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940∼1960년의 충남지역 혼례문화를 연구하였고. 충남지역의 혼례문화를 연구하기 위하여 당시의 혼인제도, 혼례절차, 혼례복식, 혼례음식을 알아보았다.
혼례문화연구는 문헌 연구, 설문지 조사 연구, 면접 조사 연구로 나눌 수 있는데 혼례 문화의 연구에서 중요한 면접 조사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혼례문화 변천 연구를 위한 면접 조사 연구 대상자로 가장 의미가 있는 연령은 70∼90세 정도이다. 그 연령에 해당하는 연구 대상자들이 연령이 높아 시간이 갈수록 점차 수가 줄어들면서 그들이 혼인한 당시의 역사적인 ...
본 논문은 1940∼1960년의 충남지역 혼례문화를 연구하였고. 충남지역의 혼례문화를 연구하기 위하여 당시의 혼인제도, 혼례절차, 혼례복식, 혼례음식을 알아보았다.
혼례문화연구는 문헌 연구, 설문지 조사 연구, 면접 조사 연구로 나눌 수 있는데 혼례 문화의 연구에서 중요한 면접 조사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혼례문화 변천 연구를 위한 면접 조사 연구 대상자로 가장 의미가 있는 연령은 70∼90세 정도이다. 그 연령에 해당하는 연구 대상자들이 연령이 높아 시간이 갈수록 점차 수가 줄어들면서 그들이 혼인한 당시의 역사적인 혼례문화 자료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연령의 연구 대상자들이 혼인한 시기가 평균적으로 1940∼1960년이었으므로 본 논문은 1940∼1960년의 혼례문화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연구 대상 지역은 ‘예학의 고장’, ‘양반의 고장’이라고 일컫는 충남지역으로 선정하여 예학이 발달한 지역에서 서구문화의 유입이 심했던 1940∼1960년에 혼례문화에 있어서 서구문화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 알아보았다.
충남지역 16개 시 · 군에서 혼인한 현재 평균연령이 70∼90세인 기혼남녀 30명을 연구 대상자로 선정하여 면접 조사자가 면접 대상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며 질문지를 통한 질문과 답을 녹취하였고 증언 자료를 사진 촬영하였다. 이러한 면접 조사 연구는 혼례문화 변천을 연구하는데 기초자료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1940∼1960년의 충남지역 혼례문화의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충남지역 혼인제도는 일제 말기 때 가장 심하게 조혼현상이 나타났으며 통혼권은 교통수단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교통수단이 많이 발달되지 않아 주로 통혼권이 짧은 도내 혼과 군내 혼이었다. 혼인유형은 모든 면접자가 중매 혼이었고 일반적으로 혼인하면 신랑과 신부가 신랑집에 들어가 사는 부거제였다.
둘째, 충남지역의 혼례절차에서는 혼례형태가 일반적으로 전통혼례였다. 모든 면접 대상자가 전통혼례로 예식을 행하였으며 예식 시간은 오전 10시와 11시가 많았다. 충남지역에서는 친영이나 반친영과 다르게 일반적으로 당일 우귀를 행하거나 2일 우귀 후 재행을 행하였다. 친영에서는 우귀 후 신랑 집에서 예식을 행하고 재행은 없으며 반친영은 신부집에서 예식 후 재행을 행하고 우귀를 행하였다면 당시에는 신부의 집에서 예식을 행하고 당일이나 삼일 안에 우귀를 행하였다가 다시 삼일 만에 재행을 행하였다. 이처럼 혼례절차에서 예식, 우귀, 재행의 순서가 크게 중요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의 혼례절차가 친영도 반친영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고조선전통혼례와 중국전통혼례의 문화접변현상의 결과라고 본다.
셋째, 충남지역의 혼례복식은 혼례복과 현구고례복으로 신랑은 남색 단령에 사모관대를 착용하였고 신부는 녹원삼과 홍원삼을 비슷한 비율로 입었으며 머리에 족두리를 착용하였다. 대부분 혼례복과 현구고례복은 개인 것이 아닌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옷을 입었다. 단 개인적인 원삼을 입은 경우는 그 원삼을 세 번 돌려 입고 수의로 입으면 좋다는 풍습 때문에 집안 어른의 수의로 쓸 원삼을 입기도 하였다. 대부분 혼수는 신부가 입을 옷만 하였고 살림이 어려워서 혼수나 예단이 생략된 경우도 많았다.
넷째, 충남지역의 혼례상에는 청실홍실, 초, 삼색실과(밤, 대추, 곶감), 닭, 곡류 한 두 가지가 올려졌다. 혼례상에 올려진 곡류는 쌀, 콩, 팥, 달떡, 용떡, 국수, 시루떡 등이었다. 혼례 잔치에서 하객에 대접하는 음식은 일반적으로 잘 살면 떡국이고 보통은 국수를 많이 대접했고 살림이 어려운 집은 콩나물국과 밥을 대접했다. 혼례 시 큰상을 받은 면접자가 적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 신랑과 신부에게 큰상을 해주었다. 현구고례 음식은 일반적으로 닭과 술이었고 근친 때는 일반적으로 인절미와 절편 그리고 엿을 가지고 신부가 친정에 다니러갔는데 시댁의 살림이 어려우면 이바지음식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1940∼1960년의 충남지역 혼례문화 특징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서구문화의 유입이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면접 대상자 중에는 신식혼례로 예식을 행한 사람이 전혀 없었다. 1940∼1960년의 충남지역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혼례절차나 혼례음식 등이 간소화 되었지만 예학의 고장이며 양반의 고장이라는 특성 때문에 전통혼례문화가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1940∼1960년의 충남지역 혼례문화를 연구하였고. 충남지역의 혼례문화를 연구하기 위하여 당시의 혼인제도, 혼례절차, 혼례복식, 혼례음식을 알아보았다.
혼례문화연구는 문헌 연구, 설문지 조사 연구, 면접 조사 연구로 나눌 수 있는데 혼례 문화의 연구에서 중요한 면접 조사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혼례문화 변천 연구를 위한 면접 조사 연구 대상자로 가장 의미가 있는 연령은 70∼90세 정도이다. 그 연령에 해당하는 연구 대상자들이 연령이 높아 시간이 갈수록 점차 수가 줄어들면서 그들이 혼인한 당시의 역사적인 혼례문화 자료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연령의 연구 대상자들이 혼인한 시기가 평균적으로 1940∼1960년이었으므로 본 논문은 1940∼1960년의 혼례문화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연구 대상 지역은 ‘예학의 고장’, ‘양반의 고장’이라고 일컫는 충남지역으로 선정하여 예학이 발달한 지역에서 서구문화의 유입이 심했던 1940∼1960년에 혼례문화에 있어서 서구문화의 영향을 얼마나 받았는지 알아보았다.
충남지역 16개 시 · 군에서 혼인한 현재 평균연령이 70∼90세인 기혼남녀 30명을 연구 대상자로 선정하여 면접 조사자가 면접 대상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며 질문지를 통한 질문과 답을 녹취하였고 증언 자료를 사진 촬영하였다. 이러한 면접 조사 연구는 혼례문화 변천을 연구하는데 기초자료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1940∼1960년의 충남지역 혼례문화의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충남지역 혼인제도는 일제 말기 때 가장 심하게 조혼현상이 나타났으며 통혼권은 교통수단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교통수단이 많이 발달되지 않아 주로 통혼권이 짧은 도내 혼과 군내 혼이었다. 혼인유형은 모든 면접자가 중매 혼이었고 일반적으로 혼인하면 신랑과 신부가 신랑집에 들어가 사는 부거제였다.
둘째, 충남지역의 혼례절차에서는 혼례형태가 일반적으로 전통혼례였다. 모든 면접 대상자가 전통혼례로 예식을 행하였으며 예식 시간은 오전 10시와 11시가 많았다. 충남지역에서는 친영이나 반친영과 다르게 일반적으로 당일 우귀를 행하거나 2일 우귀 후 재행을 행하였다. 친영에서는 우귀 후 신랑 집에서 예식을 행하고 재행은 없으며 반친영은 신부집에서 예식 후 재행을 행하고 우귀를 행하였다면 당시에는 신부의 집에서 예식을 행하고 당일이나 삼일 안에 우귀를 행하였다가 다시 삼일 만에 재행을 행하였다. 이처럼 혼례절차에서 예식, 우귀, 재행의 순서가 크게 중요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의 혼례절차가 친영도 반친영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고조선전통혼례와 중국전통혼례의 문화접변현상의 결과라고 본다.
셋째, 충남지역의 혼례복식은 혼례복과 현구고례복으로 신랑은 남색 단령에 사모관대를 착용하였고 신부는 녹원삼과 홍원삼을 비슷한 비율로 입었으며 머리에 족두리를 착용하였다. 대부분 혼례복과 현구고례복은 개인 것이 아닌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옷을 입었다. 단 개인적인 원삼을 입은 경우는 그 원삼을 세 번 돌려 입고 수의로 입으면 좋다는 풍습 때문에 집안 어른의 수의로 쓸 원삼을 입기도 하였다. 대부분 혼수는 신부가 입을 옷만 하였고 살림이 어려워서 혼수나 예단이 생략된 경우도 많았다.
넷째, 충남지역의 혼례상에는 청실홍실, 초, 삼색실과(밤, 대추, 곶감), 닭, 곡류 한 두 가지가 올려졌다. 혼례상에 올려진 곡류는 쌀, 콩, 팥, 달떡, 용떡, 국수, 시루떡 등이었다. 혼례 잔치에서 하객에 대접하는 음식은 일반적으로 잘 살면 떡국이고 보통은 국수를 많이 대접했고 살림이 어려운 집은 콩나물국과 밥을 대접했다. 혼례 시 큰상을 받은 면접자가 적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 신랑과 신부에게 큰상을 해주었다. 현구고례 음식은 일반적으로 닭과 술이었고 근친 때는 일반적으로 인절미와 절편 그리고 엿을 가지고 신부가 친정에 다니러갔는데 시댁의 살림이 어려우면 이바지음식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1940∼1960년의 충남지역 혼례문화 특징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서구문화의 유입이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면접 대상자 중에는 신식혼례로 예식을 행한 사람이 전혀 없었다. 1940∼1960년의 충남지역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혼례절차나 혼례음식 등이 간소화 되었지만 예학의 고장이며 양반의 고장이라는 특성 때문에 전통혼례문화가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thesis is about the wedding culture of the South of Chungcheong province from the 1940s to the 1960s and studied the system, the process, the costume and the food of the wedding in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of the time.
The study of wedding culture consists of bibliographic reference, que...
This thesis is about the wedding culture of the South of Chungcheong province from the 1940s to the 1960s and studied the system, the process, the costume and the food of the wedding in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of the time.
The study of wedding culture consists of bibliographic reference, questionnaire research and interview but often lacks the interviews, which are the most important part in these studies.
To study the changes of the wedding culture, the most desirable interviewees are those who are in their 70s to 90s. It’s because they are too old, as time goes by, we are losing them, at the same time, we also lose the precious data about the wedding culture in the times when they got married. Most of them got married around from the 1940s to the 1960s.. So we studied the marriage in those times. In particular, the fact that the region,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is well-known as the area of the manners or “Yangban” helps understand how the western culture put effect on the wedding culture of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from the 1940s to the 1960s, when lots of western culture was introduced extremely.
The thirty interviewees from the sixteen cities and towns of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got married at the region, and are in their 70s to 90s. The interviewer met them in person, conducting both interviewing and recording, questionnaire research as well. The pictures of the related data were taken too. I believe these interviews really serve as the fundamental data for the following studies on the changes of the wedding culture.
The following is the result of the study on the wedding of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First of all, during the late period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re were the most early marriages. Because intermarriage is closely connected to the development of the transportation, most got married within the provinces or towns. The interviewees got married through matchmakers, and generally started to live together in the house of the groom after marriage.
Secondly, when it comes to the process of the wedding, the traditional Korean wedding was general. Every interviewee married in the traditional wedding, which was almost held from 10 to 11 in the morning. In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contrary to the Chinyoung and Banchinyoung, Woogee was held on the very day or on the second day, Jaehang after Woogee.
In the system of Chinyoung, the wedding was held in the house of the groom after Woogee, and there’s no Jaehang. In Banchinyoung, the wedding was held in the house of the bride, and there’s Woogee after Jaehang. But in those days, the wedding was held in the house of the bride and there’s Woogee at the very day or within three days, and the next three days there’s Jaehang.
It means that the order of the ceremony, Woogee and Jaehang was quite important, suggesting it was neither Chinyoung nor Banchinyoung. It was the result of the cultural fusion between the ancient Choseon traditional wedding originated from the Choseon dynasty and the Chinese traditional wedding.
Thirdly, as to the wedding costume of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the groom put on the specific cap hemmed in navy and the special coat and the bride put on the ceremonial cap and the green or red dress. These costumes are not individual but managed by the community.
But there were a few who wore the personal costume, which was resulted from the custom that it’s good that the dress is used as the shroud after three wearing. They all were poor back then, so there were few brides who could afford the Yedan for the relatives.
Fourthly, concerning the wedding table, a couple of things were arranged on the table among the blue and red thread, candles, three different color fruit such as chestnuts, jujubes and dried persimmons, chicken and cereals. The representative cereals were rice, beans, adzuki beans, some kinds of rice cake and noddle. Food served for the wedding guest was rice-cake soup if wealthy, noodle if normal, and the rice with bean sprout soup if poor. Few interviewees were treated with the great wedding table. After wedding, the bride gave a visit to their parents with the chicken and alcohol if wealthy, but most brides visited their parents either with rice-cake and taffy or none if not economically affordable.
Lastly, the characteristic of the wedding of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from the 1940s to the 1960s was that no western weddings were held even though the western culture was introduced greatly due to the Korean war and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from the 1940s and the 1960s suffered from the economic difficulties because of the Korean war and the Japanese colonial rule, leading simplified wedding food and process. But the traditional wedding culture was kept in this region which is known as the region of manners.
This thesis is about the wedding culture of the South of Chungcheong province from the 1940s to the 1960s and studied the system, the process, the costume and the food of the wedding in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of the time.
The study of wedding culture consists of bibliographic reference, questionnaire research and interview but often lacks the interviews, which are the most important part in these studies.
To study the changes of the wedding culture, the most desirable interviewees are those who are in their 70s to 90s. It’s because they are too old, as time goes by, we are losing them, at the same time, we also lose the precious data about the wedding culture in the times when they got married. Most of them got married around from the 1940s to the 1960s.. So we studied the marriage in those times. In particular, the fact that the region,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is well-known as the area of the manners or “Yangban” helps understand how the western culture put effect on the wedding culture of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from the 1940s to the 1960s, when lots of western culture was introduced extremely.
The thirty interviewees from the sixteen cities and towns of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got married at the region, and are in their 70s to 90s. The interviewer met them in person, conducting both interviewing and recording, questionnaire research as well. The pictures of the related data were taken too. I believe these interviews really serve as the fundamental data for the following studies on the changes of the wedding culture.
The following is the result of the study on the wedding of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First of all, during the late period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re were the most early marriages. Because intermarriage is closely connected to the development of the transportation, most got married within the provinces or towns. The interviewees got married through matchmakers, and generally started to live together in the house of the groom after marriage.
Secondly, when it comes to the process of the wedding, the traditional Korean wedding was general. Every interviewee married in the traditional wedding, which was almost held from 10 to 11 in the morning. In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contrary to the Chinyoung and Banchinyoung, Woogee was held on the very day or on the second day, Jaehang after Woogee.
In the system of Chinyoung, the wedding was held in the house of the groom after Woogee, and there’s no Jaehang. In Banchinyoung, the wedding was held in the house of the bride, and there’s Woogee after Jaehang. But in those days, the wedding was held in the house of the bride and there’s Woogee at the very day or within three days, and the next three days there’s Jaehang.
It means that the order of the ceremony, Woogee and Jaehang was quite important, suggesting it was neither Chinyoung nor Banchinyoung. It was the result of the cultural fusion between the ancient Choseon traditional wedding originated from the Choseon dynasty and the Chinese traditional wedding.
Thirdly, as to the wedding costume of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the groom put on the specific cap hemmed in navy and the special coat and the bride put on the ceremonial cap and the green or red dress. These costumes are not individual but managed by the community.
But there were a few who wore the personal costume, which was resulted from the custom that it’s good that the dress is used as the shroud after three wearing. They all were poor back then, so there were few brides who could afford the Yedan for the relatives.
Fourthly, concerning the wedding table, a couple of things were arranged on the table among the blue and red thread, candles, three different color fruit such as chestnuts, jujubes and dried persimmons, chicken and cereals. The representative cereals were rice, beans, adzuki beans, some kinds of rice cake and noddle. Food served for the wedding guest was rice-cake soup if wealthy, noodle if normal, and the rice with bean sprout soup if poor. Few interviewees were treated with the great wedding table. After wedding, the bride gave a visit to their parents with the chicken and alcohol if wealthy, but most brides visited their parents either with rice-cake and taffy or none if not economically affordable.
Lastly, the characteristic of the wedding of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from the 1940s to the 1960s was that no western weddings were held even though the western culture was introduced greatly due to the Korean war and the Japanese colonial rule.
The South Chungcheong province from the 1940s and the 1960s suffered from the economic difficulties because of the Korean war and the Japanese colonial rule, leading simplified wedding food and process. But the traditional wedding culture was kept in this region which is known as the region of man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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