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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 Journal of the Korea Academia-Industrial cooperation Society, v.12 no.1, 2011년, pp.80 - 90
본 논문은 영조와 정조가 통치한 시기에 해당하는 시기인 조선후기 풍속화에 표현된 여성머리양식을 고찰하여 조선후기 성인여성머리양식의 특성을 분석한 논문으로서 연구의 목적은 조선후기 여성머리양식의 특성과 당시 여성들의 미의식을 규명하여 최근 유행하고 있는 사극드라마나 영화 등의 영상예술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조선시대 성인여성의 대표적인 머리는 얹은머리와 쪽머리로 그 중 얹은머리가 더욱 유행하였다. 신분에 관계없이 많은 여성들은 얹은머리의 규모를 크게하기 위해 가체를 사용하였으며 개인의 개성에 따라 머리양식을 다르게 하여 각기 다른 조형미를 연출했다. 조선시대는 신분에 따른 복색제도가 엄격하였으나 기녀들은 제약을 받지 않았으므로 복색에 자유로워 유행을 선도하였으며, 조선후기에는 실학의 영향으로 이미 신분이나 사상등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반가나 민서계급의 모든 여성들이 기녀들의 차림을 모방하여 유행과 동조하는 현상을 보였다. 조선후기 여성들은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기 위해 머리양식을 유행의 도구로 사용하였으며 많은 여성들이 현대와 같이 유행을 추구하였다. 또한 당시 여성들도 얼굴과 가장 가까운 머리를 아름답게 꾸며 자신의 미를 강조할 정도로 미의식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The purposes of this study are clarifying the characteristics of women's hair style in the late Joseon Dynasty by inquiring into that hair style and, by extension, having a new understanding of the aesthetic consciousness of women in those times. The typical hair style of married Joseon women was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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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어 | 질문 |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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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은 어떤 것을 상징하는가? | 복식은 한 나라의 경제, 사회, 정치 등 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복식의 일부인 머리양식 역시 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머리는 장식적인 측면과 의식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 |
조선후기 풍속화에 표현된 여성머리양식을 고찰한 결론은? | ① 의식을 행할 때의 머리는 일상생활에서의 머리양식과는 다른 형태로 꾸며 독특한 조형미를 연출하였으나 머리양식의 기본은 높이를 강조하는 것이다. ② 얹은머리의 스타일은 원형이 일반적이나 개인에 따라 한 쪽을 잘룩하게 하기도 했고 양옆을 잘룩하게 하기도 했으며, 앞부분이 유난히 돌출되게도 하는 등 개성에 따란 다양한 조형미를 연출했다. ③ 얹은머리의 끝은 폭이 좁은 댕기로 맺었는데, 끝을 맺는 위치는 왼쪽이나 오른쪽에 맺기도 하고 뒷부분에 맺기도 하는 등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리하여 기능적인 동시에 장식적으로도 사용하였다. 댕기의 길이는 일반적으로 양옆에 맺을 때는 댕기의 길이가 짧으며 뒤로 맺을 때는 댕기의 길이가 길었다. 뒤로 맺을 때 댕기의 길이도 신분에 따라 달랐는데 기녀들은 허리선까지 닿을 정도의 길이였으며 반가의 부녀자들은 어깨 아래 등부분까지 닿을 정도였으며 민서녀들은 그보다 좀 짧아 어깨선 정도까지 닿는 길이였다. ④ 가체를 꾸미는 방법은 땋는 것이 보편적이며 가장 널리 사용된 방법이다. 그러나 개성이 강한 여성의 경우에는 가체를 땋지 않고 굵게 말아올려 전체적으로 현대의 굵게 컬을 한것과 같이 독특한 조형미를 연출했다. ⑤ 가체를 얹는 위치도 개성에 따라 달리하였다. 전체적으로 이마에서 뒷목부분으로 비스듬히 경사지게 꾸미는 것이 보편적이며, 개성에 따라 머리 윗부분에 굵은 가체를 감아 조형적으로 남성들이 사용하는 갓의 양태와 같이 연출했다. 다음으로 유행현상적 특성을 살펴보면, ① 조선시대 성인여성의 대표적인 머리는 신분에 관계 없이 얹은머리를 하였으나 영조가 커다랗고 사치스런 얹은머리를 금하며 사족의 부녀는 쪽머리에 족두리로 대체하도록 령을 내렸으므로 일부 영조의 뜻을 따르는 사대부가의 여성들이나 유행을 선도하는 기녀들은 쪽머리를 하기도 하여 영조대부터 이미 쪽머리가 유행의 장에 서서히 등장하고 있었다. ② 얹은머리의 크기는 클수록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졌으며 신분이나 빈부에 관계없이 여건이 허락하는 한 커다란 가체를 사용하여 얹은머리의 규모가 대단히 커졌다. 반가녀일지라도 검소함을 따르는 성인여성은 머리의 규모가 작은 반면에 민서녀일지라도 유행에 동조하는 여성여성들은 얹은머리의 규모를 크게했다. ③ 조선시대는 신분에 따른 복색제도가 엄격하였으나 기녀들은 제약을 받지 않았으므로 복색에 자유로워 유행을 선도하였으며, 조선후기에는 실학의 영향으로 여성들이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반가녀나 민서녀 모두 기녀들의 차림을 모방하여 유행에 동조했다. | |
신체발부 수지부모의 의미는? |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머리는 장식적인 측면과 의식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즉 몸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소중한 것으로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고 하여 부모에게 물려받은 인체를 귀히 여겼으며 그 중에서도 머리카락은 인체의 일부로 감히 자르지 못하게 할 정도로 소중하게 여겼고 머리의 매무새는 겉모양과 인간의 내적인 미까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였다[3]. 특히 조선시대의 여인에게 있어 몸을 아름답게 단장하고 단정하게 꾸민다는 것은 부덕의 하나이기도 하였으며 그것이 때로는 사치에 지나쳐 나라의 금령으로 규제한 일까지 있었다[4]. |
유옥경, 조선시대 기록화에 보이는 풍속적 요소, 조선 시대 풍속화, 국립중앙박물관, p.266. 2002
유봉학, 정조대왕의 꿈, 신구문화사, . pp132-13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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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 한국복식사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p. 396,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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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외, 조선시대 풍속화, 국립중앙박물관, p.298, 2002
김승희 외, 조선시대 풍속화, 국립중앙박물관, p30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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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룡, 조선조 중.후기 부녀두발의 양식고, 아시아여성연구 vol.21, 숙명여자재학교 아시아여성문제연구소, p288
배정룡, 조선조 중.후기 부녀두발의 양식고, 아시아여성연구 vol.21, 숙명여자재학교 아시아여성문제연구소, p277
이덕무, 靑莊館全書, 사소절, 권지 30 복식을 인용한 석주선(1985), 한국복식사, 보진제, p66
유희경, 한국복식사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p397, 1980
영조실록권 87, 32년 정월조
석주선, 한국복식사, 보진제, p67, 1985
유희경, 한국복식사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p401, 1980
新補受敎輯錄
이덕무, 靑莊館全書
이덕무, 靑莊館全書, 사소절, 권지 30 복식을 인용한 석주선, 한국복식사, 보진제, p66,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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