 장르에 비해 친밀함을 준다. 창극이 소재로 하고 있는 고전소설의 레퍼토리는 통속성과 대중성을 갖추고 있고, 이를 적절하게 창과 조화하여 음반과 방송으로 제작한다면, 침체되는 전통예술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1970~80년대 ‘국악’을 내세우는 방송 프로그램이 결국엔 ‘창극’을 중심으로 제작된 정황, 1970년대 음반 창극의 흐름이 연극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정황 등은 모두 전통으로서 창극이 갖는 당위성이 대중성을 획득하기 위한 방편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음반과 방송으로 존재하였던 창극은 ‘전통음악극’으로서 창극을 바라볼 때, 그 대중성의 방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본고는 그간 창극 연구는 물론 음반사와 방송사 쪽의 연구에서도 간과되었던 ‘음반, 방송 창극’에 관심을 두고 그 존재양상을 파악하고, 특징을 나름대로 짚어보았다. 필자는 창극 연구를 더 이상 무대극에 국한하여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세기 등장한 새로운 매체들은 문화의 지형을 흔들어 놓을 만큼 강력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매체와 대중의 관계는 매우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창극은 대중성을 갖춘 대표적인 전통예술의 한 장르라는 점에서, 그리고 20세기 창극의 존재기반은 결코 무대에만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앞으로의 관심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고는 그 시작으로서 당시의 실상을 파악하고 특징을 분석하는 작업, 그리고 의미에 관한 논의를 하였다. 이는 앞으로 진행되어야 할 연구의 기반에 불과하며 향후 세부 내용에 대한 연구를 해 나갈 것이다. 기실 필자는 ‘음반과 방송에서의 창극’이라는 연구 주제를 수면으로 끌어와 이를 학계에 드러내고, 개괄적 특징을 정리하는 작업에 많은 에너지를 쏟느라 개별 작품에 대한 세밀한 연구를 진행하지는 못하였다. 이후 음반과 방송 창극의 개별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무대극과의 관계, 판소리 사설과의 관계, 표현 형식의 문제 등 다양한 쟁점으로 논의를 진행할 생각이다. 또한 1차 자료에 대한 상세한 정리도 이루어져야 한다. 1950~80년대 창극 음반의 경우는 작품의 내용 정리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개별 음반을 채록하여 사설을 정리하는 1차 작업이 필요하다. 방송 쪽의 경우도 방송국과의 적극적인 공조를 통해 방송국에 묻혀있는 창극 자료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정리해나가야 한다. 이는 방송사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도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전통예술 장르가 방송에서 제작되고 활용되었던 사실들에 대한 체계적 정리와 분석을 통해 방송이 갖는 공영성과 사회성, 오락성, 교육성 등의 다양한 측면을 논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본고의 연구를 시발로, 향후 창극 연구의 외연이 보다 넓어지고, 매체와 전통문화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 역시 확장되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방송과 음반창극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필자 역시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본고는 일제강점기, 1950~60년대, 1970~80년대의 각 시기별, 음반과 방송에서 존재하였던 창극의 양상을 파악하고 그 특징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음반과 방송으로 존재하였던 창극이 갖는 의의를 창극사적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본고는 각 시기 음반과 방송에서의 창극 자료를 균등하게 갖지 못한 채 연구를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의 경우, 음반과 방송 모두 선학들의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객관적 자료가 정리되었지만, 20세기 중‧후반(1950~80년대)의 경우는 음반과 방송 쪽 모두 전무하다고 할 정도로 선행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음반의 경우, 당시 국악 음반의 현황이 일부 소개되기도 하였지만 본격적으로 정리되지 못하였고, 방송의 경우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필자는 1950~80년대 음반과 방송 창극을 연구함에 있어, 일차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확인하고, 정리하는 작업부터 진행하였다. 그 결과, 음반의 경우는 어느 정도 해당 시기의 작품들이 수집되고 정리가 되었지만, 방송 쪽 자료는 소멸하거나 접근할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따라서 방송의 경우는 신문 기사를 통해 당시 창극 방송의 목록을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특징을 추론하며 분석하는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신영희 명창의 도움으로 확보할 수 있는 대본에 한 해 실제적 작품 분석을 하기도 하였지만 대상 자료가 부족한 관계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향후 보다 많은 자료가 확보되고 정리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언급한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며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Ⅱ장과 Ⅲ장, Ⅳ장의 내용은 각 장의 소결을 통해 요약, 정리를 하였는바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으로 정리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먼저 필자는 Ⅱ장에서 일제강점기 음반과 방송에서의 창극의 존재 양상과 특징을 설명하였다. 필자는 유성기음반과 경성방송국을 통해 당시 음반과 방송 창극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성기 창극 음반은 1930년대에 본격적으로 발매가 되는데 1930년대 前半期와 後半期에서 ‘창극’이라는 용어가 포괄하는 음반의 범주가 달라짐을 확인하였다. 즉, 1930년대 ‘창극’ 음반에 포섭되는 범위는 현재 통상 정의하는 ‘창극’과는 다르며 ‘판소리’를 비롯하여 ‘판소리의 새로운 레퍼토리’는 물론, ‘신극과 결합된 형태의 전통극’을 일컫기도 하였다. ‘창극’의 범주는 193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안정화되는데 이에는 무대극으로서 창극의 성립과 활동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 보았다. 일제강점기 방송에서 다루어진 창극의 경우 역시 경성방송국의 이중방송 실시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서 볼 필요가 있다. 이중방송이 실시되기 이전의 창극은 당시 무대극으로 인기가 있었던 구극단체 ‘광월단’의 배우들이 출연하여 연속적으로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형태로 방송이 되었다. 반면 이중방송 실시 이후에는 토막극 위주로 방송이 되었다. 연속형태로 작품의 전체를 방송하는 경우는 창극조(판소리) 방송으로 진행이 되었고, 창극의 경우는 연속형태도 아니었을 뿐더러 작품 전체의 방송을 지향하지도 않았다. Ⅲ장에서는 1950~60년대의 음반, 방송 창극의 존재양상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먼저 음반 쪽에서 창극은 1960년대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1950년대는 음반 시장 전체의 침체로 새로운 음반이 발매되기가 매우 어려웠고, 국악 음반의 경우는 그 수가 더욱 적었다. 더군다나 창극 음반은 이전 빅타의 <춘향전 전집>을 재발매한 음반만 있었을 뿐, 새로운 음반은 없었다. 1960년대 LP시대가 도래하면서 창극 음반은 새롭게 발매될 수 있었는데, 본고에서는 이 시기 창극 음반을 발매한 음반회사와 창극 작품, 그리고 녹음자 등을 목록을 통해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 발매된 창극 음반의 특징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언급하였다. 첫째, 이 시기 음반들은 작품 전체를 녹음하지 않고 일부의 장면을 녹음하는 것으로 창극 음반을 제작하였다. 둘째, 음반의 형식이 판소리가 아닌 창극임에도 판소리의 음악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방송의 경우를 살펴보면 1950년대 <라디오 창극>이라는 프로그램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창극을 방송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60년대에는 라디오 드라마의 활발한 제작과 인기 속에서 ‘연속 창극’의 이름으로 창극이 드라마에 편입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 시기 텔레비전에서도 창극 프로그램을 미약하게나마 볼 수 있었는데, 당대 인기를 끌었던 여성국극이 주요 내용이었다. 여성국극은 1960년대 텔레비전 프로로도 편성이 되는데, 무대극으로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여성국극이 방송으로 편입되어 2~3년간 지속되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부분이다. Ⅳ장은 1970~80년대의 음반과 방송에서 볼 수 있는 창극의 존재양상과 특징을 다룬 부분이다. 이 시기에는 음반은 물론 방송에서도 창극의 제작이 여느 시기와 견주어 활발하게 이루어진 때이다. 창극 음반의 발매도 많은 뿐 아니라, ‘창극’을 중심에 두고 본격적으로 방송을 제작한 유일한 시기이기도 하다. 본고는 1970~80년대의 경우에도 창극 음반을 최대한 수집하여 목록으로 작성하였고, 실제 음반을 들어봄으로써 이 시기 음반의 특징을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 작품의 전체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음반이 제작되었다. 둘째, 창극 음반의 음악적 성격이 판소리보다는 연극 소리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보다는 극에 중점을 두며 음반이 녹음되었다. 방송에서의 양상은 텔레비전에서 창극을 중점에 두고 제작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970년대 MBC의 <내 강산 우리노래>와 1980년대 KBS의 <KBS 지정석>이 그것이다. 이 두 프로그램은 국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성격으로 출발을 하였지만, 점차 ‘창극’에 무게를 두어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 방송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들 방송 창극의 특징으로 본고에서는 역시 세 가지를 언급하였다. 첫째, 방송에서의 창극 레퍼토리는 기존 고전소설을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였는데, 고전소설의 원작을 그대로 창극화한 것이 아닌, 내용을 흥미 있게 변형하여 창극화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방송 창극에서는 서술체인 도창자의 어투를 대화체로 바꾸고 도창자를 방송 무대 세트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도창자와 시청자와의 거리를 좁히도록 하였다. 셋째, 방송에서의 창극은 인물 간 대사의 비중을 높이고, 창의 비중은 낮추었다. 창 역시도 판소리의 공력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이 아닌 드라마의 분위기와 정서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구성을 하였다. 본고는 마지막으로 Ⅴ장을 통해 20세기 창극의 음반⋅방송화가 갖는 창극사적 의미를 탐색해보았다. 먼저, 음반과 방송은 ‘창극’이라는 용어의 등장과 용례에 대한 재검토의 기회를 마련하였다. 1930년대 ‘창극’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방송을 통해서였다. 이후 ‘창극’은 음반시장의 경쟁 논리 속에서 舊樂의 ‘새로움’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그 용례를 확장하여 사용하였다. 즉, ‘창극’이라는 용어의 초기 외연은 단지 판소리를 포함한 전통연희자들의 음악극 형태의 무대 공연만을 일컫지 않았다는 것이다. 1인창의 판소리는 물론, ‘새로운 레퍼토리’로서 판소리 작품, 그리고 신극 배우들과 구극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여 꾸미는 공연, 신극배우 중심이되 구극 배우가 참여한 공연 등 모두를 일컫는 매우 넓은 의미였다. 또한 초기 ‘창극’이 포괄했던 다양하고 넓은 의미는 이후 1934년 조선성악연구회 중심의 무대창극이 ‘창극’의 양식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바뀌고 혁신되어야 할 대상으로 작용하였다. 1920년대 이후 신파극과 신극의 영향으로 무대극으로 창극이 주춤할 때, 음반과 방송으로 창극은 존재하였다. 그 때 통용되었던 창극의 양식이 무대에도 적용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창을 맡은 부분과 극을 맡은 부분의 인물이 분리되거나, 창과 극이 어울리지 못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성악연구회는 음악과 극을 따로 분리하여 배우를 배치하고, 무대 창극을 구성하였던 부분을 지적하며, 한 사람이 한 배역을 함으로써 음악과 극이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歌劇’으로서 창극을 지향하였다. 음반과 방송 창극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무대창극을 보완하여, 무대극과 서로 상호작용을 해왔다는 점에서도 두 번째 의미를 갖는다. 창극은 20세기 무대를 통해 처음 등장했을 때, 매우 신선한 전통극의 장르였지만 일본의 신파극과 신극이 점차 무대를 장악하면서 舊劇/舊樂의 이름으로 무대에서 밀려나게 된다. 전통극으로서 창극이 점차 설 자리를 잃고, 또한 이를 연행했던 연희자들의 입지가 좁아졌을 때, 신문명으로서 음반과 방송은 이를 해소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자 ‘도구’였다. 전통연희자들은 무대가 아닌 음반과 방송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며 창극을 유지시켜나갔고, 창극 역시 비단 무대가 아닌 음반과 방송을 통해 대중과 호흡할 수 있었다. 음반과 방송은 무대 창극이 약화되었을 때, 보완재로서 기능을 하였다. 이후 일본의 전시체제와 태평양 전쟁으로 음반과 방송에서 더 이상 창극을 다룰 수 없을 때에는 무대극으로 창극이 꾸준한 행보를 이어가며 창극의 존재를 유지하여 나갔다. 이러한 흐름은 1950~80년대에서도 볼 수 있는 바이다. 1950년대 여성국극이 무대를 장악하였을 때, 라디오 프로그램으로서 <라디오 창극>은 꾸준히 방송이 되었다. 여성국극이 무대에서 밀려나는 1960년대에는 <국극무대>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국극을 볼 수 있었다. 1970년대 국립창극단의 소속 배우들은 국립창극단을 나와 텔레비전 창극 프로그램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국립창극단이 안정화되면서는 더 이상 음반과 방송을 통해 창극을 볼 수 있는 일이 없어졌다. 음반과 방송은 창극의 연행자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였으며 활동의 또 다른 공간이었다. 그리고 무대극과 달리 창극의 드라마적 요소(극적 요소)를 충실히 발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장이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음반과 방송은 ‘공공성’과 ‘전파성’을 갖는 매체라는 점에서 창극을 대중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였다. 1960년대 이후 전통문화에 대한 보호와 육성의 정책이 실시되면서, 판소리와 창극은 물론 ‘국악’은 보호하고 지켜야 할 당위의 대상이 되었다. 대중들은 다양한 문화의 홍수 속에서 ‘전통’문화를 자발적으로 즐기지 않았고, 이에 따라 전통문화는 존재의 위기를 겪게 되었다. 사회지도층은 물론 일반 시민들은 ‘국악’을 방송과 음반으로 제작하라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며, 방송의 사회적, 교육적 기능을 말하였고, 또한 음반의 기록성을 강조하였다. ‘창극’은 전통음악(국악)의 여러 영역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 가운데 하나였다. 바로 창극이 갖고 있는 드라마 즉, 극적 속성 때문이다. 창극은 전통음악을 주재료로 하면서도 ‘이야기’를 갖고 있는 전통예술이라는 점에서 드라마와 서사를 좋아하는 대중들에게 다른 국악 장르에 비해 친밀함을 준다. 창극이 소재로 하고 있는 고전소설의 레퍼토리는 통속성과 대중성을 갖추고 있고, 이를 적절하게 창과 조화하여 음반과 방송으로 제작한다면, 침체되는 전통예술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다. 1970~80년대 ‘국악’을 내세우는 방송 프로그램이 결국엔 ‘창극’을 중심으로 제작된 정황, 1970년대 음반 창극의 흐름이 연극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정황 등은 모두 전통으로서 창극이 갖는 당위성이 대중성을 획득하기 위한 방편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음반과 방송으로 존재하였던 창극은 ‘전통음악극’으로서 창극을 바라볼 때, 그 대중성의 방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본고는 그간 창극 연구는 물론 음반사와 방송사 쪽의 연구에서도 간과되었던 ‘음반, 방송 창극’에 관심을 두고 그 존재양상을 파악하고, 특징을 나름대로 짚어보았다. 필자는 창극 연구를 더 이상 무대극에 국한하여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20세기 등장한 새로운 매체들은 문화의 지형을 흔들어 놓을 만큼 강력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매체와 대중의 관계는 매우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창극은 대중성을 갖춘 대표적인 전통예술의 한 장르라는 점에서, 그리고 20세기 창극의 존재기반은 결코 무대에만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앞으로의 관심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고는 그 시작으로서 당시의 실상을 파악하고 특징을 분석하는 작업, 그리고 의미에 관한 논의를 하였다. 이는 앞으로 진행되어야 할 연구의 기반에 불과하며 향후 세부 내용에 대한 연구를 해 나갈 것이다. 기실 필자는 ‘음반과 방송에서의 창극’이라는 연구 주제를 수면으로 끌어와 이를 학계에 드러내고, 개괄적 특징을 정리하는 작업에 많은 에너지를 쏟느라 개별 작품에 대한 세밀한 연구를 진행하지는 못하였다. 이후 음반과 방송 창극의 개별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무대극과의 관계, 판소리 사설과의 관계, 표현 형식의 문제 등 다양한 쟁점으로 논의를 진행할 생각이다. 또한 1차 자료에 대한 상세한 정리도 이루어져야 한다. 1950~80년대 창극 음반의 경우는 작품의 내용 정리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개별 음반을 채록하여 사설을 정리하는 1차 작업이 필요하다. 방송 쪽의 경우도 방송국과의 적극적인 공조를 통해 방송국에 묻혀있는 창극 자료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정리해나가야 한다. 이는 방송사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도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전통예술 장르가 방송에서 제작되고 활용되었던 사실들에 대한 체계적 정리와 분석을 통해 방송이 갖는 공영성과 사회성, 오락성, 교육성 등의 다양한 측면을 논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본고의 연구를 시발로, 향후 창극 연구의 외연이 보다 넓어지고, 매체와 전통문화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 역시 확장되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방송과 음반창극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필자 역시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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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 정보
저자
송소라
학위수여기관
고려대학교
학위구분
국내박사
학과
국어국문학과
지도교수
김기형
발행연도
2017
총페이지
iii, 245 p.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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