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quire{mediawiki-texvc}$

연합인증

연합인증 가입 기관의 연구자들은 소속기관의 인증정보(ID와 암호)를 이용해 다른 대학, 연구기관, 서비스 공급자의 다양한 온라인 자원과 연구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여행자가 자국에서 발행 받은 여권으로 세계 각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연합인증으로 이용이 가능한 서비스는 NTIS, DataON, Edison, Kafe, Webinar 등이 있습니다.

한번의 인증절차만으로 연합인증 가입 서비스에 추가 로그인 없이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연합인증을 위해서는 최초 1회만 인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회원이 아닐 경우 회원 가입이 필요합니다.)

연합인증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최초이용시에는
ScienceON에 로그인 → 연합인증 서비스 접속 → 로그인 (본인 확인 또는 회원가입) → 서비스 이용

그 이후에는
ScienceON 로그인 → 연합인증 서비스 접속 → 서비스 이용

연합인증을 활용하시면 KISTI가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국내논문] 朝鮮 15ㆍ16세기 靑畵白磁의 製作과 使用 - 문헌자료와 요지출토품을 중심으로
The production and usage of blue and white porcelains of the 15th and 16th centuries Joseon Dynasty

美術史學硏究 = Korean journal of art history, no.250/251, 2006년, pp.315 - 360  

윤효정

초록

조선왕조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도자기로서 등장한 청화백자는 15ㆍ16세기를 통해 외래적인 중국양식의 모방과 토착화의 단계를 거쳐 간일하고 회화적 표현이 강화된 조선적 특색을 가진 청화백자로의 양식적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이처럼 15ㆍ16세기의 청화백자는 조선 청화백자의 양식적 원형이 성립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과 유물이 빈약한 현실적 한계로 인해 조선시대 도자사의 한 부분이 아닌 독립된 주제로서의 이 시기 청화백자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지 못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그러한 점에 주목하여 최근까지 축적된 조선시대 백자가마터에서 발굴된 청화 백자들을 상대편년자료로 적극 활용하여 면밀히 분석하고, 개인문집에 대한 조사를 시도하여 새로 확보된 문헌자료들을 기존의 『朝鮮王朝實錄』의 기록들과 아울러 검토함으로써 15ㆍ16세기의 청화백자에 대한 조선사회의 인식, 제작과 사용의 구체적인 양상, 당시에 제작된 청화백자의 양식적 특징과 변화에 대한고찰을시도하였다.

먼저 조선에서 청화백자가 제작되는 배경을 당시의 대내외적 상황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조선 초 중국 청화백자가 明 황실로부터의 전래품이나 무역품으로 유입되어 왕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특히 磁器에 의한 금속제 의례기의 대체정책의 결과로 청화백자의 사용 확대와 수요 증가가 이루어졌으나 전래나 유입에 의한 중국으로부터의 공급이 1450년을 기점으로 원활히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였음이 드러났다. 그리하여 조선 왕실은 필요한 청화백자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자체적인 제작을 시도하게 되었고, 마침내 경질백자의 제작기반을 토대로 1450년 이후 1456년 이전, 즉 1450년대 전반경에 왕실의 주도하에서 자체적인 조선 청화백자의 제작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기록의 검토 결과, 우선 지금까지 청화백자로서의 존재가 불확실하였던 ‘畵鍾’이 당시 왕실뿐 아니라 士大夫家에서 청화백자 酒器의 대표적 존재로서 실제로 사용되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청화백자의 제작과 사용에 대한 시기적인 검토 결과, 세종연간까지도 중국산 청화백자가 왕실전용의 기물로서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세조연간이 되면 자체적으로 제작된 청화백자가 왕실과 사대부층을 중심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 시기 청화 백자의 제작과 사용은 세조연간을 기점으로 하나의 큰 전환이 이루어졌던 것은 분명하며, 그것은 왕인 세조의 청화백자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개입을 통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이 시기 청화백자의 제작과 사용은 철저히 조선왕실의 주도 속에서 이루어졌는데, 제작의 경우 分院의 설치와 함께 수준 높은 청화백자를 제작하게 되었지만 안료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한정된 수량만이 제작되었다. 사용에 있어서는 세조연간 법적 명문화가 이루어지면서 원칙적으로 왕실 외에는 사대부층만이 청화백자 酒器를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뿐 민간에서의 사용은 사치풍조로 간주하여 엄격히 규제되었다. 이러한 청화백자의 제작과 시용에 대한 규제와 제한은 청화백자가 귀천의 분별이라는 신분적 상징성을 가진 기물이자 사치품이라는 당시 조선 왕실이 가졌던 청화백자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원칙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청화백자에 대한 욕구는 확대되어 밀무역을 통해 수입된 중국산 청화백자가 일반인들에 의해 사용되면서 실제적으로는 成宗-中宗年間에 이르면 전국적 범위로 청화백자의 사용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요지출토품들을 통해 확인된 이 시기에 제작된 청화백자의 양식적 특징과 변화의 양상은 다음과 같다. 전세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발, 대접, 접시와 같은 일상생활용기명은 거의 없고 儀禮器 및 酒器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立壺, 전접시, 兩耳盞과 같은 특수기종이 이 시기 청화백자의 주종을 이루었음이 확인된다. 문양에서도 松竹梅나 詩와 같은 문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소재에의 편중이 두드러지는 것이 확인된다. 또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 무렵에는 이미 중국양식에서 탈피하여 조선적 특색이 양식적으로 정착되는 것을 도마리 1호 요지의 출토품을 통해 확인된다. 그러나 번천리 9호 요지의 출토품에서 확인되듯이 16세기 중반경이 되면서 문양이 흐트러지고 도식화 되면서 전체적인 질과 격이 떨어지는 양식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조선전기 청화백자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진정한 전성기를 이룩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15ㆍ16세기에 조선 청화백자는 귀한 자들만이 쓸 수 있는 기물이라는 신분적 상징성이 부여된 채 철저히 ..

Abstract AI-Helper 아이콘AI-Helper

With the beginning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blue-and-white porcelain emerged as a new type of ceramic. As it changed and developed throughout the whole dynastic period, later Joseon blue-and-white porcelain display its own lyrical characteristics and pictorial design, which distinguishes i...

주제어

섹션별 컨텐츠 바로가기

AI-Helper ※ AI-Helper는 오픈소스 모델을 사용합니다.

AI-Helper 아이콘
AI-Helper
안녕하세요, AI-Helper입니다. 좌측 "선택된 텍스트"에서 텍스트를 선택하여 요약, 번역, 용어설명을 실행하세요.
※ AI-Helper는 부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

선택된 텍스트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