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지방도시의 하나인 대구를 대상으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도시공원의 계획 개원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시대적 상황과 연관 지어 고찰함으로써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를 해석하였다. 1960년대에 도시계획법과 공원법이 제정되면서 법제도 내에서 도시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때에는 도시공원이 단지 도시계획시설의 하나로만 인식되어 조성보다는 지정에만 급급하였다. 1970년대는 급격한 도시화와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도시공원의 양적 확보에 주력하였으나, 예산부족으로 계획기간 내에 공원 조성이 완료되지 못하였다. 1980년대는 연이는 대규모 국제대회 개최로 인하여 도시미화를 위한 각종 녹화계획이 수립되면서 도시공원의 미적 기능이 재인식되었으며, 도시민의 이용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정적공간뿐만 아니라 동적시설을 갖춘 복합적인 성격의 도시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는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 증대와 함께 공원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인 관심표명 및 참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며, 도시공원의 환경적 기능과 효과의 부각에 따라 도시공원의 양적 확대뿐 아니라, 질적 개선도 함께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 있어 근대적 의미의 도시공원 도입은 구한말부터이고, 본격적으로 도시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하지만, 본 연구를 통해서 도시공원의 변화과정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를 종합해 볼 때 대구에서 시민을 위한 '공용(共用)의 휴식처'라는 본연의 의미와 목적에 부합되는 도시공원의 개념이 완성된 것은 1990년대에 와서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지방도시의 하나인 대구를 대상으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도시공원의 계획 개원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시대적 상황과 연관 지어 고찰함으로써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를 해석하였다. 1960년대에 도시계획법과 공원법이 제정되면서 법제도 내에서 도시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때에는 도시공원이 단지 도시계획시설의 하나로만 인식되어 조성보다는 지정에만 급급하였다. 1970년대는 급격한 도시화와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도시공원의 양적 확보에 주력하였으나, 예산부족으로 계획기간 내에 공원 조성이 완료되지 못하였다. 1980년대는 연이는 대규모 국제대회 개최로 인하여 도시미화를 위한 각종 녹화계획이 수립되면서 도시공원의 미적 기능이 재인식되었으며, 도시민의 이용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정적공간뿐만 아니라 동적시설을 갖춘 복합적인 성격의 도시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는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 증대와 함께 공원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인 관심표명 및 참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며, 도시공원의 환경적 기능과 효과의 부각에 따라 도시공원의 양적 확대뿐 아니라, 질적 개선도 함께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 있어 근대적 의미의 도시공원 도입은 구한말부터이고, 본격적으로 도시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하지만, 본 연구를 통해서 도시공원의 변화과정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를 종합해 볼 때 대구에서 시민을 위한 '공용(共用)의 휴식처'라는 본연의 의미와 목적에 부합되는 도시공원의 개념이 완성된 것은 1990년대에 와서라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was done for analyzing processes on the planning and opening of chronological urban parks in Daegu City since the 1960s, and for interpreting the social meaning on changes of the urban parks with regards to historical circumstances during that period. In the 1960s, urban parks, which were...
This study was done for analyzing processes on the planning and opening of chronological urban parks in Daegu City since the 1960s, and for interpreting the social meaning on changes of the urban parks with regards to historical circumstances during that period. In the 1960s, urban parks, which were recognized as one of urban planning facilities, were only designated for creating rather than created, although nationally several laws including urban planning act and park act were newly legislated. Rapid urbanization and increasing population in the 1970s led to create many urban parks. However, the policy for increasing parks had been not successful because of the lack of enough funds. In the 1980s, multi-purpose urban parks including stable area as well as active facilities were created for getting several attractions to urban residents. During this period, urban parks were recognized on an aesthetic perspective through vegetating plans on the city-beautiful movement for hosting consecutive international games. The citizen participation in urban parks and the increasing concern about urban environment were started in the 1990s, and the people living in an urban area were interested in the quantitative expansion and qualified renovation of the urban parks as well. Finally, modernistic urban parks were first introduced in the late period of Chosun Dynasty, however their substantial introduction was done in the 1960s. Through this study, the concept of an urban park as a public resting place for citizen in Daegu was thought to be mostly established in the 1990s as we have investigated on the social meaning derived from the periodical changes of urban parks.
This study was done for analyzing processes on the planning and opening of chronological urban parks in Daegu City since the 1960s, and for interpreting the social meaning on changes of the urban parks with regards to historical circumstances during that period. In the 1960s, urban parks, which were recognized as one of urban planning facilities, were only designated for creating rather than created, although nationally several laws including urban planning act and park act were newly legislated. Rapid urbanization and increasing population in the 1970s led to create many urban parks. However, the policy for increasing parks had been not successful because of the lack of enough funds. In the 1980s, multi-purpose urban parks including stable area as well as active facilities were created for getting several attractions to urban residents. During this period, urban parks were recognized on an aesthetic perspective through vegetating plans on the city-beautiful movement for hosting consecutive international games. The citizen participation in urban parks and the increasing concern about urban environment were started in the 1990s, and the people living in an urban area were interested in the quantitative expansion and qualified renovation of the urban parks as well. Finally, modernistic urban parks were first introduced in the late period of Chosun Dynasty, however their substantial introduction was done in the 1960s. Through this study, the concept of an urban park as a public resting place for citizen in Daegu was thought to be mostly established in the 1990s as we have investigated on the social meaning derived from the periodical changes of urban pa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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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지방도시의 하나인 대구를 중심으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도시공원의 변천을 시계열적으로 분석하고, 그 배경이 된 시대상을 연관 지어 고찰함으로써, 도시공원의 계획ㆍ개원과정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를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방도시의 도시공원 발달과정을 이해하는데 기초자료를 제공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도시공원 조성에 있어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지방도시의 하나인 대구를 중심으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도시공원의 변천을 시계열적으로 분석하고, 그 배경이 된 시대상을 연관 지어 고찰함으로써, 도시공원의 계획ㆍ개원과정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를 해석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방도시의 도시공원 발달과정을 이해하는데 기초자료를 제공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도시공원 조성에 있어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또한 동대구로(東大邱路)가 개통되고, 동부지역이 주택단지로 개발됨에 따라 균형 있는 도시개발을 위해 1979년부터 범어 공원을 대단위 유희시설을 갖춘 어린이공원으로 개발하고자 하였다. 범어공원은 1965년 2월 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서, 대구시는 당시 추진 중이던 어린이회관을 범어공원 내에 건립하기로 확정하고 1979년 12월에 기본계획을 완성하였다(그림 5 참조).
본 연구는 각종 문헌자료 조사를 토대로 현지답사와 인터뷰 등을 통해 대구 도시공원의 발달과정을 당시의 사회상ㆍ시대상과 연관 지어 특성을 규명하였다. 우선 대구시사 및 공원계획서, 관보, 신문 등을 통해 대구의 공원계획 및 개원과정에 대한 시계열적인 자료를 수집하였다.
우선 대구시는 1970년 개발에 착수하여 1971년부터 본격적인 공원조성에 들어간 앞산공원에 대해서 1980년 12월에 새로운 10개년 계획을 수립, 조성계획을 재정비하여 도시자연공원으로 개발하고자 하였다(대구매일신문, 1981.2.3). 이미 개발된 1지구(큰골)를 제외하고, 2지구(고산골)에는 어린이유희 위주의 시설을 배치하고자 하였다.
3). 이미 개발된 1지구(큰골)를 제외하고, 2지구(고산골)에는 어린이유희 위주의 시설을 배치하고자 하였다. 또한, 3지구(안지랑골ㆍ안일사와 송현동) 일대에는 교양ㆍ운동시설물을 조성하고, 4지구인 용두골에는 관광농원 등의 설치계획을 수립하였다.
1980년대에는 생활수준과 의식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여가 생활이 보편화되면서 도시민의 휴식과 레크리에이션 장소로 도시공원의 중요성이 한층 더 부각되었고, 1986년과 1988년 두 차례의 국제대회 개최에 대비하여 도시미화를 목표로 각종 녹화계획이 수립되면서 도시공원의 미적 기능이 재인식되었다. 이에 따라 대구시도 1970년대부터 추진된 앞산공원과 두류공원의 조성계획을 새롭게 수정하여 추진함과 동시에, 대구시의 균형개발을 고려하여 동부지역에 위치한 범어공원을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유희시설을 갖춘 대규모 공원으로 조성하고자 하였다.
제안 방법
그리고 도시공원의 변천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이 대부분 수도인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지방도시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므로, 본 연구에서는 지방도시의 하나인 대구를 공간적 범위로 설정하였다.
우선 대구시사 및 공원계획서, 관보, 신문 등을 통해 대구의 공원계획 및 개원과정에 대한 시계열적인 자료를 수집하였다. 다음으로 대구의 대표적인 지방신문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종합ㆍ분석하고, 이를 도시공원의 변천과정과 연관 지어 고찰하였다. 신문은 대구매일신문을 선정하여 1958년부터 현재까지 공원 관련 기사들을 검색ㆍ수집하여 관련 내용을 조사ㆍ분석하였으며, 문헌자료 조사로 부족한 부분은 관계자 인터뷰와 현지답사 등으로 보충하였다.
범어공원은 어린이시설이 주가 되도록 계획의 방침을 세워, 어린이과학관, 어린이문화관의 건립과 함께 어린이 유희시설을 4개 지구에 분산 배치하여 각 지구별로 안배하여 민간자본의 유치가 용이하도록 설계하였다. 또 달성공원 동물원의 협소로 새로운 동물원 부지를 모색하던 대구시는 두류공원에 설치하려던 동물원 계획을 대폭 축소하고, 범어공원 내에 동물원을 분산하여 배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22) 기존의 조성계획은 위락시설과 운동시설이 섞여있어 이용과 관리에 불편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여 어린이놀이터 등 위락시설은 동쪽으로 모으고, 운동시설은 서쪽에 배치하도록 계획을 수정하였다. 또 동물원의 규모를 줄이고 승마장 계획을 취소하였으며, 성당못을 정화하고 주변을 정비하여 시민의 휴식처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한편, 1978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야구장은 1981년 5월에 준공되었고, 두류도서관은 1981년 8월, 두류수영장은 1984년 7월에 완공되었다.
본 연구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도시공원의 계획ㆍ개원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시대적 상황과 연관 지어 고찰하여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를 해석하였으며, 그 결과를 요약하면 표 7과 같다.
1978년 계획 당시에는 이곳을 자연공원의 성격을 띤 정적인 공원으로 조성하고자 전체적으로 정적인 공간으로 계획하였다.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동적위락도 가능하도록 계획의 방향을 수정하고, 전망휴게소 및 전망대, 자연 동ㆍ식물원, 수족관, 유물전시관, 야외음악당, 클럽하우스, 수영장 및 스케이트장 등의 시설계획을 수립하였다(대구시, 1978). 그러나 이 계획 역시 재정 부족 등의 이유로 실현되지 못하고 10년 이상 방치되고 있었다.
대상 데이터
그러나 당초 공원 부지 내의 아케이드를 민간투자로 신축하여 매각대금을 공원 공사비로 충당하려고 했던 대구시의 계획은 1970년 10월 공지공매계획 좌절로 큰 차질을 빚게 되고, 이에 따라 공원은 당초계획보다 2개월 늦어진 1970년 10월 개원하게 된다. 개원 당시 공원 입장료는 어른 30원, 어린이 10원이었다(그림 3의 b 참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구는 도심부의 녹지확보를 위해 도심에 위치한 기존 도시공원의 재정비와 새로운 도시공원의 조성에 주력하여, 중앙공원을 전면 재정비하여 경상감영공원이란 이름으로 개원하고, 동인공원을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으로 확대 조성하였다. 그리고 중앙초등학교 부지를 2ㆍ28기념중앙공원으로 조성하였다.
31). 당초 계획했던 어린이놀이터, 도서관, 분수시설, 연못 등의 일부 시설은 예산부족으로 손대지 못하고, 여론에 쫓겨 미완성인 채로 문을 열었고, 당시 공원 입장료는 어른 20원, 어린이 10원이었다.
또한 대구의 도시계획구역 내 공원 중 택지개발사업에 의한 공원을 제외하고 달성공원, 경상감영공원, 앞산공원, 망우공원, 두류공원, 범어공원 등 대구 시민에게 역사성 및 인지도가 높은 도시공원1)과 1990년대에 조성된 공원 중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봉무공원과 대구대공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2ㆍ28기념중앙공원을 포함하여 총 10개소의 공원을 연구대상의 범위로 한정지었다.
본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196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를 대상으로 하였다. 1962년 도시계획법이 수립되고, 1967년 공원법이 제정되면서 도시계획과 더불어 공원정책이 수행되어져 왔으므로 196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다루었다.
본 연구는 각종 문헌자료 조사를 토대로 현지답사와 인터뷰 등을 통해 대구 도시공원의 발달과정을 당시의 사회상ㆍ시대상과 연관 지어 특성을 규명하였다. 우선 대구시사 및 공원계획서, 관보, 신문 등을 통해 대구의 공원계획 및 개원과정에 대한 시계열적인 자료를 수집하였다. 다음으로 대구의 대표적인 지방신문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종합ㆍ분석하고, 이를 도시공원의 변천과정과 연관 지어 고찰하였다.
1969년 개원 당시 달성공원 내에 동물원은 없었으며, 동물원은 다음해인 1970년에 개원하였다. 창경원 동물을 분양받아 1970년 3월 달성공원 동물원의 기공식을 거행(대구매일신문, 1970.3.3), 같은 해 5월 2일 완공시켜 시민에게 공개하였다(대구 매일신문, 1970.5.3).
이론/모형
망우공원의 조성은 1972년 4월 망우당 곽재우 장군 동상이 제막되고 난 후에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1972년 11월 26일 건설부고시 제486호로 공원으로 지정된다. 공원의 이름은 임진왜란때 활약했던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호인 망우당을 따서 망우공원이라 결정하였다(대구직할시, 1982).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1960년대 대구시에서 유일한 공원은 무엇이었는가?
1960년대 이전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기 등을 거치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체계적인 공원계획과 조성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달성공원은 대구시 2) 에서 유일한 공원이었다.
대구시에서 시대에 따른 도시공원의 변천은 각각 어떠한가?
본 연구는 지방도시의 하나인 대구를 대상으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도시공원의 계획 개원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시대적 상황과 연관 지어 고찰함으로써 도시공원의 변천에 나타난 사회적 의미를 해석하였다. 1960년대에 도시계획법과 공원법이 제정되면서 법제도 내에서 도시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때에는 도시공원이 단지 도시계획시설의 하나로만 인식되어 조성보다는 지정에만 급급하였다. 1970년대는 급격한 도시화와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도시공원의 양적 확보에 주력하였으나, 예산부족으로 계획기간 내에 공원 조성이 완료되지 못하였다. 1980년대는 연이는 대규모 국제대회 개최로 인하여 도시미화를 위한 각종 녹화계획이 수립되면서 도시공원의 미적 기능이 재인식되었으며, 도시민의 이용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정적공간뿐만 아니라 동적시설을 갖춘 복합적인 성격의 도시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는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 증대와 함께 공원에 대한 시민의 적극적인 관심표명 및 참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며, 도시공원의 환경적 기능과 효과의 부각에 따라 도시공원의 양적 확대뿐 아니라, 질적 개선도 함께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 있어 근대적 의미의 도시공원 도입은 구한말부터이고, 본격적으로 도시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한국에 '공원'이라는 개념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 있어 ‘공원’이라는 개념이 통용된 것은 1876년 개항 이후에 외국의 다양한 문물과 함께 공원에 대한 정보가 유입되면서 부터이다(강신용, 1995). 비록 공원이라는 것이 외국에서 도입된 것이긴 하지만, 도입 당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공원의 발달은 우리나라의 근ㆍ현대사와 함께 이루어져왔다.
참고문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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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1998) 공원.유원지 현황. pp.166-176.
대구광역시 중구(1998) 경상감영사백년사. pp.801-808.
대구매일신문. 1958-2013년 주요일자.
대구시(1971) 앞산공원조성계획.
대구시(1978) 봉무불로공원 조성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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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직할시(1982) 대구의 향기. pp.330-335.
민주현(1994) 서울시 공원녹지 형성과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향토사교육연구회(1996) 대구역사기행. 도서출판 나랏말. pp.104-105.
Cranz, Galen(1995) The Politics of Park Design. The MIT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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