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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인삼문화 = Journal of ginseng culture, v.2, 2020년, pp.17 - 26
고승태 (동양대학교 생명화학공학과)
인삼은 예로부터 연명(延命)의 약물로 분류된 상약(上藥)의 하나로 자리를 잡고 지닌 약성에 따라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었으며, 특수계급만을 대상으로 하였던 인삼 수요가 다른 계층으로 확대되면서 그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무분별한 채취로 멸절(滅絶)되어 채취하기가 어렵게 되어 자연산 인삼으로는 공급의 한계에 이르게 되자, 인삼 공급 방법은 힘든 자연산 인삼의 채취보다는 가성비 높은 가삼 재배 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인삼종주국인 우리나라의 가삼 재배 시기에 관해서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첫 재배지에 관한 연구는 아직 보고되지 않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가삼 재배 관련 자료의 정리를 통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가삼 재배지에 관한 정리와 고찰을 하였으며, 여기에 인용된 사료는 조선왕조실록, 임원십육지, 오주연문장전산고, 중경지, 증보문헌비고, 인삼사 등이다. 정리와 고찰의 결과, 조선 시대 최초의 가삼 재배지는 영남지역으로 특히, 풍기면(현재의 경북 영주시 풍기읍)으로 추측된다.
Ginseng, also known as Insam, has solidified its status as one of the supreme drugs classified as life time expansion drug since ancient times and was used as a panacea based on its pharmaceutical effectiveness. The demand for ginseng rapidly increased as the demand for ginseng, which targeted on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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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어 | 질문 |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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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은 언제 연명(延命)의 약물로 분류된 상약(上藥)의 하나로 자리를 잡고 지닌 약성에 따라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었는가? | 선도(仙道) 사상의 복식(服食) 영향을 받은 본초학(本草學)이 형태를 갖추어 가면서 인삼은 연명(延命)의 약물로 분류된 상약(上藥)의 하나로 자리를 잡고 지닌 약성에 따라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었으며, 특수계급만을 대상 으로 하였던 인삼 수요가 다른 계층으로 확대되면서 그인삼의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무분별한 채취로 멸절(滅絶)되어 채취하기가 어렵게 되어 자연산 인삼으로는 공급의 한계에 이르게 되자, 인삼공급 방법은 힘든 자연산 인삼의 채취보다는 가성비 높은 가삼 재배 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 |
T. Imamura는 1935년에 편찬한 인삼사 2권 인삼정치편 에서 전라도 동복현의 가삼 재배에 관해 기술한 중경지와 증보문헌비고의 내용에 대해 어떻게 반박하였는가? | (1) 위의 여자가 산에서 인삼 씨앗을 따서 심었다는 것은 어떤 여자가 산신령에게 자식을 얻게 해달라고 빌었고, 그 계시에 따라 인삼 씨앗을 얻어 그것을 심은 것이 종삼(種蔘)의 시작이 다는 것은 경성(京城)개성(開城)풍기(豊基) 등에 퍼져 있는 전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내용은 동복(同福) 부근에서는 전해 내려 오지 않는다. (2) 가삼의 시작은 경상도 또는 전라도의 산촌에서 비밀리 시작한 것으로서, 오늘에 와서는 그 최초의 장소는 알 수가 없다. (3) 최(崔)의 일족은 지금 동복(同福)의 인삼밭이 있는 모후산(母后山) 아래에 거주하였으나, 몹시 가난해서 백여 년 전에 부호였다는 전승(傳承)이나 증적(證 跡)도 전혀 없다. (4) 이 시대에 있어 어용(御用) 상인이나 관청에 연고가 있는 상인 또는 통역 등 이외에는 북경(北京)으로의 인삼 밀무역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물며 전라도의 산촌에서 도(道)에서 이름이 날 정도의 부를 일구었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5) 인삼을 쪄서 만든 제품은 이미 청(淸)의 태조 시대에 만주에서 행하여졌었다. 조선에서는 선조(宣祖) 때명(明)의 원군(援軍) 중의 어떤 사람으로부터 배워 만들어낸 것으로 최(崔)의 발명이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설(說)이다. (6) 아편(鴉片) 중독에 의해 성적 불능이 된 중국인이 홍삼을 복용하는 것은 지금도 행하여지고 있지만, 백삼을 복용하여 부작용(독)이 있었다는 것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7) 역인(譯人)이 인삼을 취급하면서, 인삼 무역(일본, 중국)으로 이익을 얻은 유래는 아주 오래된 것이다. 역인(譯人)이 최(崔)에게서 그 무역 이권을 받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망설(妄說)로 사리에 맞지 않는다. | |
가삼 재배가 증가하게된 이유는 무엇인가? | 선도(仙道) 사상의 복식(服食) 영향을 받은 본초학(本草學)이 형태를 갖추어 가면서 인삼은 연명(延命)의 약물로 분류된 상약(上藥)의 하나로 자리를 잡고 지닌 약성에 따라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었으며, 특수계급만을 대상 으로 하였던 인삼 수요가 다른 계층으로 확대되면서 그인삼의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무분별한 채취로 멸절(滅絶)되어 채취하기가 어렵게 되어 자연산 인삼으로는 공급의 한계에 이르게 되자, 인삼공급 방법은 힘든 자연산 인삼의 채취보다는 가성비 높은 가삼 재배 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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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 국사편찬위원회,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do (검색일: 2019년 12월 31일).
고승태, 인삼사 제2권 인삼정치편, (고문당,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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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Imamura, 人蔘史, vol. 2, (朝鮮總督府專賣局編, 1935).
T. Imamura, 人蔘史, vol. 4, (朝鮮總督府專賣局編,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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