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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건축역사연구 : 한국건축역사학회논문집 = Journal of architectural history, v.29 no.1, 2020년, pp.51 - 64
Southern Royal Villa served as an accommodation for the prince in early Joseon Dynasty, and as an official residence and banquet room for Chinese diplomats in the later period. It was facing south and was located at the southern part of the old town of Seoul and to the north of the Southern Gate. Th...
핵심어 | 질문 |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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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별궁의 건물들은 관소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그 위상이나 규모에 어떤 변동이 있었는가? | 몸채는 의안궁방의 중심 건물이었다. 그러나 관소로 쓰이면서 ‘내’ 영역의 동상방(정사방)·산우루와 서상방(부사방), 서청(서연청)의 위상이 높아졌다. 반면, 몸채는 두목 이하 수행원의 숙소가 되어 위상이 낮아지고 용도가 위축되었다. 이에 몸채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였고, 이름도 ‘남루’로 변하였다. 의안궁방 때부터 있었던 사랑도 이름이 ‘연칸[宴間]’으로 바뀌었다. | |
'소공주'의 집이 었던 남별궁은 임진왜란 중 선조가 명나라 장수와 사신을 접견한 후로 무엇이 되었는가? | 2) 이때에 ‘남별궁’이라는 관용적인 명칭이 생긴 듯하다. 이후 남별궁은 중국 사신이 묵는 ‘관소(館所)’가 되었다. | |
수선전도를 이용해 확인한 남별궁의 위치는? | 본고에서는 『수선전도』를 이용하여 중국 사신의 관소가 있었던 남별궁의 위치와 좌향을 확인하였다. 남별궁은 도성의 남부 회현방에 남향으로 자리하였다. 이어 『군색등록(1608)』·『군색의궤(1634)』·『빈례총람(1819)』을 이용하여 남별궁 내부의 영역 구분, 건물 내부의 구획, 건물 배치를 확인하였다. |
영접도감군색등록 (규 14552, 규 14553)
영접도감군색의궤 (규 14565, 규 14566)
빈례총람 (규 1344-v.1-3, 규 5434-v.1-3, 규 17273-v.1-3)
송인호.조은주, 조선 별궁 어의궁(용흥궁)의 도시 위상과 영조의 친영, 대한건축학회논문집 계획계, 27권 5호, 2011
이종서, 조선전기의 주거용 층루 건축 전통, 역사민속학 22
정정남, 임진왜란 이후 남별궁의 공해적 역할과 그 공간 활용, 건축역사연구, 18권, 4호, 2009
정정남, 효종대 仁慶宮內宮家의 건립과 그 이후 宮域의 변화, 서울학연구, 39, 2010
조영준, 조선후기 궁방(宮房)의 실체, 정신문화연구, 31-3(통권 112호),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주남철, 궁집 일지사, 2003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원문자료검색' (http://kyu.snu.ac.kr/home/index.do?idx06&siteCdKYU&topMenuId206&targetId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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