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사회에 있어 효 문화는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도덕규범의 실천적 원리였다. 조아(曹娥)는 중국의 대표적인 효의 상징인물로, 원래 무녀(巫女)였으나 한대의 주류 사상인 유가철학의 전파와 함께 효녀의 형상으로 전환되었으며, 이후 지역문화의 발전과 함께 민간의 신앙과 접목하여 수신(水神)의 개념으로 재탄생하기도 하였다. 조아설화의 전파과정 중, 구전과 문학적 가공은 상호적인 작용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으며, 미화되거나 신성화되고 체계화 되었는데, 조아도상은 이러한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이며 온전한 사유적 형상의 체현이다. 예컨대, 현대사회에 있어 문화적 정체성과 함께 그 이면의 근본적인 내적 함의의 인식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조아의 효를 주제로 한 사회기반의 문화콘텐츠의 창작과 이를 통해 효가 가진 문화적 핵심가치를 찾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본문은 조아설화와 효사상 그리고 문화원형을 사례중심으로 서술하였으며, 조아의 민간신앙적 신성화 측면에서 문학으로부터 파생된 가공과 도상의 형성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이미지의 변화와 조형성을 통한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중국 고대사회에 있어 효 문화는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도덕규범의 실천적 원리였다. 조아(曹娥)는 중국의 대표적인 효의 상징인물로, 원래 무녀(巫女)였으나 한대의 주류 사상인 유가철학의 전파와 함께 효녀의 형상으로 전환되었으며, 이후 지역문화의 발전과 함께 민간의 신앙과 접목하여 수신(水神)의 개념으로 재탄생하기도 하였다. 조아설화의 전파과정 중, 구전과 문학적 가공은 상호적인 작용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으며, 미화되거나 신성화되고 체계화 되었는데, 조아도상은 이러한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이며 온전한 사유적 형상의 체현이다. 예컨대, 현대사회에 있어 문화적 정체성과 함께 그 이면의 근본적인 내적 함의의 인식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조아의 효를 주제로 한 사회기반의 문화콘텐츠의 창작과 이를 통해 효가 가진 문화적 핵심가치를 찾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본문은 조아설화와 효사상 그리고 문화원형을 사례중심으로 서술하였으며, 조아의 민간신앙적 신성화 측면에서 문학으로부터 파생된 가공과 도상의 형성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이미지의 변화와 조형성을 통한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The filial piety culture represented by Cao-e was regarded as moral rule mechanism in order to maintain patriarchal system and property relations in ancient China as an agricultural society. Exactly, In the process of Cao-e's story spreading, oral inheritance and literature processing have a relatio...
The filial piety culture represented by Cao-e was regarded as moral rule mechanism in order to maintain patriarchal system and property relations in ancient China as an agricultural society. Exactly, In the process of Cao-e's story spreading, oral inheritance and literature processing have a relation of learning and penetration each other in order to beautify, deify, systematic stories. This is expression of human being's thought method of pursuing perfection. For instance, The traditional piety culture is increasingly weakened, that is why it is important to recognize the fundamental connotation behind the cultural identity in the modern society, to create the social foundation of Cao-e' filial piety cultural contents root, and to explore the core values of piety culture contains. Looking Cao-e' filial piety Culture and culture archetypes as study object, this article analyzes the spreading of Cao-e's story texts for understand the connection between literature processing and image formation from aspect of Cao-e deification.
The filial piety culture represented by Cao-e was regarded as moral rule mechanism in order to maintain patriarchal system and property relations in ancient China as an agricultural society. Exactly, In the process of Cao-e's story spreading, oral inheritance and literature processing have a relation of learning and penetration each other in order to beautify, deify, systematic stories. This is expression of human being's thought method of pursuing perfection. For instance, The traditional piety culture is increasingly weakened, that is why it is important to recognize the fundamental connotation behind the cultural identity in the modern society, to create the social foundation of Cao-e' filial piety cultural contents root, and to explore the core values of piety culture contains. Looking Cao-e' filial piety Culture and culture archetypes as study object, this article analyzes the spreading of Cao-e's story texts for understand the connection between literature processing and image formation from aspect of Cao-e de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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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하지만 아직 조아와 관련된 효사상과 신앙으로서 시대적 인식변화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그러므로 본문은 조아와 관련된 설화의 유래와 그 흐름에 대해 살펴보고, 효의 시대사회적 인식변화에 따른 조아사상의 확산과 신성화 그리고 조아의 도상적 표현에 대해 서술하면서, 현대적 의미에 있어 조아의 인물도상과 문화원형으로서 텍스트 재현의 문제와 활용에 대한 논의도 함께하였다.
인간의 삶의 한 실천으로서 효는 종종 문학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하였으며, 문학의 한 주제로서 서사화함으로써 끊임없이 지나가는 삶의 찰나를 깨닫고 경계하며 실천함으로서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교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설화 속의 효에 대한 표현과 활자화 그리고 제례를 통한 과거 사실에 대한 현실적 재현을 통해 효 혹은 효와 관련된 인물을 신성화하고 상호교감을 실현하려하였다.
본문은 고대 중국문학의 서사방식과 회화의 도상표현의 상호관련성에 관한 연구이다. 특히 유교적 사상에 근거를 두고 제작되는 충효 이미지의 대표적인 사례로 후한서(後漢書) 열녀전에 등장하는 조아(曹娥, 130年~143年)설화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문학적 서사가 민간의 종교적 성격으로서 확대되어, 그에 따른 시각예술로서 보편적 도상의 탄생과 시대적 흐름에 따른 신격화 방식에서 인물에 대한 인식과 그 도상의 표현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제안 방법
7) 그러면 무녀 신분의 조아가 어떻게 효녀의 상징으로서 형상화되어 정사(正史)에 실리게 되었을까? 이는 조아가 143년 죽은 후 9년 후인 151년에 시작된다고 보여진다. 상우현 현장 도상(度尚)이 조아의 행위를 슬퍼하여 개장하고 비를 세우며, 그의 제자 감단순(邯鄲淳)을 시켜 비문을 적게 하였다. 사실 동한시대는 국가적인 정책으로 무속행위를 우민적 작폐로 규정하여 미신으로 제한할 정도로 보편적이었으나, 우현이 속한 회계(會稽)지역은 여전히 무속에 대한 신앙적 관습이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고판화를 활용한 전통적인 캐릭터디자인 개발과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의일환으로 조아설화를 문화원형 콘텐츠화한 사례이다. 전통 목판화에 나타난 문화원형 자료들을 분류하고 분석하여 새롭게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화 하였으며, 특히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된 캐릭터 이미지를 활용, 전통 시각이미지를 현대의 조형적 감수성에 부합하게 재해석하여 문화콘텐츠산업으로서의 수용적 측면에서 확장을 시도하였다.21)
본문은 고대 중국문학의 서사방식과 회화의 도상표현의 상호관련성에 관한 연구이다. 특히 유교적 사상에 근거를 두고 제작되는 충효 이미지의 대표적인 사례로 후한서(後漢書) 열녀전에 등장하는 조아(曹娥, 130年~143年)설화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문학적 서사가 민간의 종교적 성격으로서 확대되어, 그에 따른 시각예술로서 보편적 도상의 탄생과 시대적 흐름에 따른 신격화 방식에서 인물에 대한 인식과 그 도상의 표현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대상 데이터
142년(漢安二年) 단오날, 그는 고을 강가에서 춤을 추며 수신제(水神祭) 굿을 하다가 실족하여 물에 빠져 죽었는데, 시신조차 어디 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때 그의 딸 조아는 겨우 14살 된 소녀로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며 17일 동안 밤낮으로 강가에서 울며 애절하다가 강물에 빠져 죽었는데, 151년(元嘉元年)에 이르러 현장(縣長) 도상(度尚)이 강남도(江南道) 근처에 개장(改葬)하면서 비석을 세워주었다.’2) 후에 사람들이 조아의 효심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가 강물에 빠진 근처에 조아묘(曹娥廟)를 만들었으며, 그의 이름을 빌어 그녀가 살았던 마을을 조아진(曹娥鎭)이라 하였고, 강의 이름은 조아강(曹娥江)이라 하였다.
이론/모형
즉, 창작 소재로서 문화원형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의 디지털환경과 감성적 정서 그리고 대중매체의 특성을 고려한 이미지의 재구현은 필수적이다. 그 예로 S대학의 콘텐츠화 이미지 모형을 참조하였다. 고판화를 활용한 전통적인 캐릭터디자인 개발과 디지털 데이터베이스화의일환으로 조아설화를 문화원형 콘텐츠화한 사례이다.
후속연구
전통적 고판화가 다양한 판각에 의한 선과 톤에 의한 순수예술로서 표현이라면, 디지털화된 콘텐츠로서의 판화 이미지는 컴퓨터 화면의 픽셀형태의 저장하고 전달하며 변형할 수 있는 영상정보로, 기록의 차원을 넘어선 이미지 기호인 것이다. 이는 판화의 표현과 디지털의 기술적 융합이 전통 회화가 지닌 고유한 심미적 특성과 함께 조형적 표현의 자율성을 확보하며, 산업으로서의 현실과 결부된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원형으로서 조아설화의 콘텐츠화는 이미지의 단순한 시각적 현대화가 아닌 이미지에 내재된 스토리를 고려한 예술창작이며, 회화적 이미지와 문학적 서사성에 기초한 뉴미디어와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대중예술로서의 회복과 문화산업적 가치 창출을 가능하게 하였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조아설화의 줄거리는 어떠한가?
그 설화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조아는 동한말년(東漢末年)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 지역인 회계(會稽) 상우(上虞) 사람이다. 그의 부친 조간(曺旰)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弦歌) 굿(巫祝)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142년(漢安二年) 단오날, 그는 고을 강가에서 춤을 추며 수신제(水神祭) 굿을 하다가 실족하여 물에 빠져 죽었는데, 시신조차 어디 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때 그의 딸 조아는 겨우 14살 된 소녀로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며 17일 동안 밤낮으로 강가에서 울며 애절하다가 강물에 빠져 죽었는데, 151년(元嘉元年)에 이르러 현장(縣長) 도상(度尚)이 강남도(江南道) 근처에 개장(改葬)하면서 비석을 세워주었다.’2) 후에 사람들이 조아의 효심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가 강물에 빠진 근처에 조아묘(曹娥廟)를 만들었으며, 그의 이름을 빌어 그녀가 살았던 마을을 조아진(曹娥鎭)이라 하였고, 강의 이름은 조아강(曹娥江)이라 하였다.
효는 언제부터 그 의미가 구체화 되었는가?
효(孝)의 어원은 이미 중국 고대 은(殷)대부터 이미 ‘孝’자가 출현하지만 단순한 지명이거나 혹은 귀족의 정치종교적 예식으로서 조상을 위한 제사행위였다. 서주(西周)시대에 이르러 효는 조상이나 부모에 대한 제사나 추도와 함께 현세 부모에 대한 봉양의 의미로 구체화 되었고, 춘추시대에는 부모를 봉양하고 경애하며 돌아가신 후 그 유언을 따르며 추모함을 나타내었다. 이후 『효경』(孝經)의 교화적 성격과 함께 절대적 개념의 정치사상(以孝治天下)으로 변용되기도 하였는데, 한대 유학자 동중서(董仲舒)는 효와 충을 연결한 개념으로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효가 문학의 소재가 됐을 때 역할은 무엇인가?
이처럼, 고대 중국 사람들은 유교적 실체이자, 효에 대해 삶의 가치로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인간됨의 원초적 깊이는 덕행의 산실인 모두 이 효라는 범주를 통해 발현된다고 믿었다. 인간의 삶의 한 실천으로서 효는 종종 문학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하였으며, 문학의 한 주제로서 서사화함으로써 끊임없이 지나가는 삶의 찰나를 깨닫고 경계하며 실천함으로서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교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설화 속의 효에 대한 표현과 활자화 그리고 제례를 통한 과거 사실에 대한 현실적 재현을 통해 효 혹은 효와 관련된 인물을 신성화하고 상호교감을 실현하려하였다.
참고문헌 (27)
김정수, 역주삼강행실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10.
송철의 외3, 역주오륜행실도,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김교빈, 문화원형의 개념과 활용, 인문콘텐츠, 제6호 (2005.12), pp.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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