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릉 석인상(문인석, 무인석)의 크기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Size of the Stone Pillars(A Statue of confucian Official and A Statue of Military Officer) in the Royal Tomb of the Joseon Dynasty원문보기
본 연구는 조선시대 왕릉 석인상의 크기에 관한 연구로서 분석 결과를 요약하면, 석인상의 문인석, 무인석은 1600년대에는 크기가 증가하였다가 1700년대에는 크기가 다소 감소하였으나 1800년대에는 석인상의 크기가 증가하는 것으로 평균 분석 결과 확인되었다. 조선 왕릉의 석인상은 당시 인물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그 시대 인물상의 전형을 살펴볼 수 있다. 왕릉은 일관성과 고유성을 지니고 있으며, 석인상의 크기에 관한 규범은 시대별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지배계급의 권위적 상징의 건축물로서 의식과 법제에 따라 왕릉이 축조된 국가적 공사였다. 조선시대 묘의 석인상 크기는 능의 석인상에 비하여 약 90cm의 차이로 작았으며 조선전기에 제작된 석물은 지위에 따라 석물의 크기에 차등을 두었다고 한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 왕릉 석인상의 연대별 석물 크기를 확인하는데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 왕릉 석인상의 크기에 관한 연구로서 분석 결과를 요약하면, 석인상의 문인석, 무인석은 1600년대에는 크기가 증가하였다가 1700년대에는 크기가 다소 감소하였으나 1800년대에는 석인상의 크기가 증가하는 것으로 평균 분석 결과 확인되었다. 조선 왕릉의 석인상은 당시 인물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그 시대 인물상의 전형을 살펴볼 수 있다. 왕릉은 일관성과 고유성을 지니고 있으며, 석인상의 크기에 관한 규범은 시대별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지배계급의 권위적 상징의 건축물로서 의식과 법제에 따라 왕릉이 축조된 국가적 공사였다. 조선시대 묘의 석인상 크기는 능의 석인상에 비하여 약 90cm의 차이로 작았으며 조선전기에 제작된 석물은 지위에 따라 석물의 크기에 차등을 두었다고 한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 왕릉 석인상의 연대별 석물 크기를 확인하는데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This study is a study on the size of the stone statues of the royal tombs in the Joseon Dynasty. In summary, the size of the stone statues of Moon, Inseok and Unmanned Stone increased in the 1600s and then decreased slightly in the 1700s, but increased in size in the 1800s. It was confirmed that the...
This study is a study on the size of the stone statues of the royal tombs in the Joseon Dynasty. In summary, the size of the stone statues of Moon, Inseok and Unmanned Stone increased in the 1600s and then decreased slightly in the 1700s, but increased in size in the 1800s. It was confirmed that the average analysis result. The statue of Seok-in of the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reflects the characters of the time, and through this, the typical figures of the times can be examined. The royal tomb has consistency and uniqueness, and the norms regarding the size of stone statues have changed over time. As a building of the authoritative symbol of the ruling class, it was a national construction where royal tombs were built according to rituals and laws. It is said that the size of the stone statues in the Joseon Dynasty was about 90cm smaller than the stone statues of the tombs. In this study,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is to confirm the stone size of each stone age in the royal tomb of Joseon.
This study is a study on the size of the stone statues of the royal tombs in the Joseon Dynasty. In summary, the size of the stone statues of Moon, Inseok and Unmanned Stone increased in the 1600s and then decreased slightly in the 1700s, but increased in size in the 1800s. It was confirmed that the average analysis result. The statue of Seok-in of the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reflects the characters of the time, and through this, the typical figures of the times can be examined. The royal tomb has consistency and uniqueness, and the norms regarding the size of stone statues have changed over time. As a building of the authoritative symbol of the ruling class, it was a national construction where royal tombs were built according to rituals and laws. It is said that the size of the stone statues in the Joseon Dynasty was about 90cm smaller than the stone statues of the tombs. In this study,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is to confirm the stone size of each stone age in the royal tomb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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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본 연구는 조선시대 왕릉 석인상(문인석, 무인석) 연대별 크기에 대해 평균 분석을 실시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조선 왕릉 석인상의 연대별 석물의 크기를 확인하는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제안 방법
건원릉과 후릉, 헌릉에서는 고려의 왕릉제도를 계승하여 현 정릉을 따라 문석인, 무석 인, 석양, 석호만을 세우며 장식하는데, 당·송의 황제릉에 나타난 석물 제도를 참고하여 조선의 왕릉에 세워지는 석물에도 변화를 주게 되었다(이정선, 2009). 또한, 영조는 국조상례보편 초판본을 정교하게 다듬어 1758년에 개수판을 간행했다. 석인 크기는 문석인 길이 5척 8촌 2 푼, 무석인 6척 2촌으로 역시 푼 단위까지 세밀하게 명시하고 있다.
대상 데이터
세종 23년(1441)에 왕릉의 석물에 대한 규정도 고제를 참조하여 정비되었다. 건원릉과 후릉, 헌릉에서는 고려의 왕릉제도를 계승하여 현 정릉을 따라 문석인, 무석 인, 석양, 석호만을 세우며 장식하는데, 당·송의 황제릉에 나타난 석물 제도를 참고하여 조선의 왕릉에 세워지는 석물에도 변화를 주게 되었다(이정선, 2009).
이론/모형
또한, 건원릉(健元陵)은 조선 제1대 태조의 능으로서 당시 제작 척수는 아니지만 1648년 공혜왕후 순릉수개도감 편찬에 사용한 척(尺)을 이용하여 측정한 기록을(김환철, 2013) 토대로 정리하였으며, 연대별 문인석, 무인석 크기를 정리하면 와 같다.
성능/효과
문인석의 평균비교 분석결과, 길이(L)는 1600년대는 2,598, 1700년대 1,928, 1800년대 2,440으로 1600년대, 1800년대 보다 1700년대가 문인석상의 길이(L)가 다소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결과를 요약해 보면 석인상의 문인석, 무인석은 1600년대에는 크기가 증가하였다가 1700년대에는 크기가 감소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1800년대에는 석인상의 크기가 증가하는 것으로 평균 분석 결과 확인할 수 있었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조선시대 능묘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조선시대 능묘는 크게 세 가지로 능ㆍ원ㆍ묘로 구분되며,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고, 원(園)이란 왕세자와 왕세자비 및 왕의 모후의 무덤이며, 묘(墓)는 대군, 군, 공주, 옹주, 귀인, 일반 사대부의 무덤이다. 조선 왕실은 능과 원에 놓일 석물을 제작하였으며 현존하는 왕릉은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다.
조선시대 왕릉은 총 몇 기인가?
조선시대 왕릉의 수는 총 42기이다. 그 중 왕릉 40기는 왕조의 자연친화적인 독특한 장묘(葬墓) 전통, 당시의 세계관과 정치사, 예술적 역량은 물론, 현재까지 이어 지는 조상숭배의 전통을 보여주는 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시사매거진, 2019).
16세기의 조선의 왕릉 석인상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조선의 왕릉 석인상은 15세기 초반에는 자연스러운 인체구도에 굴곡진 곡선에서 15세기 말부터 추상적으로 변화되어 왔다. 16세기부터는 크기도 증가하여 3:1의 신체 비례를 유지하였다.
참고문헌 (13)
김환철(2013), "조선후기 왕릉 석물조영에 사용된 척도에 관한 연구", 명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김은선(2017), "조선시대 왕릉 석인상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전나나(2009), "조선왕릉 석인상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이은주(2008), "사대부 묘 석인상 복식의 양식변화요인에 관한 고찰", 한국복식학회, 제58권 제6호 pp.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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