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한양의 상류주택과 비교를 통한 낙선재의 건축특성 연구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Nakseonjae through Comparisons with Hanyang's Upper-Class Houses in Late Joseon Dynasty원문보기
Nakseonjae in Changdeokgung Palace was established at The King Hunjong's 13rd year (1847), the mid-19th century. It was constructed for own rests of King Hunjong and the residence of Kyungbin (king's concubines), and is showing features of upper-class houses from several points such as rustic archit...
Nakseonjae in Changdeokgung Palace was established at The King Hunjong's 13rd year (1847), the mid-19th century. It was constructed for own rests of King Hunjong and the residence of Kyungbin (king's concubines), and is showing features of upper-class houses from several points such as rustic architectural types by getting out of authoritative aspects as king's shelter space within the palace, block and floor distribution that separated spaces for men and women, simplicity in structures and styles, and non-colorful painting etc. This study aims at tracing on which architectural types did the upper-class houses within Hanyang (modern Seoul) at late Joseon Dynasty have and what was characteristics of Nakseonjae. The resemblance between Nakseonjae and the upper-class houses was very little differences from scale aspects, and floor plan shapes of Anchae (women's quarters) and Sarangchae (men's quarters) were followed basic common styles. Also, resemblance could be confirmed in the structural styles too. Characteristics of Nakseonjae are showing apparent differences from clearance compositions such as hall configuration etc. Nakseonjae was king's dwelling place, and spaces for house's collateral functions such as kitchen, stable, and warehouse etc together with shrine were unnecessary, and such places were substituted into servants' quarters for assisting the Royal family. In detailed structural styles, column's size was larger 3cm or more than the upper-class houses, and its height was higher to the degree of 30~60cm. Besides, formality as king's shelter space was raised more in decorating aspects, and Nakseonjae was implemented by getting architectural influences from Qing Dynasty of China. This study induced features of Hanyang's upper-class houses at the 19th century by supplementing distribution and space configurations at existing cases of Seoul and Gyeonggi area together with house diagrams having been collected by Gaokdohyung (site and floor plan) of Jangseogak Library, and confirmed resemblances and differences with Nakseonjae, that is, features of Nakseonjae. Through the result, this study judges a fact that architecture of Nakseonjae seemed to be affected from conveniences of upper-class houses within Hanseong, and also architectural styles and distribution types of Nakseonje would give influences to the upper-class houses.
Nakseonjae in Changdeokgung Palace was established at The King Hunjong's 13rd year (1847), the mid-19th century. It was constructed for own rests of King Hunjong and the residence of Kyungbin (king's concubines), and is showing features of upper-class houses from several points such as rustic architectural types by getting out of authoritative aspects as king's shelter space within the palace, block and floor distribution that separated spaces for men and women, simplicity in structures and styles, and non-colorful painting etc. This study aims at tracing on which architectural types did the upper-class houses within Hanyang (modern Seoul) at late Joseon Dynasty have and what was characteristics of Nakseonjae. The resemblance between Nakseonjae and the upper-class houses was very little differences from scale aspects, and floor plan shapes of Anchae (women's quarters) and Sarangchae (men's quarters) were followed basic common styles. Also, resemblance could be confirmed in the structural styles too. Characteristics of Nakseonjae are showing apparent differences from clearance compositions such as hall configuration etc. Nakseonjae was king's dwelling place, and spaces for house's collateral functions such as kitchen, stable, and warehouse etc together with shrine were unnecessary, and such places were substituted into servants' quarters for assisting the Royal family. In detailed structural styles, column's size was larger 3cm or more than the upper-class houses, and its height was higher to the degree of 30~60cm. Besides, formality as king's shelter space was raised more in decorating aspects, and Nakseonjae was implemented by getting architectural influences from Qing Dynasty of China. This study induced features of Hanyang's upper-class houses at the 19th century by supplementing distribution and space configurations at existing cases of Seoul and Gyeonggi area together with house diagrams having been collected by Gaokdohyung (site and floor plan) of Jangseogak Library, and confirmed resemblances and differences with Nakseonjae, that is, features of Nakseonjae. Through the result, this study judges a fact that architecture of Nakseonjae seemed to be affected from conveniences of upper-class houses within Hanseong, and also architectural styles and distribution types of Nakseonje would give influences to the upper-class ho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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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1) 또한, 상량문의 내용 가운데 사치스럽지 않고 색칠한 서까래를 걸지 않았다는 기록에서2) 궁궐 내, 왕의 거처 공간임에도 권위적인 면을 벗어난 소박한 건축형식으로 건립되었던 것을 알 수 있고, 남녀공간을 분리한 배치 평면, 구조 및 양식의 소박함, 단청을 하지 않은 점 등이 상류주택 형식의 건축임을 설명하고 있다3). 그렇다면, 낙선재가 궁궐 내에 지어진 여타 왕의 거처공간이나, 침전과 같은 격식을 배제하고, 상류주택의 형식을 취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실제 상류주택의 어떤 부분과 유사한지, 낙선재만이 갖는 특성이 무엇인지,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 연구로, 조선후기 한양 내의 상류주택 건축형식이 어떠했는지를 고찰하고, 상호 비교를 통해 궁궐 내에 건립되었으나 여타 궁궐 건물과는 다른 형식을 취한 낙선재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데 목적을 두었다.
본 연구는 조선후기 한양의 상류주택의 일반적 특성 즉, 규모 및 실 구성, 구조양식, 주요 부재 규격 및 안채와 사랑채 간 공간구성 등의 특성을 도출하여 낙선재와 비교함으로써 낙선재가 갖는 건축적 특성을 알아보고자 하며, 이러한 연구는 19세기 궁궐 내에 상류주택 형식의 건축이 형성된 이유와 상호 연관 관계를 이해하고, 이후 궁궐 내에 건축된 연경당과 건청궁, 함화당과 집경당 등 유사 건축의 생성과 전개에 기초자료를 제공하는데 의의가 있다.
가설 설정
90간 내외의 규모나, 사당을 제외한 영역구성, 사랑채의 청-방-누/주의 평면형식에서 그렇다. 둘째, 구조양식면에서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 주칸의 크기, 1고주5량가의 가구 형식, 가공초석과, 단청을 하지 않는 등 일반적인 건축형식이 상류 주택에서 나타나는 형식을 따르고 있다.
주칸의 크기, 1고주5량가의 가구 형식, 가공초석과, 단청을 하지 않는 등 일반적인 건축형식이 상류 주택에서 나타나는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세째, 배치 및 공간구성에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의 공간구획과 출입, 사적인 동선에서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제안 방법
(자료 : ‘주석 12’의 보고서 내 수록 도면에 실 공간 구성을 간가도형식으로 중첩하여 작도하였으며, 변형부분은 원형을 추정하였다)
출입은 일부 사랑마당을 공유한 것도 있지만 출입 동선의 분리가 기본적인 형식으로 보인다. 건물형태는 안채와 사랑채가 개개 건물로 건립된 독립형이며, 배면 담장에 협문을 두어 사적 동선도 배려하였다. 낙선재는 가옥도형과 거의 유사하지만, 안채와 사랑채가 연결채로 연결된 형식이다.
낙선재와 석복헌 사이를 구획하는 담장의 낙선재 쪽 벽면은 귀갑문양의 꽃담을 하고, 석복헌 배면의 협문 미장벽에는 포도를 후원 담장 벽에는 박쥐문 등을 장식하였다. 귀갑문은 장수를, 포도는 다산을 상징하는데 건물의 주인에게 각각의 의미로 헌정한 것이다.
사랑채는 소실 및 변형된 가옥을 제외한 4동에 대해서 분석하였다. 사랑채의 규모는 평균 12간으로 20간인 안채보다 규모가 작다.
안채와 사랑채와의 관계는 가옥도형의 사례로 낙선재와 비교하였다. 가옥도형의 안채와 사랑채의 영역구획은 행랑과 담장으로 구획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출입 동선은 사랑마당을 공유하여 안채로 들어가도록 배치된 가옥은 5동으로 나타났고, 나머지는 안채와 사랑채, 각각 별도의 문으로 출입하도록 분리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의 건물형식은 한 몸으로 된 것을 일체형으로 보았고, 연결복도나 행랑으로 연결된 것을 연결형, 완전히 분리된 것을 독립형으로 나누어 3가지 타입20)으로 구분하였다. 분석 결과 독립형이 9동, 연결형이 4동, 일체형이 3동으로 독립형이 가장 많이 나타났다.
연구의 방법은 현존하는 가옥들의 실측도면을 바탕으로 안채 및 사랑채의 평면형식, 구조 및 세부양식을 분석하였고, 김좌근고택8)과 장서각 소장 가옥도형을 통한 배치 및 공간구성 즉, 안채와 사랑채의 공간구획 및 출입 방법, 건물의 연결 관계 등을 분석하여 양자의 공통적인 특징을 도출하고, 낙선재와 비교하였다.
건축의 구조양식과 공간구성이 유사하다고 하지만, 왕이 사용 하는 건축공간으로서의 격식은 요소요소에 반영하였다. 왕을 상징하는 용두의 설치, 용ㆍ봉 문양의 막새, 기둥규격은 1寸, 높이는 1~2尺정도 크게 적용하였다. 또한, 상류주택에서도 일부 장식이 보이기는 하지만 극히 제한적인 반면, 낙선재에서는 미장벽, 담장 등에 상징적인 문양의 장식이 있으며, 특히 당시 청나라의 앞선 문물에 대한 유행을 반영하듯 현판ㆍ주련을 청나라 서예가의 작품을 사용하였고, 원형창이나 만월문 등 청의 영향을 받은 형식이 나타났다.
평면 형식은 안채 및 사랑채의 실측 도면을 바탕으로 평면 형태, 실 구성 등을 분석하고, 규모와 주칸9), 기둥의 규격과 주고(柱高), 기단 및 초석의 가공 여부, 가구, 처마 형식, 막새의 유무, 지붕형식 등을 분석하여 안채 및 사랑채의 일반적인 기준형태를 도출하고자 하였다.
현존하는 한양의 상류주택 사례가 대표성을 띨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당시 상류주택의 한 단면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으며, 장서각 소장 가옥도형에서 배치 및 공간구성을 보완함으로써 19세기 한양 상류주택의 특징을 도출, 낙선재 건축과 비교되는 유사점과 차이점, 즉 낙선재의 특성을 확인하였다.
대상 데이터
낙선재는 남향한 주건물 전면에 넓은 마당이 있고, 남측과 서측에 행랑이 있고, 동측은 안채와의 경계를 나타내는 담장으로 구획하였다. 좌측에 누가 있고 차례대로 청-청-방-방주로 일반적인 사대부가의 청-방-주의 형식을 따르고 있고, 안채과의 연결부에 방 2간이 있다.
연구의 범위는 조선후기 한양에 건립된 상류주택7)으로 하였다. 현존하는 전통가옥 중 본 연구의 상류주택 성격에 부합하는 가옥 6동과 장서각 소장 가옥도형 중 상류주택 성격에 부합하는 16동을 대상으로 하였다.
현재 전통가옥으로 한양(현 행정구역상의 서울지역)에 남아 있는 건물은 30여 동이며, 그 중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은 27동이다. 지정된 27개 가옥 가운데, 조선후기에 건립된 가옥은 10동이 해당되지만, 그 중 규모가 작거나, 상류주택으로 보기 어려운 것 등을 제외하고, 본 연구의 성격에 부합되는 대상으로 6개 가옥을 선정하였다.
상류주택의 안채와 사랑채를 각각 분석하였으나, 안채와 사랑채를 제외한 주변의 많은 변화로 인해 배치와 공간구성 분석에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한양은 아니지만 인근 경기지역14)인 이천의 김좌근고택15)에서 배치 및 공간구성 등을 보조적인 자료로 분석하였다.16)
으로 하였다. 현존하는 전통가옥 중 본 연구의 상류주택 성격에 부합하는 가옥 6동과 장서각 소장 가옥도형 중 상류주택 성격에 부합하는 16동을 대상으로 하였다.
성능/효과
둘째, 구조양식은 대체로 유사하나, 기둥 규격, 고주고, 장식기와 등에서 차이점을 확인하였다. 기둥 규격은 상류주택보다 낙선재가 1寸정도 크고, 고주고는 1~2尺 더 높다.
왕을 상징하는 용두의 설치, 용ㆍ봉 문양의 막새, 기둥규격은 1寸, 높이는 1~2尺정도 크게 적용하였다. 또한, 상류주택에서도 일부 장식이 보이기는 하지만 극히 제한적인 반면, 낙선재에서는 미장벽, 담장 등에 상징적인 문양의 장식이 있으며, 특히 당시 청나라의 앞선 문물에 대한 유행을 반영하듯 현판ㆍ주련을 청나라 서예가의 작품을 사용하였고, 원형창이나 만월문 등 청의 영향을 받은 형식이 나타났다.
안채와 사랑채의 건물형식은 한 몸으로 된 것을 일체형으로 보았고, 연결복도나 행랑으로 연결된 것을 연결형, 완전히 분리된 것을 독립형으로 나누어 3가지 타입20)으로 구분하였다. 분석 결과 독립형이 9동, 연결형이 4동, 일체형이 3동으로 독립형이 가장 많이 나타났다. 사랑채와 안채간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출입동선이외에 살짝 감추어둔 사적동선을 살펴보면 절반인 8동에서 안채와 사랑채의 최단 동선이 되는 위치에 담장 협문이 위치하여 주인의 왕래에 편리를 도모하였다.
안채가 사랑채보다 규모가 더 큰 것이 일반적이며, 이는 가례(家禮) 등 집안의 행사가 주로 안채의 대청에서 이루어지고, 보조할 수 있 공간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에는 누마루가 대체적으로 적용되었는데, 한양지역의 석파정, 경기지역의 김좌근고택, 가옥도형에서는「사대부가배치도」에서 돌출된 누마루가 확인되었다. 양식은 윤보선가의 안채가 물익공, 김좌근고택이 소로수장집이며 나머지는 민도리집 형식이다.
이상과 같이 규모, 공간구성 및 배치, 안채 및 사랑채의 평면형식 및 실 구성, 구조양식, 안채와 사채와의 관계 등에서 조선후기 한양의 상류주택과 상당부분 유사점을 보이고 있음을 분석결과를 통해서 확인하였다. 이는 낙선재가 19세기 중반 상류주택 형식으로 궁궐 내에 도입된 사례임을 말해주는 것이고, 당시의 사회적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그동안의 권위적이고 형식을 중요시하던 궁궐 건물의 다소 불편한 배치형식과 공간구성에서 탈피하여 생활의 편리와 안락함을 반영하기 위해 상류주택 형식을 접목한 것이라 사료된다.
한양지역 사례의 전체적인 규모와 공간구성을 보면 건물규모는 평균 79간, 가옥도형에서 보인 가옥 규모는 평균 93간으로 나타났다. 조선후기 한양의 상류주택들의 규모가 80~90간에 이르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 가사제한인 대군 60간, 2품 이상 40간이라는 규정보다 훨씬 크게 지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그간 조선후기 한양의 상류주택에 대한 연구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간 조선후기 한양의 상류주택에 대한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19세기 이전의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그마저도 변형이 심하여 기초자료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근래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던 가옥도형이 발굴되면서 몇 몇 연구자에 의해 조선후기 한양의 주택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낙선재는 언제 건립되었는가?
낙선재는 19세기 중반인 헌종 13년(1847)에 건립되었다. 낙선재의 건립은 헌종의 문집인 『원헌고(元軒稿)』에 수록된 낙선재 상량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낙선재의 가장 오랜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는 무엇이 있는가?
낙선재의 가장 오랜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로는『동궐도형(東闕圖形)』과『궁궐지 (宮闕誌)』가 있어 낙선재 일곽에 대한 평면의 실 구성, 배치 및 공간구조를 알 수 있다.22) 사랑채격인 낙선재는 정면 6칸, 측면 2칸에 남서측과 북동측에 각 1칸이 돌출된 ┏┛형의 평면으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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