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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한국극예술연구 = The Journal of Korean drama and theatre, v.35, 2012년, pp.81 - 124
백현미
본고는 소녀의 이름으로 호명되고 광고된 소녀 연예인의 탄생과 성장에 주목했다. 조선 소녀 배구자와 권익남은 열 살 전후의 나이에 덴가츠이치좌와 스즈랑좌 같은 다국적 공연단에 소속되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29년 10대 후반의 나이에 이른 조선 소녀 배구자와 권익남은 독립하여 각각 배구자예술연구소와 금성오페라단(삼천가극단)을 창단했고, 서양과 일본의 대중문화를 흡수하면서, 신무용과 재즈 그리고 가극들을 공연했다. 소녀를 앞세운 가극 공연의 기획은 1935년 동양극장이 신축하면서 꾸준히 확대되었다. 배구자가 이끈 공연단 이외에 낭랑좌와 도화원 등이 소녀가극단임을 내세우며 동양극장 무대에 올랐다.
소녀가극단의 레퍼토리와 공연형식에서 드러나는 경향성을 소녀 연예인 및 소녀가극 취미라고 명명하며, ‘이국과 조선의 박람회적 전시’ 취미와 ‘섹슈얼리티와 보이시’ 취미를 지적했다. 소녀가극 레퍼토리는 박람회처럼 근대 산업 발달을 선전하면서 인종과 국가를 전시하는 효과를 내는 것들이인기를 끌었다. 소녀가극은 이국과 조선을 흥미롭게 전시하는, 박람회의 연예물화였다. 소녀가극의 공연형식에서는 여자가 남자역을 연기하거나 남자 복장을 하고 악기 연주하는 점이 특징으로 두드러졌다. 소녀가극은 보이시한 섹슈얼리티를 자극하는 모던 문화의 특종이었다.
This paper examines the uprising of ‘girl entertainer’ and the tastes of girl musical plays in early modern period of Korea. Bae Guja and Kwon Iknam might be the first girl entertainers in Korea. They were trained at Japanese troupes composed of multinational players and performed in many count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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