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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사직공원의 형성과 변천
A Study on the Formation and Change in the Mordern Sajik Park 원문보기

韓國傳統造景學會誌 = Journal of the Korean Institute of Traditional Landscape Architecture, v.32 no.4, 2014년, pp.120 - 131  

김서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조경학과) ,  김해경 (건국대학교 녹지환경계획학과) ,  박미현 (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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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 시 영조된 사직단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직공원으로 고착화되었고, 최근 복원에 대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통시적으로 분석된 사직단의 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 나라의 중요 국가제사를 지내던 장소로의 입지를 확보하고 강화되었던 조선시대 태조에서 일제강점기 이전까지의 시기이다. 태조대에 인왕산 자락에 축조했으며 임진왜란 시 소실된 후 영조 대에 제례시설이 완비되었다. 그러나 1908년 일제의 간섭이본격화되자 공간 멸실과 제사가 폐지되었다. 둘째, 일제에 의해 공원화가 진행되어 고착화된 1910년부터 1944년까지이다. 공원 관련 시설과 경계부에 이질적인 건축물이 들어섰고, 단 영역 재실 사직단문이 고적과 보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셋째, 해방 이후 1984년까지 이질적 성격의 동상과 기념비, 건축물이 축조되어 혼재된 장소성을 지니게 된 시기이다. 사직터널의 개설로 사직단 문이 2번에 걸쳐서 이축되기도 하였다. 넷째, 사직단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1985년부터 현재까지이다. 사직단 권역의 복원 계획이 진행되고 있으나 주민에 대한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향후, 사직단의 원형 회복을 위한 복원을 위해서는 발굴조사를 통한 면밀한 고증과 주민의 이해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Abstract AI-Helper 아이콘AI-Helper

Sajikdan(a sort of national shrine in Korea) built at the time of foundation of Joseon was entrenched into Sajik Park going through Japanese colonial era and recently the efforts to restore it is in progress. The details of change in Sajikdan in terms of diachronic analysis are as follows: Firstly, ...

주제어

AI 본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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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 본 연구는 사직단의 조성부터 현재까지 선행연구와 문헌분석의 바탕 위에 실증적 자료인 일제강점기 지도와 수치지도를 대입하여 공간 변화를 통시적으로 도출한 후 시기별 구별짓기를 하였다. 이는 기존 문헌 위주의 연구가 지닌 추상적인 영역 검토의 한계를 극복한 실증적인 공간 구성요소와 영역 변천 도출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도출된 사직단 권역에 투영된 시간 층위의 구별짓기는 향후 진행될 사직단 복원 시점의 당위성 확보에 대한 기초자료로 활용 가능하며, 분석에 사용된 문헌과 작성된 도면은 기존에 밝혀지지 않은 자료 발굴로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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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조선 태조 4년(1395년) 한양에 축조된 사직단은 어떠한 역할을 담당했는가? 종묘와 사직단의 배치는『주례(周禮)』의 「고공기(考工記)」에 ‘左廟右社面朝後市’를 준거로 하였고, 각 지방 읍성에는 사직단을 세우고 지방관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Ju, 2006: 237). 조선 태조 4년(1395년) 한양에 축조된 사직단은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4번의 대사(大祀)와 중사(中祀), 기우제(祈雨祭)와 기곡제(祈穀祭) 등을 지내는 국가의 중요한 제례 장소(Kong, 2009: 148) 역할을 담당했다.
일제의 강점으로 제례 공간은 어떻게 변모하였는가? 일제의 강점이 시작되자 아무나 출입할 수 없었던 엄숙함과 위엄을 지닌 제례 공간은 경성시민의 일상적인 방문이 가능한 열린 공원으로 변모했다. 해방 이후에도 도시계획의 요구와 급변하는 사회적 배경의 영향으로 이질적 요소의 도입은 지속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공원의 발생의 세 가지 유형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에서 근대공원의 발생은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자주적인 입장에서 조성된 이왕직 소유의 탑골공원과 국민의 성금이 바탕이 된 독립공원, 두 번째 유형은 일본 거류민이 주축이 된 신사 조성 후 공원으로 변모한 용두산공원과 달성공원 등, 세 번째 유형은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위엄이 있던 조선의 전통공간을 위락공원으로 활용한 장충단공원과 훈련원공원 등이다. 이중 사직공원은 전통공간이 변모한 공원의 형태이다. 사직공원이 현재의 모습을 지니게 된 배경에는 사회적 상황에 따른 공간 변화의 요구도가 원인이 되어 반영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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