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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을 마주한 케냐의 작은 해안 마을 키피니(Kipini)는 지구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이 가져오는 재앙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다. 한때 관광객들에게 ‘천국’이라고도 불렸던 이 마을은 이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키피니의 이야기는 기후 변화가 단순히 음모론이나 미래의 위협이 아닌 현재 진행형인 ‘현실’임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키피니 마을의 운명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타나 로지 호텔(Tana Lodge Hotel)이다. 이탈리아 사업가 로베르토 마크리(Roberto Macri)가 인도양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 건설한 이 호텔은 한때 키피니의 자랑이었다. 타나 로지 호텔은 실제로 약 20년 동안 번창했다. 화창한 날씨와 해변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왔고, 호텔은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9개의 고급 객실은 아프리카의 태양 아래 휴양을 꿈꾸는 이들에게 완벽한 안식처였다.
그러나 2014년,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불과 5년 만에 호텔 객실을 하나씩 삼켰고, 2019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객실마저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며 타나 로지 호텔은 역사 속 이야기로 남게 되었다. 호텔의 전 지배인 조셉 가창고(Joseph Gachango)는 “호텔과 호텔이 제공했던 일자리가 모두 사라진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며, 단순히 한 사업체의 몰락을 넘어, 지역 사회 전체의 상실감을 표현했다.
타나 로지 호텔의 운명은 키피니 마을 전체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호텔보다 더 안쪽에 있는 마을 주민들은 이제 호텔의 운명과 같은 위협에 직면해 있다. 매일 바다는 조금씩 더 육지로 전진해 오고 있으며, 주민들의 집은 점점 더 위협을 받고 있다.
이미 여러 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정확한 숫자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상당수의 주민이 상승하는 해수면, 강한 바람, 그리고 거센 조류에 휩쓸려 실종된 상태다. 이는 단순한 통계 숫자가 아닌, 실제 인명 피해를 나타내는 충격적인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한 주민은 “언제 바다가 우리 집을 삼킬지 모르니 마을 주민들은 매일 밤 두려움 속에서 잠들고 깨어난다”고 두려움을 표하며 키피니 주민들이 겪고 있는 일상적인 공포와 불안을 생생하게 전했다.
키피니가 직면한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해안선을 따라 형성되어 있던 맹그로브 숲의 소실이다. 맹그로브 숲은 해안 침식으로부터 주요 방어선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 숲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맹그로브 숲 소실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지역 주민들에 의한 무분별한 벌목이다. 연료와 건축 자재로 사용하기 위해 맹그로브 숲의 나무들이 무분별하게 베어졌기 때문이다. 둘째,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맹그로브 숲의 나무들이 물에 잠기고 있다.
맹그로브 숲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맹그로브 숲은 탄소를 저장하는 능력이 뛰어나 기후 변화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다양한 해양 생물의 서식지이자 산란지로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즉, 이 숲은 단순히 해안 침식을 막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해수면 상승은 키피니 주민들의 삶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담수의 부족이다. 마을의 우물과 시추공이 염분화되면서 신선한 물을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주민들이 집 근처에서 쉽게 물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물을 찾아 몇 킬로미터씩 걸어가야 한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생존의 문제다.
농업 또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지하수의 염분 증가로 인해 작물 재배가 거의 불가능해져 한때 이 지역의 주요 생계 수단이었던 농업이 이제는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어업도 예외는 아니다. 주민들의 중요한 수입원이었던 게와 새우가 이제는 거의 잡히지 않는다. 이들의 주요 서식지이자 번식지인 맹그로브 습지가 사라지면서 어족 자원도 함께 고갈되고 있는 것이다.
한 어부는 “예전에는 하루 조업으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며칠을 나가도 제대로 된 어획량을 올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는 키피니 주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케이스이다.
물론 키피니에 닥친 재앙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방 정부는 72km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방파제를 건설하여 바다의 추가적인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자금 부족으로 인해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케냐와 같은 개발도상국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영향에 가장 취약하면서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자원이 가장 부족한 딜레마에 처해 있다.
더욱이 일부 기후 전문가들은 방파제 건설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방파제 건설은 ‘기계적 해결책’에 불과하다고 경고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맹그로브 숲 복원과 같은 자연 기반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맹그로브 숲의 복원, 지속 가능한 어업, 대체 생계 수단의 개발 등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지역 사회가 기후 변화에 적응하고 더 강한 회복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키피니 주민들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다. 마을 주민의 다수는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경우 3년 내에 키피니 전체가 바다에 삼켜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는 과장된 공포가 아니다. 그들이 매일 목격하고 있는 현실에 기반한 절박한 외침이다.
이처럼 한때 번영했던 이 해안 마을이 이제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기후 변화의 영향은 이제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키피니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 키피니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마을의 비극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의 축소판이자, 우리 모두가 직면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6억 8천만 명의 사람들이 해수면 상승의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저지대 해안 지역에 살고 있다. 키피니와 같은 상황이 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될 수 있다는 뜻과도 같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키피니의 사례는 기후 변화가 이미 현재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는 전 세계가 직면한 도전 과제이며, 즉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국제 사회는 기후 변화의 영향을 완화하고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처럼 기후 변화는 국경을 초월한 문제이기에 국제 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들이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안정과 번영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다.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은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기후 변화의 영향을 이미 받고 있는 지역 사회를 지원하고, 그들이 더 강한 회복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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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민재 리포터 |
원문 | 사이언스타임즈 |
출처 | https://www.sciencetimes.co.kr/?p=258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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