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5막1장)’에서 제목을 차용한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표제와는 달리 우울한 미래사회의 모습을 그린 고전명작이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신세계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과학의 성과 앞에 무릎을 꿇고 노예로 전락한 채 모든 인간적 가치와 존엄성을 상실한 삶을 살아간다.
저명한 진화론자인 조부 토마스 헨리 헉슬리, 생물학자인 형 줄리언 헉슬리 등 어려서부터 생물학 환경에 둘러싸여 있던 헉슬리는 미래사회 문명의 발달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조망했다.


‘멋진 신세계’, 배양법과 소마로 지배되는 전체주의 미래사회



신세계는 철저히 계획경제로 인구가 조절되는 사회이다. 신세계의 인간들은 자연출산이 아닌 인위적으로 조절되는 실험실의 배양병에서 태어난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 계급이 정해지며 그 계급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까지 유전공학적으로 조절돼 태어난다. 최상의 우등계급인 알파부터 열등계급인 엡실론까지 각각의 계층에 필요한 수만큼의 인간이 계획적으로 통제돼 생산된다.
신세계의 인간들은 매일 일정량의 ‘소마’라는 묘약을 배급받는다. 소마를 먹으면 우울증에서 벗어나며 술을 마신 것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소마 덕택으로 인간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마치 ‘천국’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생활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어떤 욕망도 없다. 모든 욕망은 배제당하며 배정되지 않는 욕망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불안이나 불만도 없으며 욕망마저 배제된 신세계는 일종의 ‘바보들의 천국’인 셈이다. 이 바보들의 천국에서 오직 단 한명의 사람이 바보가 아닌 ‘천재’로 살아간다. 통치자 무스타파 몬드이다. 무스타파 몬드는 신세계의 인구를 조절하고 소마를 배급하며 모든 인간 위에 군림하는 전체주의적 절대군주이다.
신세계의 인간처럼 배양병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구세계의 존이 신세계에 등장하면서 전체주의 신세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반항이 야기된다. 고난과 욕망, 격정과 종교적 정서를 체험한 존은 아무런 지각없이 바보 같은 삶을 영위하는 신세계의 행복을 납득하지 못한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상징하는 구세계의 존은 결국 신세계 사람들의 박해에 쫓겨 자살한다.
출간된 지 근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멋진 신세계가 여전히 멋진 이유는 현대사회가 느끼는 과학기술의 위기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작품 속 과학기술들은 이미 현대사회에서 일정 수준 실현되고 있는 기술들이다.
신세계를 유지하는 기술의 핵심은 인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배양법’과 인간의 마음을 조절하는 ‘소마’라는 약이다. 신세계에서는 극단적으로 한 개의 수정란을 96개까지 분열시켜 수정란 한 개에서 96명의 태아를 자라도록 한다.


체외수정, 1978년 첫 ‘시험관 아기’ 탄생




태내 생식이 아닌 체외수정인 신세계의 배양법 기술은 오늘날 ‘시험관 아기’란 이름으로 이미 시행되고 있다. 1978년 영국의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는 세계 최초로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에드워즈 박사는 이에 대한 공로로 201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물론 신세계의 배양법은 계획경제에 따라 철저히 인구를 통제하기 위한 전체주의 사회의 도구이지만 현대의 ‘시험관 아기’ 기술은 불임부부를 위한 축복이라는 점에서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배양법의 알파계급 아기와 같은 똑똑하면서 건강한 신체의 아기들이 태어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태어날 아이가 정상아인지 기형아인지 어떤 유전적 질병을 갖고 있는지 등을 알아보는 이른바 ‘산전검사’는 선의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알파 아기 탄생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
알파 아기를 가능케 하는 기본기술은 유전자 해독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되면서 인간의 게놈 전체를 분석하는 게노믹스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게노믹스의 핵심은 개개인별로 유전자 전체를 해독해 어떤 유전적 정보를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피 한 방울로 개인의 유전정보 전체를 해독할 수 있는 게노믹스는 유전자 정보를 근거로 암의 발병 가능성 또는 치명적 유전적 질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개개인별 ‘맞춤의학’을 앞당기고 있다.
한편으론 유전자 분석 기술은 유전적으로 뛰어난 유전자와 그렇지 못한 유전자에 대한 정보를 구축함으로써 이른바 ‘유전자 계급 사회’의 도래를 촉진하는 역기능도 내포하고 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Human Future, 부자의 유전자 가난한 자의 유전자’에서 “생명공학 기술이 상업화되면 부잣집 아이들의 지식과 권력 독점은 반영구화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후쿠야마, 부자-가난뱅이 유전자 갈리는 유전계급 사회 예측



그는 “이에 따라 부자 유전자와 가난뱅이 유전자 질서가 고착화 될 것이고 사회는 반자유주의 체제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후쿠야마는 또한 “부유층이 자신들이 갖게 될 아이를 최상의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착상 전에 정기적으로 배아를 선별할 것”이라고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견했다.
젊은이들의 사회적 배경을 그들의 외모와 지능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며 사회적 기대에 부응치 못하는 젊은이들은 자기 자신을 원망하는 대신 부모들의 잘못된 유전자 선택을 비난할 것이라는 얘기다.
신세계를 지탱하는 또 다른 기술인 ‘소마’는 사회 안정을 위한 일종의 정신의약물이다. 소마를 복용한 신세계의 인간들은 행복감을 느끼며 어떠한 폭력도 행사하지 않는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정신병을 뇌의 생물학적 작용을 벗어난 정신적 장애의 결과로 봤다. 프로이트주의는 조울증이나 정신분열증 등 정신병은 본질적으로 심리적 원인에 있다고 전제한다. 이에 기반한 ‘프로이트적 대화 요법’은 이후 신경약리학의 발달로 점차 사라지게 된다. 신경약리학은 ‘프로작’이나 ‘리탈린’과 같은 약물의 등장으로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21세기의 ‘소마’, 정신의약물



프로작은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로 신경 시냅스에서 세로토닌이 재흡수되는 것을 막아 노에서 세로토닌 수준을 효과적으로 증가시킨다. 세로토닌은 신경전달물질의 하나로 세로토닌 수준이 낮으면 우울증, 공격적 성향 자살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리탈린은 프로작과 다르게 일종의 사회통제를 위한 약으로 1960년대 이른바 ‘스피드(speed)’로 알려진 마약인 메탐페타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흥분제이다.
리탈린은 중추신경계 흥분제로 주의 지속시간이 증가하고 황홀한 감각이 생성되며 단기적 에너지 수준을 향상시켜 집중력을 높인다. 리탈린은 교실에 차분히 앉아 있지 못하는 아동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증후군을 치료하는데 사용된다.
물론 프로작과 리탈린과 같은 약물이 다른 방법으로는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생물학적 조건으로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는 심각한 우울증이나 과도한 과잉행동 장애를 겪는 많은 사람들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