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아시아의 차가 유럽으로 유입된 후 영국의 홍차문화를 형성한 국제적 차산업을 고찰하고, 영국의 왕실과 대중의 차소비 및 그 과정에서 어떠한 양상과 발전과정을 보이며 차문화를 형성하였는지 입체적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시대적 연구 범위를 17에서 19세기로 한정하고 지리적 연구 범위를 영국을 중심으로 차를 거래하는 아시아와 유럽 주변국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 미국과 인도 스리랑카로 정하였다. 영국의 차와 차문화 수용 과정에서 차의 유입, 수용양상, 차문화 형성 그리고 홍차문화의 양상에서 왕실과 대중의 차소비, 차 수출입과 생산, 차문화의 시간과 공간을 조사 연구하였다. 영국 홍차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연구한 결과로 세기별 영국 홍차문화의 특징을 도출하였다. 17세기 영국 홍차문화 도입기의 배경에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영향이 컸다. 물리적인 차의 이동을 포함하여 그들이 앞서가자고 있던 차문화가 고스란히 영국 왕실과 대중들에게 전해지게 된다. 이는 차에 설탕을 타 마시는 포르투갈식 차문화와 찻잔 받침에 차를 마시는 네덜란드식 차문화, 차에 우유를 타 마시는 프랑스식 차문화이다. 당시 차의 역할은 약리효과가 강한 의약품의 성격으로 인식되어 음용되었다. 깨끗한 식수의 부족과 설탕의 단맛 같은 영향으로 차의 인기는 증가하여 과시적 사치품으로 음용되었다. 왕실 밖 공공장소에서는 커피하우스의 등장으로 차가 대중들에게 판매되나 주로 남성 고객층을 중심으로 차소비가 이루어졌다. 17세기 말 중국으로부터 차를 직수입하게 되면서 공급의 안정과 수요 충족이 맞물리며 동인도회사의 이윤이 늘어난다. 18세기 영국 홍차문화의 정착기의 배경에는 왕실에서 차가 확고한 왕실 문화로 자리매김하였다는 것과 차소비의 대중적 확대이다. 은제 차도구를 만들어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티 파티를 주최한 앤 여왕을 기점으로 영국 왕실의 홍차문화는 그 주체성을 추구해간다. 트와이닝과 같은 차 전문점이 늘어 가정에서 차를 소비하는 것이 대중화되었다. 산업혁명을 통해 영국식 도자기의 완성으로 가정 내 음다가 확산하였고 일터에서도 차를 마시는 노동자가 늘었다. 티 가든의 유행으로 오락과 휴식에 차를 함께하는 영국인의 놀이 문화가 정착한다. 남성 중심의 차문화에서 가족 중심의 차문화로 소비 성별·연령·계층이 넓어지게 되었다. 소비의 확대는 무역량의 증가를 의미하여 중국에서 수입하는 차의 양은 급격히 증가하였고 이는 막대한 은 유출과 대 중국 ...
이 논문은 아시아의 차가 유럽으로 유입된 후 영국의 홍차문화를 형성한 국제적 차산업을 고찰하고, 영국의 왕실과 대중의 차소비 및 그 과정에서 어떠한 양상과 발전과정을 보이며 차문화를 형성하였는지 입체적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시대적 연구 범위를 17에서 19세기로 한정하고 지리적 연구 범위를 영국을 중심으로 차를 거래하는 아시아와 유럽 주변국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 미국과 인도 스리랑카로 정하였다. 영국의 차와 차문화 수용 과정에서 차의 유입, 수용양상, 차문화 형성 그리고 홍차문화의 양상에서 왕실과 대중의 차소비, 차 수출입과 생산, 차문화의 시간과 공간을 조사 연구하였다. 영국 홍차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연구한 결과로 세기별 영국 홍차문화의 특징을 도출하였다. 17세기 영국 홍차문화 도입기의 배경에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영향이 컸다. 물리적인 차의 이동을 포함하여 그들이 앞서가자고 있던 차문화가 고스란히 영국 왕실과 대중들에게 전해지게 된다. 이는 차에 설탕을 타 마시는 포르투갈식 차문화와 찻잔 받침에 차를 마시는 네덜란드식 차문화, 차에 우유를 타 마시는 프랑스식 차문화이다. 당시 차의 역할은 약리효과가 강한 의약품의 성격으로 인식되어 음용되었다. 깨끗한 식수의 부족과 설탕의 단맛 같은 영향으로 차의 인기는 증가하여 과시적 사치품으로 음용되었다. 왕실 밖 공공장소에서는 커피하우스의 등장으로 차가 대중들에게 판매되나 주로 남성 고객층을 중심으로 차소비가 이루어졌다. 17세기 말 중국으로부터 차를 직수입하게 되면서 공급의 안정과 수요 충족이 맞물리며 동인도회사의 이윤이 늘어난다. 18세기 영국 홍차문화의 정착기의 배경에는 왕실에서 차가 확고한 왕실 문화로 자리매김하였다는 것과 차소비의 대중적 확대이다. 은제 차도구를 만들어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티 파티를 주최한 앤 여왕을 기점으로 영국 왕실의 홍차문화는 그 주체성을 추구해간다. 트와이닝과 같은 차 전문점이 늘어 가정에서 차를 소비하는 것이 대중화되었다. 산업혁명을 통해 영국식 도자기의 완성으로 가정 내 음다가 확산하였고 일터에서도 차를 마시는 노동자가 늘었다. 티 가든의 유행으로 오락과 휴식에 차를 함께하는 영국인의 놀이 문화가 정착한다. 남성 중심의 차문화에서 가족 중심의 차문화로 소비 성별·연령·계층이 넓어지게 되었다. 소비의 확대는 무역량의 증가를 의미하여 중국에서 수입하는 차의 양은 급격히 증가하였고 이는 막대한 은 유출과 대 중국 무역적자 부담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19세기의 영국 홍차문화 정착기의 배경에는 앞서 대중적으로 늘어난 차소비와 영국식 차생활문화의 확대이다. 생활필수품으로 차를 소비하게 된 영국인들에게 고품질의 차를 대량으로 나르기 위하여 티 클리퍼가 활약한다. 절대 금주 운동과 애프터눈 티의 확산으로 급증한 차 수요를 위해 대 중국 차 무역량을 늘리고자 자유무역을 요구한다. 무역적자를 타개하고자 아편 밀수를 감행하고 훗날 아편전쟁까지 불사하여 차 거래 무역항을 늘리고 많은 양의 차를 영국 본토에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급격한 차 소비의 증가는 영국 자국력으로 생산하는 차에 대한 희구를 불러일으키게 되어 식민지 인도 북동부에서 싱포족으로 하여금 아사미카종을 발견하고 또한 인도에 중국 소엽종의 종자를 식재하여 인도 차생산에 성공한다. 또한, 커피 산업이 어려워진 스리랑카에 아사미카종의 차나무를 심어 실론티 생산에 성공한다. 19세기는 영국의 제국주의적 세계관과 권력으로 중국으로부터 많은 차를 수입하고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영국차를 생산 할 수 있었다. 제국주의 영국은 많은 전쟁을 하며 필요한 대금을 차와 같은 상품에 부과하는 조세로 충당하고자 하였는데 이로 인한 식민지 미국과 보스턴차사건과 같은 갈등을 겪었고 미국인들이 차를 거부하는 모습을 통하여 차는 곧 영국의 것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증이 되기도 하였다. 안정적인 차공급을 얻게 되자 영국 본토의 차소비와 문화는 궤도에 올라 안정화되었다. 티 룸이 생기고 기차의 식당칸 등 다양한 장소에서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이 논문은 차의 성격이 17세기는 약리품 18세기는 건강음료 19세기는 기호음료로 변화하며 영국인들에게 차의 역할이 식사, 간식, 휴식의 기능을 수행하고 분화된 티 타임과 차 소비 장소 등을 통하여 사랑받아 왔음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입체적으로 규명하고자 차의 약리학적 효과와 차 수출입·생산과 같은 차산업, 애프터눈 티와 같은 티 타임과 커피하우스와 티 가든 티 룸 등의 차소비 공간의 변화에 따른 남성, 가족, 여성 중심의 차문화 전개 과정을 주장하였다. 소비 계층은 왕실과 귀족층으로 대표되는 상류층 그리고 중산층과 노동계층으로 대표되는 대중의 차 소비를 비교하여 논하였다. 영국 홍차문화의 세계화라는 후행 연구 주제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그것을 위한 선행 연구적 성격으로 영국 홍차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이 논문은 아시아의 차가 유럽으로 유입된 후 영국의 홍차문화를 형성한 국제적 차산업을 고찰하고, 영국의 왕실과 대중의 차소비 및 그 과정에서 어떠한 양상과 발전과정을 보이며 차문화를 형성하였는지 입체적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시대적 연구 범위를 17에서 19세기로 한정하고 지리적 연구 범위를 영국을 중심으로 차를 거래하는 아시아와 유럽 주변국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 미국과 인도 스리랑카로 정하였다. 영국의 차와 차문화 수용 과정에서 차의 유입, 수용양상, 차문화 형성 그리고 홍차문화의 양상에서 왕실과 대중의 차소비, 차 수출입과 생산, 차문화의 시간과 공간을 조사 연구하였다. 영국 홍차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연구한 결과로 세기별 영국 홍차문화의 특징을 도출하였다. 17세기 영국 홍차문화 도입기의 배경에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영향이 컸다. 물리적인 차의 이동을 포함하여 그들이 앞서가자고 있던 차문화가 고스란히 영국 왕실과 대중들에게 전해지게 된다. 이는 차에 설탕을 타 마시는 포르투갈식 차문화와 찻잔 받침에 차를 마시는 네덜란드식 차문화, 차에 우유를 타 마시는 프랑스식 차문화이다. 당시 차의 역할은 약리효과가 강한 의약품의 성격으로 인식되어 음용되었다. 깨끗한 식수의 부족과 설탕의 단맛 같은 영향으로 차의 인기는 증가하여 과시적 사치품으로 음용되었다. 왕실 밖 공공장소에서는 커피하우스의 등장으로 차가 대중들에게 판매되나 주로 남성 고객층을 중심으로 차소비가 이루어졌다. 17세기 말 중국으로부터 차를 직수입하게 되면서 공급의 안정과 수요 충족이 맞물리며 동인도회사의 이윤이 늘어난다. 18세기 영국 홍차문화의 정착기의 배경에는 왕실에서 차가 확고한 왕실 문화로 자리매김하였다는 것과 차소비의 대중적 확대이다. 은제 차도구를 만들어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티 파티를 주최한 앤 여왕을 기점으로 영국 왕실의 홍차문화는 그 주체성을 추구해간다. 트와이닝과 같은 차 전문점이 늘어 가정에서 차를 소비하는 것이 대중화되었다. 산업혁명을 통해 영국식 도자기의 완성으로 가정 내 음다가 확산하였고 일터에서도 차를 마시는 노동자가 늘었다. 티 가든의 유행으로 오락과 휴식에 차를 함께하는 영국인의 놀이 문화가 정착한다. 남성 중심의 차문화에서 가족 중심의 차문화로 소비 성별·연령·계층이 넓어지게 되었다. 소비의 확대는 무역량의 증가를 의미하여 중국에서 수입하는 차의 양은 급격히 증가하였고 이는 막대한 은 유출과 대 중국 무역적자 부담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19세기의 영국 홍차문화 정착기의 배경에는 앞서 대중적으로 늘어난 차소비와 영국식 차생활문화의 확대이다. 생활필수품으로 차를 소비하게 된 영국인들에게 고품질의 차를 대량으로 나르기 위하여 티 클리퍼가 활약한다. 절대 금주 운동과 애프터눈 티의 확산으로 급증한 차 수요를 위해 대 중국 차 무역량을 늘리고자 자유무역을 요구한다. 무역적자를 타개하고자 아편 밀수를 감행하고 훗날 아편전쟁까지 불사하여 차 거래 무역항을 늘리고 많은 양의 차를 영국 본토에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급격한 차 소비의 증가는 영국 자국력으로 생산하는 차에 대한 희구를 불러일으키게 되어 식민지 인도 북동부에서 싱포족으로 하여금 아사미카종을 발견하고 또한 인도에 중국 소엽종의 종자를 식재하여 인도 차생산에 성공한다. 또한, 커피 산업이 어려워진 스리랑카에 아사미카종의 차나무를 심어 실론티 생산에 성공한다. 19세기는 영국의 제국주의적 세계관과 권력으로 중국으로부터 많은 차를 수입하고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영국차를 생산 할 수 있었다. 제국주의 영국은 많은 전쟁을 하며 필요한 대금을 차와 같은 상품에 부과하는 조세로 충당하고자 하였는데 이로 인한 식민지 미국과 보스턴차사건과 같은 갈등을 겪었고 미국인들이 차를 거부하는 모습을 통하여 차는 곧 영국의 것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증이 되기도 하였다. 안정적인 차공급을 얻게 되자 영국 본토의 차소비와 문화는 궤도에 올라 안정화되었다. 티 룸이 생기고 기차의 식당칸 등 다양한 장소에서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이 논문은 차의 성격이 17세기는 약리품 18세기는 건강음료 19세기는 기호음료로 변화하며 영국인들에게 차의 역할이 식사, 간식, 휴식의 기능을 수행하고 분화된 티 타임과 차 소비 장소 등을 통하여 사랑받아 왔음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입체적으로 규명하고자 차의 약리학적 효과와 차 수출입·생산과 같은 차산업, 애프터눈 티와 같은 티 타임과 커피하우스와 티 가든 티 룸 등의 차소비 공간의 변화에 따른 남성, 가족, 여성 중심의 차문화 전개 과정을 주장하였다. 소비 계층은 왕실과 귀족층으로 대표되는 상류층 그리고 중산층과 노동계층으로 대표되는 대중의 차 소비를 비교하여 논하였다. 영국 홍차문화의 세계화라는 후행 연구 주제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그것을 위한 선행 연구적 성격으로 영국 홍차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This thesis examines the international tea industry that formed the English tea culture after Asian tea was introduced to Europe, and examines tea consumption by the English royal family and the public, and how the tea culture was formed by showing what aspects and development process in the process...
This thesis examines the international tea industry that formed the English tea culture after Asian tea was introduced to Europe, and examines tea consumption by the English royal family and the public, and how the tea culture was formed by showing what aspects and development process in the process. was intended to be considered. The scope of historical research was limited to the 17th to 19th centuries, and the geographic scope of research was determined to be the English colonies of the United States and India, Sri Lanka, neighboring countries in Asia and Europe that trade tea mainly in England. In the process of accepting tea and tea culture in the UK, the time and space of tea consumption, import/export and production of tea, and tea culture were investigated and studied in terms of tea inflow, acceptance, tea culture formation, and black tea culture. As a result of studying English black tea according to the historical flow, the characteristics of English tea culture by century were derived. In the background of the introduction of tea culture in England in the 17th century, Portuguese and Dutch influences were significant. The tea culture they wanted to lead, including the physical movement of teas, will be passed on to the British royal family and the public. These are the Portuguese tea culture of drinking tea with sugar, the Dutch tea culture of drinking tea from a teacup saucer, and the French tea culture of drinking tea with milk. At that time, the role of tea was recognized as a medicine with strong pharmacological effects and was consumed. Due to the lack of clean drinking water and influences such as the sweetness of sugar, tea's popularity increased and was consumed as a showy luxury. In public places outside the royal family, tea was sold to the public with the advent of coffee houses, but tea consumption was mainly focused on male customers. As tea was imported directly from China at the end of the 17th century, supply and demand were met, and the East India Company's profits increased. The background of the settlement of English tea culture in the 18th century is that tea was established as a solid royal culture in the royal family and the popular expansion of tea consumption. Starting with Queen Anne, who made silver tea pot and hosted a tea party so that many people could enjoy it, the British royal tea culture pursues its own identity. The number of tea shops such as Twinings has increased, and consumption of tea at home has become popular. With the completion of British-style pottery through the Industrial Revolution, drinking tea spread in homes, and the number of workers drinking tea at work increased as tea break. With the tea garden trend, the English play culture of having tea for entertainment and relaxation is established. From a male-centered tea culture to a family-centered tea culture, consumption gender, age, and class have expanded. Expansion of consumption meant an increase in trade volume, and the amount of tea imported from China increased sharply, which led to a huge silver outflow and a burden of trade deficit with China. The background of the English tea culture settlement period in the 19th century was the increase in tea consumption and the expansion of English tea culture. Tea Clippers were active in delivering high-quality tea in large quantities to the British who had became to consume tea as a daily necessities. In order to increase the amount of tea trade with China, England demanded free trade to meet the demand for tea, which has soared due to the absolute abstinence movement and the spread of afternoon tea. In order to close the trade deficit, opium smuggling was medicineried out and, later, the Opium War was inevitable, increasing the number of tea trade ports and supplying a large amount of tea to the British mainland. The rapid increase in tea consumption aroused a desire for tea produced by Britain's own power, and they discovered Asamica in the northeastern part of colonial India where the Singpo tribe lived, and also succeeded in producing Indian tea by planting the seeds of Chinese tea in India. . In addition, they succeeded in producing Ceylon tea by planting Asamica tea trees in Sri Lanka, where the coffee industry has become difficult. In the 19th century, Britain was able to import a lot of tea from China and produce English tea in India and Sri Lanka due to Britain's imperial worldview and power. Imperialist Britain fought many wars and tried to cover the necessary money with taxes imposed on goods such as tea, which caused conflicts such as the Boston Tea Incident with the colonial United States. was also used as evidence to confirm With a stable supply of tea, tea consumption and culture in mainland England were on track and stabilized. A tea room was created and it was possible to drink tea in various places such as the dining car of the train. In this thesis, the position of tea changed to a medicinal product in the 17th century, a health drink in the 18th century, and a favorite drink in the 19th century. I tried to prove that tea had been loved by English people as used for being meal, snak, rest. To investigate this three-dimensionally, the pharmacological effects of tea, the tea industry such as import/export and production of tea, tea time such as afternoon tea, and tea consumption spaces such as coffee houses and tea garden tea rooms were reserched. I insisted on the development of tea culture as the consumption class compared and discussed as tea consumption by the upper class represented by the royal family and the aristocracy, and by the masses represented by the middle class and the working class. For the future research topic of globalization of English tea culture, in this paper, English black tea was studied as a prior research for it.
This thesis examines the international tea industry that formed the English tea culture after Asian tea was introduced to Europe, and examines tea consumption by the English royal family and the public, and how the tea culture was formed by showing what aspects and development process in the process. was intended to be considered. The scope of historical research was limited to the 17th to 19th centuries, and the geographic scope of research was determined to be the English colonies of the United States and India, Sri Lanka, neighboring countries in Asia and Europe that trade tea mainly in England. In the process of accepting tea and tea culture in the UK, the time and space of tea consumption, import/export and production of tea, and tea culture were investigated and studied in terms of tea inflow, acceptance, tea culture formation, and black tea culture. As a result of studying English black tea according to the historical flow, the characteristics of English tea culture by century were derived. In the background of the introduction of tea culture in England in the 17th century, Portuguese and Dutch influences were significant. The tea culture they wanted to lead, including the physical movement of teas, will be passed on to the British royal family and the public. These are the Portuguese tea culture of drinking tea with sugar, the Dutch tea culture of drinking tea from a teacup saucer, and the French tea culture of drinking tea with milk. At that time, the role of tea was recognized as a medicine with strong pharmacological effects and was consumed. Due to the lack of clean drinking water and influences such as the sweetness of sugar, tea's popularity increased and was consumed as a showy luxury. In public places outside the royal family, tea was sold to the public with the advent of coffee houses, but tea consumption was mainly focused on male customers. As tea was imported directly from China at the end of the 17th century, supply and demand were met, and the East India Company's profits increased. The background of the settlement of English tea culture in the 18th century is that tea was established as a solid royal culture in the royal family and the popular expansion of tea consumption. Starting with Queen Anne, who made silver tea pot and hosted a tea party so that many people could enjoy it, the British royal tea culture pursues its own identity. The number of tea shops such as Twinings has increased, and consumption of tea at home has become popular. With the completion of British-style pottery through the Industrial Revolution, drinking tea spread in homes, and the number of workers drinking tea at work increased as tea break. With the tea garden trend, the English play culture of having tea for entertainment and relaxation is established. From a male-centered tea culture to a family-centered tea culture, consumption gender, age, and class have expanded. Expansion of consumption meant an increase in trade volume, and the amount of tea imported from China increased sharply, which led to a huge silver outflow and a burden of trade deficit with China. The background of the English tea culture settlement period in the 19th century was the increase in tea consumption and the expansion of English tea culture. Tea Clippers were active in delivering high-quality tea in large quantities to the British who had became to consume tea as a daily necessities. In order to increase the amount of tea trade with China, England demanded free trade to meet the demand for tea, which has soared due to the absolute abstinence movement and the spread of afternoon tea. In order to close the trade deficit, opium smuggling was medicineried out and, later, the Opium War was inevitable, increasing the number of tea trade ports and supplying a large amount of tea to the British mainland. The rapid increase in tea consumption aroused a desire for tea produced by Britain's own power, and they discovered Asamica in the northeastern part of colonial India where the Singpo tribe lived, and also succeeded in producing Indian tea by planting the seeds of Chinese tea in India. . In addition, they succeeded in producing Ceylon tea by planting Asamica tea trees in Sri Lanka, where the coffee industry has become difficult. In the 19th century, Britain was able to import a lot of tea from China and produce English tea in India and Sri Lanka due to Britain's imperial worldview and power. Imperialist Britain fought many wars and tried to cover the necessary money with taxes imposed on goods such as tea, which caused conflicts such as the Boston Tea Incident with the colonial United States. was also used as evidence to confirm With a stable supply of tea, tea consumption and culture in mainland England were on track and stabilized. A tea room was created and it was possible to drink tea in various places such as the dining car of the train. In this thesis, the position of tea changed to a medicinal product in the 17th century, a health drink in the 18th century, and a favorite drink in the 19th century. I tried to prove that tea had been loved by English people as used for being meal, snak, rest. To investigate this three-dimensionally, the pharmacological effects of tea, the tea industry such as import/export and production of tea, tea time such as afternoon tea, and tea consumption spaces such as coffee houses and tea garden tea rooms were reserched. I insisted on the development of tea culture as the consumption class compared and discussed as tea consumption by the upper class represented by the royal family and the aristocracy, and by the masses represented by the middle class and the working class. For the future research topic of globalization of English tea culture, in this paper, English black tea was studied as a prior research for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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