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철도와 만주철도를 비교하였다. 양국철도는 공히 제국주의 철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만주철도는 정부주도하의 민간철도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철도는 철도수입위주였지만 만주철도는 철도이외에도 지역개발, 광산, 항만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였다. 두 번째 만주철도는 우리나라 철도에 비해 수익성이 좋았고, 화물위주의 수송이었다. 세 번째로 철도관료의 경우도 우리나라는 주로 정부 관료들이 임명되었지만 만주철도의 경우는 정당정치에 의한 정치가, 외교관 등 다양한 계층에서 임명되었다. 관동군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군의 영향력이 컸다. 공통점으로는 제국주의 철도였기 때문에 정부정책 특히 시기적으로 철도는 군사적 목적에 활용되었다. 특히 만주철도의 경우 대륙에서의 전쟁수행이라는 면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향후 같은 시기의 일본 본토 그리고 대만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동아시아 철도의 공통점과 차이점의 부각을 통해 우리나라 철도의 성격이 새롭게 조명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철도와 만주철도를 비교하였다. 양국철도는 공히 제국주의 철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만주철도는 정부주도하의 민간철도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철도는 철도수입위주였지만 만주철도는 철도이외에도 지역개발, 광산, 항만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였다. 두 번째 만주철도는 우리나라 철도에 비해 수익성이 좋았고, 화물위주의 수송이었다. 세 번째로 철도관료의 경우도 우리나라는 주로 정부 관료들이 임명되었지만 만주철도의 경우는 정당정치에 의한 정치가, 외교관 등 다양한 계층에서 임명되었다. 관동군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군의 영향력이 컸다. 공통점으로는 제국주의 철도였기 때문에 정부정책 특히 시기적으로 철도는 군사적 목적에 활용되었다. 특히 만주철도의 경우 대륙에서의 전쟁수행이라는 면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향후 같은 시기의 일본 본토 그리고 대만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동아시아 철도의 공통점과 차이점의 부각을 통해 우리나라 철도의 성격이 새롭게 조명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This paper presents a comparison of Korean and Manchurian railway syste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of Korea. While both railways share the common characteristics of an imperial railway, they revealed several differences. Firstly, the Manchurian railway was likely a private company, although i...
This paper presents a comparison of Korean and Manchurian railway syste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of Korea. While both railways share the common characteristics of an imperial railway, they revealed several differences. Firstly, the Manchurian railway was likely a private company, although it was operated half privately and half by the government. The Manchurian railway operated like the East Indian Company in India during the English colonial era. On the other hand, the Korean railway was fully operated by the government at a ministry level. While the Korean railway solely concentrated on the railway, the Manchurian railway was involved in regional development and the coal-mining industry as well. Secondly, in contrast to the Korean railway, the Manchurian railway was more lucrative, and was relatively more predominant regarding carriage of freights. Thirdly, railway officers in Korea were elected government bureaucrats, while Manchurian railway officers came from diverse political parties and social strata. After the annexation by the Kwantung Army, the Manchurian railway was mainly influenced by the military. The common characteristic here was that both railways were utilized for military purposes as imperial railways. In partilcular, the Manchurian railway executed military orders directly. Hereafter, through a comparative study between the Japanese and Taiwanese railways, a clear and accurate understanding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Korean railway during the Japanese era will be revealed.
This paper presents a comparison of Korean and Manchurian railway syste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of Korea. While both railways share the common characteristics of an imperial railway, they revealed several differences. Firstly, the Manchurian railway was likely a private company, although it was operated half privately and half by the government. The Manchurian railway operated like the East Indian Company in India during the English colonial era. On the other hand, the Korean railway was fully operated by the government at a ministry level. While the Korean railway solely concentrated on the railway, the Manchurian railway was involved in regional development and the coal-mining industry as well. Secondly, in contrast to the Korean railway, the Manchurian railway was more lucrative, and was relatively more predominant regarding carriage of freights. Thirdly, railway officers in Korea were elected government bureaucrats, while Manchurian railway officers came from diverse political parties and social strata. After the annexation by the Kwantung Army, the Manchurian railway was mainly influenced by the military. The common characteristic here was that both railways were utilized for military purposes as imperial railways. In partilcular, the Manchurian railway executed military orders directly. Hereafter, through a comparative study between the Japanese and Taiwanese railways, a clear and accurate understanding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Korean railway during the Japanese era will be revea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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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본 연구에서는 우리나라와 만주철도의 성격을 환경변화와 식민지정책과 철도정책 , 관료 등을 전체적으로 개괄하고 성격규명을 위해서는 법률과 제도, 노선과 운영, 조직, 문화, 기술, 자본과 경영성적 등을 비교 분석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양국의 철도영향력을 서술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철도를 1917년부터 1925년까지 지배하였던 만주철도에 성격규명을 위한 기초연구로서 양국철도의 성격비교와 함께 철도를 운영현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를 통해 그 동안 일제강점기의 철도에 대한 성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특히 만주철도에 대한 관심 제고를 통하여 보다 면밀하게 한반도에서의 철도 변화에 대한 분석 연구의 기초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본 연구에서는 우리나라와 만주철도의 성격을 환경변화와 식민지정책과 철도정책 , 관료 등을 전체적으로 개괄하고 성격규명을 위해서는 법률과 제도, 노선과 운영, 조직, 문화, 기술, 자본과 경영성적 등을 비교 분석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양국의 철도영향력을 서술하였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본 연구 첫째 1917년에서 1925년까지의 우리나라 철도를 운영한 만주철도에 대해 보다 명확한 이해가 가능하다.
제안 방법
이러한 비교를 통해 본 연구 첫째 1917년에서 1925년까지의 우리나라 철도를 운영한 만주철도에 대해 보다 명확한 이해가 가능하다. 두번째로는 만주철도와 우리나라 철도의 성격의 차이를 통해 우리나라 철도의 성격을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제국주의 철도들의 성격 비교를 통해 제국주의 철도의 공통점과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상 데이터
두 번째로 안도마타 사무로(安藤又三朗, 1877년~??)는 원적이 기후현이다. 1877년 6월1일 출생으로 도쿄대학 법과대학을 졸업 후 고등고시 합격 후 1905년 12월 철도사무관에 임용되었고 통감부철도관리국 사무관, 철도원참사관을 역임한 후 1911년 10월 구주각국에 출장 페테스브르크에서 개최된 일본 러시아 철도연락회의 위원으로 출석 1916년 7월에 만주철도 경성관리국 운수과장을 역임하였다. 세 번째 오무라 타구이치(大村卓一, 1872년~1946년)는 철도관료, 실업가로서, 1872년 2월 후쿠이현 출신으로 가축을 상속받아 1896년 삿포로 농업학교 농과를 졸업하고 홋카이도 탄광철도주식회사에 취직, 1906년 체신성 철도작업국, 1925년 5월 조선총독부 철도국장에 취임, 1932년 6월 관동군 교통감독부장, 1935년 10월 남만주철도주식회사 부총재, 1939년 3월 남만주철도주식회사총재를 거처 1941년 1월에 퇴임하였다.
그는 군의관시절 일청전쟁 중에 육군차관 군무국장인 玉의 눈에 띠어 발탁되었다. 玉가 대만총통으로 부임시 고토신베이를 민정장관으로 임명하였다. 그후 대만에서의 임기를 마친 후 만주철도의 초대총재가 되었는데 그는 재임 시 만주철도에서 항만건설, 도로정비 등 인프라 정비, 위생시설정비, 대련의 도시건설, 조사부의 설치 등 만주철도의 틀을 만들었다.
군인출신으로는 4대 총재인 나카무라(中村雄次 )가 있었다. 관료출신으로는 대장성 출신인 7대 총재 하야카와(早川千吉 ), 내무관료 출신인 8대 총재 가와무라(川村竹治)가 있었다. 정치가로는 정우회 출신의 10대 총재 야마모토(山本條太 ), 13대 총재 햐야시(林博太 )가 있었으며, 외무관료로는 12대 총재 우치다( 田康哉), 14대 총재 마츠오카(松岡洋右)가 있었다.
첫째 히토미 지로(人見次郞, 1879년~1959년)는 일본의 농상무관료, 실업가, 조선총독부총감관방철도국장, 대만총독부총무장관을 역임하였다. 교토부 출신으로 1904년 7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1월에 문관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했다. 농무성에 입사하여 산림국으로 배속되었다.
특허국 사무관, 서무과장을 역임하였는데 1908년 통감부로 자리를 옮겨 특허국 사무관으로 일을 하였고, 그 후 조선총독부에서 서기관, 농상공부 상공과장을 역임하였다. 그 후 식산국 상공과장, 농상공부 농무과장을 역임하였으며, 1917년 7월 총감관방 철도국장에 취임하여 1919년 5월까지 재임하였다. 두 번째로 안도마타 사무로(安藤又三朗, 1877년~??)는 원적이 기후현이다.
세 번째 오무라 타구이치(大村卓一, 1872년~1946년)는 철도관료, 실업가로서, 1872년 2월 후쿠이현 출신으로 가축을 상속받아 1896년 삿포로 농업학교 농과를 졸업하고 홋카이도 탄광철도주식회사에 취직, 1906년 체신성 철도작업국, 1925년 5월 조선총독부 철도국장에 취임, 1932년 6월 관동군 교통감독부장, 1935년 10월 남만주철도주식회사 부총재, 1939년 3월 남만주철도주식회사총재를 거처 1941년 1월에 퇴임하였다. 네 번째로 요시다 고(吉田浩, 1885년~??)는 교토 출신으로 1909년 7월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 같은 해 문과 고등시험에 합격, 1910년 7월 철도원서기를 시작으로 철도원 부참사, 철도원 참사, 철도서기관 겸 농상무서기관, 부흥국 서기관, 모지철도국장, 도쿄철도국장을 거쳐 1932년 7월 총독부철도국장으로 취임하였다. 다섯 번째로 고바야시 리이치(小林利一, 1898년~??)는 오이타출신으로 1898년 2월 1923년 도쿄제국대학 정치학부를 졸업하고 고등시험행정과에 합격해 1923년 조선으로 건너와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직원이 되었으며 경리과에 근무, 1924년 경성철도학교 강사를 겸임하고, 1924년 4월에 철도국서기로 임명되었고 1932년에 경리과장, 1928년에 철도회계업무를 위해 구미각국을 유학하였다.
교토부 출신으로 1904년 7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1월에 문관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했다. 농무성에 입사하여 산림국으로 배속되었다. 특허국 사무관, 서무과장을 역임하였는데 1908년 통감부로 자리를 옮겨 특허국 사무관으로 일을 하였고, 그 후 조선총독부에서 서기관, 농상공부 상공과장을 역임하였다.
운수 영업과 관련하여서는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영업수입은 불완전하였지만 일본, 만주, 중국 간의 연계교통은 긴밀하게 되었다. 만주철도 본선을 거쳐서 멀리 러시아, 중국의 철도와 연계하여 국제철도체계가 정비되었으며, 1923년 장거리 여행자가 많아짐에 따라 전망 1등 침대차, 3등 침대차를 다른 철도보다 앞서 제작, 사용하였다.
만주철도 초대총재인 고토신베이(後藤新平, 1857년~1929년)는 이와테현 출신으로 의사 출신으로 관료로 발탁되었다. 만철 총재이후에는 본국의 체신대신, 내무대신, 외무대신을 역임하여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1877년 6월1일 출생으로 도쿄대학 법과대학을 졸업 후 고등고시 합격 후 1905년 12월 철도사무관에 임용되었고 통감부철도관리국 사무관, 철도원참사관을 역임한 후 1911년 10월 구주각국에 출장 페테스브르크에서 개최된 일본 러시아 철도연락회의 위원으로 출석 1916년 7월에 만주철도 경성관리국 운수과장을 역임하였다. 세 번째 오무라 타구이치(大村卓一, 1872년~1946년)는 철도관료, 실업가로서, 1872년 2월 후쿠이현 출신으로 가축을 상속받아 1896년 삿포로 농업학교 농과를 졸업하고 홋카이도 탄광철도주식회사에 취직, 1906년 체신성 철도작업국, 1925년 5월 조선총독부 철도국장에 취임, 1932년 6월 관동군 교통감독부장, 1935년 10월 남만주철도주식회사 부총재, 1939년 3월 남만주철도주식회사총재를 거처 1941년 1월에 퇴임하였다. 네 번째로 요시다 고(吉田浩, 1885년~??)는 교토 출신으로 1909년 7월 도쿄제국대학 법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 같은 해 문과 고등시험에 합격, 1910년 7월 철도원서기를 시작으로 철도원 부참사, 철도원 참사, 철도서기관 겸 농상무서기관, 부흥국 서기관, 모지철도국장, 도쿄철도국장을 거쳐 1932년 7월 총독부철도국장으로 취임하였다.
관료출신으로는 대장성 출신인 7대 총재 하야카와(早川千吉 ), 내무관료 출신인 8대 총재 가와무라(川村竹治)가 있었다. 정치가로는 정우회 출신의 10대 총재 야마모토(山本條太 ), 13대 총재 햐야시(林博太 )가 있었으며, 외무관료로는 12대 총재 우치다( 田康哉), 14대 총재 마츠오카(松岡洋右)가 있었다.
주요 철도국장의 이력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히토미 지로(人見次郞, 1879년~1959년)는 일본의 농상무관료, 실업가, 조선총독부총감관방철도국장, 대만총독부총무장관을 역임하였다. 교토부 출신으로 1904년 7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1월에 문관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했다.
성능/효과
1940년에도 철도, 광업, 항만 순으로 변화가 없었다. 만주철도는 종합적인 식민지회사의 성격이 강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철도수입은 거의 100%가 철도수입이었다.
국제 연락의 수송의 경우도 일본보다 만주도착화물이 많았으며, 출발화물의 경우 1930년이후 만주방면이 많아졌으며, 도착화물의 경우 1919년이후 만주방면으로부터 도착이 일본보다 많아졌다. 수입의 경우 여객과 화물의 수익률이 좋았으며 특히 부대사업의 경우는 식당차의 수입이 높았다.
후속연구
본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철도를 1917년부터 1925년까지 지배하였던 만주철도에 성격규명을 위한 기초연구로서 양국철도의 성격비교와 함께 철도를 운영현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본 연구를 통해 그 동안 일제강점기의 철도에 대한 성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특히 만주철도에 대한 관심 제고를 통하여 보다 면밀하게 한반도에서의 철도 변화에 대한 분석 연구의 기초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본 연구는 만주철도에 대한 기초연구의 형태로 진행되었으나 향후에는 만주철도의 성격과 만주지역에의 영향력 및 지역철도, 대륙철도로서의 역할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하여 일제강점기의 각 지역별 철도의 성격과 함 시대적 특성에 대한 상호 연관관계 등에 대한 연구도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만주철도가 위탁운영한 시기의 성격 그리고 영국의 제국주의 정책에서 철도의 성격 등과도 비교가 향후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양국의 철도영향력을 서술하였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본 연구 첫째 1917년에서 1925년까지의 우리나라 철도를 운영한 만주철도에 대해 보다 명확한 이해가 가능하다. 두번째로는 만주철도와 우리나라 철도의 성격의 차이를 통해 우리나라 철도의 성격을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제국주의 철도들의 성격 비교를 통해 제국주의 철도의 공통점과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철도에 대한 연구에서 만주철도와 일본철도의 정책일관성과 전개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수행되었을 때 조선철도의 성격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본 연구는 만주철도에 대한 기초연구의 형태로 진행되었으나 향후에는 만주철도의 성격과 만주지역에의 영향력 및 지역철도, 대륙철도로서의 역할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하여 일제강점기의 각 지역별 철도의 성격과 함 시대적 특성에 대한 상호 연관관계 등에 대한 연구도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용상 등은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철도 성격규명에 관한 정성적 연구”에서 철도관료와 대륙철도연결, 정치환경 변화 등의 분석을 통하여 일제강점기의 조선철도를 규명하고자 하였는데, 이러한 연구에서는 만주철도가 조선철도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분석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1].
아울러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하여 일제강점기의 각 지역별 철도의 성격과 함 시대적 특성에 대한 상호 연관관계 등에 대한 연구도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만주철도가 위탁운영한 시기의 성격 그리고 영국의 제국주의 정책에서 철도의 성격 등과도 비교가 향후 필요할 것이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철도와 만주철도의 서로 다른 성격은?
양국철도는 공히 제국주의 철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만주철도는 정부주도하의 민간철도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철도는 철도수입위주였지만 만주철도는 철도이외에도 지역개발, 광산, 항만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였다. 두 번째 만주철도는 우리나라 철도에 비해 수익성이 좋았고, 화물위주의 수송이었다. 세 번째로 철도관료의 경우도 우리나라는 주로 정부 관료들이 임명되었지만 만주철도의 경우는 정당정치에 의한 정치가, 외교관 등 다양한 계층에서 임명되었다. 관동군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군의 영향력이 컸다.
만주철도는 어떠한 회사였나?
만주철도는 철도이외의 다양한 사업을 전개한 회사로서 그 주축이 철도사업으로서, 전성기에는 약 80여개의 자회사를 보유한 대규모 회사였다. 또한 만주지역에 각종 문화사업이나 근대적 도시개발계획에 참여하였으며, 궤간은 조선철도와 동일한 표준궤를 채택하고 있어 일본국의 만주지배정책을 일환으로서 수행된 정책들이라 생각된다.
철도경영과정에서 나타난 조선 철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철도경영과정에서 나타난 조선 철도의 가장 큰 특징은 통감부(1906~1909)-철도원(1909~1910)-총독부(제1차)(1910~1917)-만주철도(1917~1925)-총독부(2차)(1925~1945)로 경영주체가 자주 바뀌었다는 것이다. 1917년에서 1925년까지의 만주철도가 조선철도를 위탁 경영하였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참고문헌 (13)
Y.S. Lee, B.H. Chung (2012) A qualitative study of the properties of the Korean railway during the Japan colonial period,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for Railway, 15(3), pp. 306.
S.B. Go (1999) Colonial railways and the people living, Hosei University press.
T. Takashi (1995) Japanese colonial railroad history, Japan Railway Review.
J.J. Chung (2007) Railway officials and railway policy of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 Focused on Omuradakuchi, International Research Center for Japanese Studies International symposium 30, Kyoto, pp. 189-211.
Mission (1986) Chosun Transport History.
Manchurian Railway book (2007) Manchurian Railway 40 years History.
Manchurian Railway book (2007) Manchurian Railway 40 years History, pp. 250-251.
Manchurian Railway book (2007) Manchurian Railway 40 years History, pp. 240-241
Manchurian Railway book (2007) Manchurian Railway 40 years History, pp. 261
Chosun Government General Railway (1927) Chosun Railway.
Chosun Government General Railway (1940) Chosun Railway 40 years Brief History.
Mission (1986) Chosun Transport History.
Manchurian Railway book (2007) Manchurian Railway 40 years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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