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論文에서는 수륙재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의 비중이 유동성을 갖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의례의 기능은 설행목적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행목적은 의례의 형식과 내용에 영향을 미치고, 의례의 형식과 내용은 결국 의례의 기능과 연결된다. 따라서 수륙의례문의 내용과 수륙도량의 형식에 대한 입체적 분석을 통해 한국 수륙재의 특징과 변화를 고찰하였다. 먼저 2장에서 조선시대 간행된 수륙의례서를 조사하여 유형별로 분류하고 간행실태를 파악하였다. 그 결과 의례문으로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그리고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가 가장 활발하게 간행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의례집으로 『천지명양수륙잡문』과 『천지명양수륙재의소방문첩절요』의 간행도 파악하였다. 『천지명양수륙잡문』이 단행본 형태를 보이고 있는 반면, 『천지명양수륙재의소방문첩절요』는 의례문에 부록의 형식으로 합본되어 간행된 모습이 대세를 보이며 차이를 보였다. 드문 사례로 『불설구면연염구경천지명양수륙재의문』도 간행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폭을 넓혀 불교의례의 종합적 성격을 지니기는 하였으나 ‘결수문’과 ‘지반문’ 등 수륙의례문을 싣고 있는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의 간행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18세기 들어 의례서의 간행이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간행자료에 붙어 있는 서문과 발문을 통해 18세기에 불교의례가 혼란을 겪으며 변화하였을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다음 3장에서는 2장을 통해 가장 널리 유통된 것으로 확인된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를 비교 분석하였다. 그 결과 구조와 내용, 그리고 의례에 수반되는 의식에서 차이를 확인하였다. 구조적 측면에서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가 ‘소청의례’와 ‘공양의례’에서 유사성을 보이고 있으나 ‘목욕의례’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와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가 유사성을 보인다. 그리고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의 ‘도량건립’과 ‘소청공양’의 의식이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나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와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4장에서는 수륙재의 설행 요소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수륙재의 설행이 정해지면 먼저 의례가 진행될 도량을 선정한다. 도량선정에 있어 물가[水邊]가 선호되었는데 처음에는 교학적인 근거가 반영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점차 설행목적이 더 큰 비중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도량이 선정되면 수륙재의 성격과 규모를 반영하여 설단이 이루어진다. 한국 수륙재의 설단양식은 상단․중단․하단의 삼단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수륙도량을 구성하는 각 단을 설치하는 설단이 완성되면, 각 단에 따라 의례의 대상이 표현된 위목이 배설된다. 그리고 각단의 의례와 관련된 내용의 번이 위계에 따라 배치된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절차에 따라 각 단에서 의례가 진행된다. 의례가 설행되는 시간은 단의 성격과 관련된다. 설행시간과 관련하여 『유가집요구아난다라니염구의궤경』에서는 불보살을 대상으로 하는 의례는 오전 3시에서 5시 사이에 행하고, 아귀를 대상으로 하는 의례는 오후 9시에서 11시 사이에 행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한편 『시식통람』에 수록된 「시식법」과 『법원주림』에서는 “아침은 하늘이 먹을 때요, 낮은 법답게 먹을 때이며, 저녁은 짐승이 먹을 때요, 밤은 귀신이 먹을 때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에서는 사자단, 오로단, 상단, 중단, 하단의 의례가 모두 밤에 설행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의례문과 같은 내용을 각종 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소문에서도 보여주고 있어 소의경전과 의례집, 그리고 의례문이 차이를 보인다. 한편 조선시대 설행된 수륙재의 절차는 설행기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삼주야에 걸쳐 설행되는 절차의 공통점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수륙재의 의례는 풍백우사단에서 시작된다. 둘째, 오전에 ‘영산작법’, 오후에 ‘예수작법’, 저녁에는 ‘분수작법’, 밤에 ‘상주작법’과 ‘시식’이 설행된다. 셋째, 첫째와 둘째 과정을 마치고 ‘자기문’ 또는 ‘지반문’으로 수륙의례가 진행된다. 이러한 특징 가운데 풍백우사단으로부터 시작되는 점은 오주야와 칠주야의 절차에서도 공통성을 보인다. 그리고 칠주야로 설행되는 절차의 특징으로 『법화경』 독송이 중심이 되는 ‘영산작법’이 주가 되는 점을 꼽을 수 있다. 5장에서는 오늘날 설행되고 있는 수륙재를 현지 조사하여 한국 수륙재의 설행양상을 고찰하였다. 그 대상은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에 위치한 삼화사, 서울 은평구 북한산에 위치한 진관사,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무학산에 위치한 백운사에서 2013년 10월에 설행된 수륙재로 하였다. 논의의 범주로는 수륙도량을 갖추는 설단양식을 분석하고, 절차와 그에 따른 의례문을 비교하였다. 설단양식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삼화사는 17단 7소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의례문과 궤를 맞추어 위목과 번이 배치되고 있다. 하단의 위패는 삼화사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의 전란과 관련한 내용과 삼화사 수륙재의 시원, 삼화사의 창건, 삼화사가 위치한 지역적 특성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진관사는 7단 5소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금강정유가삼십칠존출생의』에 근거한 번이 배치되고 있다. 하단의 위패는 조선 태조의 위패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 ...
본 論文에서는 수륙재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의 비중이 유동성을 갖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의례의 기능은 설행목적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행목적은 의례의 형식과 내용에 영향을 미치고, 의례의 형식과 내용은 결국 의례의 기능과 연결된다. 따라서 수륙의례문의 내용과 수륙도량의 형식에 대한 입체적 분석을 통해 한국 수륙재의 특징과 변화를 고찰하였다. 먼저 2장에서 조선시대 간행된 수륙의례서를 조사하여 유형별로 분류하고 간행실태를 파악하였다. 그 결과 의례문으로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그리고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가 가장 활발하게 간행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의례집으로 『천지명양수륙잡문』과 『천지명양수륙재의소방문첩절요』의 간행도 파악하였다. 『천지명양수륙잡문』이 단행본 형태를 보이고 있는 반면, 『천지명양수륙재의소방문첩절요』는 의례문에 부록의 형식으로 합본되어 간행된 모습이 대세를 보이며 차이를 보였다. 드문 사례로 『불설구면연염구경천지명양수륙재의문』도 간행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폭을 넓혀 불교의례의 종합적 성격을 지니기는 하였으나 ‘결수문’과 ‘지반문’ 등 수륙의례문을 싣고 있는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의 간행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18세기 들어 의례서의 간행이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간행자료에 붙어 있는 서문과 발문을 통해 18세기에 불교의례가 혼란을 겪으며 변화하였을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다음 3장에서는 2장을 통해 가장 널리 유통된 것으로 확인된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를 비교 분석하였다. 그 결과 구조와 내용, 그리고 의례에 수반되는 의식에서 차이를 확인하였다. 구조적 측면에서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가 ‘소청의례’와 ‘공양의례’에서 유사성을 보이고 있으나 ‘목욕의례’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와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가 유사성을 보인다. 그리고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의 ‘도량건립’과 ‘소청공양’의 의식이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나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와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4장에서는 수륙재의 설행 요소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수륙재의 설행이 정해지면 먼저 의례가 진행될 도량을 선정한다. 도량선정에 있어 물가[水邊]가 선호되었는데 처음에는 교학적인 근거가 반영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점차 설행목적이 더 큰 비중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도량이 선정되면 수륙재의 성격과 규모를 반영하여 설단이 이루어진다. 한국 수륙재의 설단양식은 상단․중단․하단의 삼단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수륙도량을 구성하는 각 단을 설치하는 설단이 완성되면, 각 단에 따라 의례의 대상이 표현된 위목이 배설된다. 그리고 각단의 의례와 관련된 내용의 번이 위계에 따라 배치된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절차에 따라 각 단에서 의례가 진행된다. 의례가 설행되는 시간은 단의 성격과 관련된다. 설행시간과 관련하여 『유가집요구아난다라니염구의궤경』에서는 불보살을 대상으로 하는 의례는 오전 3시에서 5시 사이에 행하고, 아귀를 대상으로 하는 의례는 오후 9시에서 11시 사이에 행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한편 『시식통람』에 수록된 「시식법」과 『법원주림』에서는 “아침은 하늘이 먹을 때요, 낮은 법답게 먹을 때이며, 저녁은 짐승이 먹을 때요, 밤은 귀신이 먹을 때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에서는 사자단, 오로단, 상단, 중단, 하단의 의례가 모두 밤에 설행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의례문과 같은 내용을 각종 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소문에서도 보여주고 있어 소의경전과 의례집, 그리고 의례문이 차이를 보인다. 한편 조선시대 설행된 수륙재의 절차는 설행기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삼주야에 걸쳐 설행되는 절차의 공통점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수륙재의 의례는 풍백우사단에서 시작된다. 둘째, 오전에 ‘영산작법’, 오후에 ‘예수작법’, 저녁에는 ‘분수작법’, 밤에 ‘상주작법’과 ‘시식’이 설행된다. 셋째, 첫째와 둘째 과정을 마치고 ‘자기문’ 또는 ‘지반문’으로 수륙의례가 진행된다. 이러한 특징 가운데 풍백우사단으로부터 시작되는 점은 오주야와 칠주야의 절차에서도 공통성을 보인다. 그리고 칠주야로 설행되는 절차의 특징으로 『법화경』 독송이 중심이 되는 ‘영산작법’이 주가 되는 점을 꼽을 수 있다. 5장에서는 오늘날 설행되고 있는 수륙재를 현지 조사하여 한국 수륙재의 설행양상을 고찰하였다. 그 대상은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에 위치한 삼화사, 서울 은평구 북한산에 위치한 진관사,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무학산에 위치한 백운사에서 2013년 10월에 설행된 수륙재로 하였다. 논의의 범주로는 수륙도량을 갖추는 설단양식을 분석하고, 절차와 그에 따른 의례문을 비교하였다. 설단양식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삼화사는 17단 7소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의례문과 궤를 맞추어 위목과 번이 배치되고 있다. 하단의 위패는 삼화사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의 전란과 관련한 내용과 삼화사 수륙재의 시원, 삼화사의 창건, 삼화사가 위치한 지역적 특성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진관사는 7단 5소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금강정유가삼십칠존출생의』에 근거한 번이 배치되고 있다. 하단의 위패는 조선 태조의 위패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 현종이 진관대사를 위해 진관사를 창건한 역사와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백운사의 설단형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설단과, 야외에 괘불을 중심으로 하는 설단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전체적인 설단양식을 8단 5소의 형태로 보았다. 각 단에는 번이 위계의 차서에 따라 좌측에서 우측으로 우요되는 원리와 동남중서북으로 순환하는 원리에 의해 배치된다. 그러나 진관사와 백운사에서 번의 배치에서는 우요나 순환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아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세 사찰에서 설행되는 절차에 따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삼화사 수륙재의 특징으로는 별의례에서 ‘향행사’와 ‘방생’, ‘헌다례’와 ‘송경’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본의례에서 ‘쇄수의식’과 ‘관욕의식’, 그리고 ‘공양의식’을 들 수 있다. ‘향행사’는 삼화사에서 수륙재를 설행하게 된 연원과 관련하여 국행수륙대재의 위격을 갖추기 위한 의식으로 보인다. ‘방생’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륙재가 설행된 사례를 통해 확인된 ‘방생의식’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108명이 참여하는 ‘헌다례’와 ‘송경’은 다른 사찰의 수륙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의식이다. ‘송경’은 조선시대 수륙재에서 『법화경』이 독송되던 의식과 관련된다. 그런데 삼화사 수륙재의 ‘송경’ 의식에서는 『금강경』이 독송되고 있다. 이는 삼화사가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며, 조계종의 소의경전이 『금강경』인 점을 고려할 때 오늘날 불교계의 환경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본의례에서 특징으로 든 ‘쇄수의식’은 백운사에서도 진행되고 있으나 삼화사의 사례보다는 의례와 의식의 긴밀성이 약하다. 이에 비해 삼화사의 ‘쇄수의식’은 의례와 의식의 연관성이 긴밀하다. 진관사와 백운사에서는 ‘관욕의식’을 하단에서만 설행하고 있는 반면, 삼화사에서는 상단․중단․하단의 3단에서 모두 설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공양의식’에서는 진관사와 백운사에서 ‘소청의식’과 ‘공양의식’이 이원구조로 진행되고 있는 데 비해, 삼화사에서는 ‘소청공양’ 의식이 일원구조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인다. 진관사 수륙재의 특징으로는 별의례 가운데 ‘시련’을 들 수 있다. 진관사의 시련에는 두 개의 연(輦)이 등장한다. 이러한 모습을 삼단시련의 위의를 갖추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하나는 왕실의 선가를 모시기 위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영가를 모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실의 발원에 의해 수륙재를 설행한 역사적 배경과 국행수륙재의 위의를 갖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백운사 수륙재의 특징으로는 사전의식의 ‘입보례’와 별의례의 ‘재시용상방’과 ‘법사이운’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특징에는 백운사 주지이자 수륙재의 어장인 석봉스님이 작법승으로 활동한 이력이 반영되었다. ‘입보례’는 작법승들이 불사가 있는 사찰로부터 청장을 받고 방문하며 설행하던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을 자신이 주석하는 사찰에서도 설행하고 있는 것이다. ‘재시용상방’도 작법승과 깊은 연관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총림이나 선원 등 대중이 모여 수행하는 사찰에서 용상방을 짜고 있다. 이에 비해 ‘재시용상방’은 불사의 하나인 수륙재에서 행해지고 있어 의미를 갖는다. 또한 설법의식에서 법을 설할 설주를 모시는 ‘법사이운’의 전승이 주목된다. 6장에서는 한국 수륙재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한국 수륙재에 대하여 의례문의 계통분류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단형태와 설행절차를 다루다 보니 의례의 전반적인 모습을 밝히는 데 혼란이 야기되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조선시대 간행된 수륙의례문의 계통을 규명하여 한국 수륙재의 형태와 특징을 고찰하였다. 한국 수륙재의 특징은 의례와 절차, 설단의 과정에서 나타난다. 의례의 특징은 ‘공양의식’의 형식과 공양물에서 나타난다. 중국 수륙재에서 상단에 보석이 공양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상단에 음악이 공양되고 있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중국 수륙재의 상단공양이 6공양 형식을 보이고 있는 반면, 한국의 상단공양은 7공양 형식을 보이고 있다.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에서 보이는 7공양 형식은 18세기 『작법귀감』에 와서는 6공양과 ‘사다라니’로 공양하는 형식을 보인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사다라니’로 공양하는 형식으로 정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하단의 공양의례에서 중국은 4여래에 가지하는데 비해, 한국은 5여래에 가지하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설행 절차와 시간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수륙재의 절차는 반드시 풍백우사단으로부터 의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수륙재에서 풍백우사단이 설단되는 사례는 찾을 수 없으며, 의례의 절차에서도 ‘시련’으로 시작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설행시간도 근현대까지 밤 시간에 설행되던 수륙재가 오늘날에는 낮 시간에 설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을 근현대 한국불교의 역사와 관련지어 한국불교를 주도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찾았다. 약 60여 년 동안 의례의 전승에서 열악했던 환경과 사회적 환경의 변화가 맞물려 변형을 부추긴 것으로 해석하였다. 본 논문은 수륙재가 불교의례라는 점에 주목하여 의례적 측면에서 접근하였다. 조선시대 간행된 의례문과 의례집, 의례에 사용된 각종 소문, 고려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설행된 사례를 자료로 하여 ‘한국 수륙재의 의례와 설행양상’을 고찰하여 한국 수륙재의 특징을 밝혔다. 그러나 오늘날 설행되는 수륙재의 절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차후의 연구과제로 남겼다.
본 論文에서는 수륙재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의 비중이 유동성을 갖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의례의 기능은 설행목적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행목적은 의례의 형식과 내용에 영향을 미치고, 의례의 형식과 내용은 결국 의례의 기능과 연결된다. 따라서 수륙의례문의 내용과 수륙도량의 형식에 대한 입체적 분석을 통해 한국 수륙재의 특징과 변화를 고찰하였다. 먼저 2장에서 조선시대 간행된 수륙의례서를 조사하여 유형별로 분류하고 간행실태를 파악하였다. 그 결과 의례문으로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그리고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가 가장 활발하게 간행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의례집으로 『천지명양수륙잡문』과 『천지명양수륙재의소방문첩절요』의 간행도 파악하였다. 『천지명양수륙잡문』이 단행본 형태를 보이고 있는 반면, 『천지명양수륙재의소방문첩절요』는 의례문에 부록의 형식으로 합본되어 간행된 모습이 대세를 보이며 차이를 보였다. 드문 사례로 『불설구면연염구경천지명양수륙재의문』도 간행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폭을 넓혀 불교의례의 종합적 성격을 지니기는 하였으나 ‘결수문’과 ‘지반문’ 등 수륙의례문을 싣고 있는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의 간행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18세기 들어 의례서의 간행이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간행자료에 붙어 있는 서문과 발문을 통해 18세기에 불교의례가 혼란을 겪으며 변화하였을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다음 3장에서는 2장을 통해 가장 널리 유통된 것으로 확인된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를 비교 분석하였다. 그 결과 구조와 내용, 그리고 의례에 수반되는 의식에서 차이를 확인하였다. 구조적 측면에서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가 ‘소청의례’와 ‘공양의례’에서 유사성을 보이고 있으나 ‘목욕의례’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와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가 유사성을 보인다. 그리고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의 ‘도량건립’과 ‘소청공양’의 의식이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나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와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4장에서는 수륙재의 설행 요소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수륙재의 설행이 정해지면 먼저 의례가 진행될 도량을 선정한다. 도량선정에 있어 물가[水邊]가 선호되었는데 처음에는 교학적인 근거가 반영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점차 설행목적이 더 큰 비중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도량이 선정되면 수륙재의 성격과 규모를 반영하여 설단이 이루어진다. 한국 수륙재의 설단양식은 상단․중단․하단의 삼단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수륙도량을 구성하는 각 단을 설치하는 설단이 완성되면, 각 단에 따라 의례의 대상이 표현된 위목이 배설된다. 그리고 각단의 의례와 관련된 내용의 번이 위계에 따라 배치된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절차에 따라 각 단에서 의례가 진행된다. 의례가 설행되는 시간은 단의 성격과 관련된다. 설행시간과 관련하여 『유가집요구아난다라니염구의궤경』에서는 불보살을 대상으로 하는 의례는 오전 3시에서 5시 사이에 행하고, 아귀를 대상으로 하는 의례는 오후 9시에서 11시 사이에 행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한편 『시식통람』에 수록된 「시식법」과 『법원주림』에서는 “아침은 하늘이 먹을 때요, 낮은 법답게 먹을 때이며, 저녁은 짐승이 먹을 때요, 밤은 귀신이 먹을 때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에서는 사자단, 오로단, 상단, 중단, 하단의 의례가 모두 밤에 설행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의례문과 같은 내용을 각종 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소문에서도 보여주고 있어 소의경전과 의례집, 그리고 의례문이 차이를 보인다. 한편 조선시대 설행된 수륙재의 절차는 설행기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삼주야에 걸쳐 설행되는 절차의 공통점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수륙재의 의례는 풍백우사단에서 시작된다. 둘째, 오전에 ‘영산작법’, 오후에 ‘예수작법’, 저녁에는 ‘분수작법’, 밤에 ‘상주작법’과 ‘시식’이 설행된다. 셋째, 첫째와 둘째 과정을 마치고 ‘자기문’ 또는 ‘지반문’으로 수륙의례가 진행된다. 이러한 특징 가운데 풍백우사단으로부터 시작되는 점은 오주야와 칠주야의 절차에서도 공통성을 보인다. 그리고 칠주야로 설행되는 절차의 특징으로 『법화경』 독송이 중심이 되는 ‘영산작법’이 주가 되는 점을 꼽을 수 있다. 5장에서는 오늘날 설행되고 있는 수륙재를 현지 조사하여 한국 수륙재의 설행양상을 고찰하였다. 그 대상은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에 위치한 삼화사, 서울 은평구 북한산에 위치한 진관사,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무학산에 위치한 백운사에서 2013년 10월에 설행된 수륙재로 하였다. 논의의 범주로는 수륙도량을 갖추는 설단양식을 분석하고, 절차와 그에 따른 의례문을 비교하였다. 설단양식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삼화사는 17단 7소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의례문과 궤를 맞추어 위목과 번이 배치되고 있다. 하단의 위패는 삼화사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의 전란과 관련한 내용과 삼화사 수륙재의 시원, 삼화사의 창건, 삼화사가 위치한 지역적 특성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진관사는 7단 5소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금강정유가삼십칠존출생의』에 근거한 번이 배치되고 있다. 하단의 위패는 조선 태조의 위패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 현종이 진관대사를 위해 진관사를 창건한 역사와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백운사의 설단형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설단과, 야외에 괘불을 중심으로 하는 설단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전체적인 설단양식을 8단 5소의 형태로 보았다. 각 단에는 번이 위계의 차서에 따라 좌측에서 우측으로 우요되는 원리와 동남중서북으로 순환하는 원리에 의해 배치된다. 그러나 진관사와 백운사에서 번의 배치에서는 우요나 순환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아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세 사찰에서 설행되는 절차에 따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삼화사 수륙재의 특징으로는 별의례에서 ‘향행사’와 ‘방생’, ‘헌다례’와 ‘송경’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본의례에서 ‘쇄수의식’과 ‘관욕의식’, 그리고 ‘공양의식’을 들 수 있다. ‘향행사’는 삼화사에서 수륙재를 설행하게 된 연원과 관련하여 국행수륙대재의 위격을 갖추기 위한 의식으로 보인다. ‘방생’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륙재가 설행된 사례를 통해 확인된 ‘방생의식’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108명이 참여하는 ‘헌다례’와 ‘송경’은 다른 사찰의 수륙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의식이다. ‘송경’은 조선시대 수륙재에서 『법화경』이 독송되던 의식과 관련된다. 그런데 삼화사 수륙재의 ‘송경’ 의식에서는 『금강경』이 독송되고 있다. 이는 삼화사가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며, 조계종의 소의경전이 『금강경』인 점을 고려할 때 오늘날 불교계의 환경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본의례에서 특징으로 든 ‘쇄수의식’은 백운사에서도 진행되고 있으나 삼화사의 사례보다는 의례와 의식의 긴밀성이 약하다. 이에 비해 삼화사의 ‘쇄수의식’은 의례와 의식의 연관성이 긴밀하다. 진관사와 백운사에서는 ‘관욕의식’을 하단에서만 설행하고 있는 반면, 삼화사에서는 상단․중단․하단의 3단에서 모두 설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공양의식’에서는 진관사와 백운사에서 ‘소청의식’과 ‘공양의식’이 이원구조로 진행되고 있는 데 비해, 삼화사에서는 ‘소청공양’ 의식이 일원구조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인다. 진관사 수륙재의 특징으로는 별의례 가운데 ‘시련’을 들 수 있다. 진관사의 시련에는 두 개의 연(輦)이 등장한다. 이러한 모습을 삼단시련의 위의를 갖추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하나는 왕실의 선가를 모시기 위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영가를 모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왕실의 발원에 의해 수륙재를 설행한 역사적 배경과 국행수륙재의 위의를 갖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백운사 수륙재의 특징으로는 사전의식의 ‘입보례’와 별의례의 ‘재시용상방’과 ‘법사이운’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특징에는 백운사 주지이자 수륙재의 어장인 석봉스님이 작법승으로 활동한 이력이 반영되었다. ‘입보례’는 작법승들이 불사가 있는 사찰로부터 청장을 받고 방문하며 설행하던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을 자신이 주석하는 사찰에서도 설행하고 있는 것이다. ‘재시용상방’도 작법승과 깊은 연관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총림이나 선원 등 대중이 모여 수행하는 사찰에서 용상방을 짜고 있다. 이에 비해 ‘재시용상방’은 불사의 하나인 수륙재에서 행해지고 있어 의미를 갖는다. 또한 설법의식에서 법을 설할 설주를 모시는 ‘법사이운’의 전승이 주목된다. 6장에서는 한국 수륙재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한국 수륙재에 대하여 의례문의 계통분류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단형태와 설행절차를 다루다 보니 의례의 전반적인 모습을 밝히는 데 혼란이 야기되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조선시대 간행된 수륙의례문의 계통을 규명하여 한국 수륙재의 형태와 특징을 고찰하였다. 한국 수륙재의 특징은 의례와 절차, 설단의 과정에서 나타난다. 의례의 특징은 ‘공양의식’의 형식과 공양물에서 나타난다. 중국 수륙재에서 상단에 보석이 공양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상단에 음악이 공양되고 있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중국 수륙재의 상단공양이 6공양 형식을 보이고 있는 반면, 한국의 상단공양은 7공양 형식을 보이고 있다.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에서 보이는 7공양 형식은 18세기 『작법귀감』에 와서는 6공양과 ‘사다라니’로 공양하는 형식을 보인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사다라니’로 공양하는 형식으로 정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하단의 공양의례에서 중국은 4여래에 가지하는데 비해, 한국은 5여래에 가지하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설행 절차와 시간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수륙재의 절차는 반드시 풍백우사단으로부터 의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수륙재에서 풍백우사단이 설단되는 사례는 찾을 수 없으며, 의례의 절차에서도 ‘시련’으로 시작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설행시간도 근현대까지 밤 시간에 설행되던 수륙재가 오늘날에는 낮 시간에 설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을 근현대 한국불교의 역사와 관련지어 한국불교를 주도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찾았다. 약 60여 년 동안 의례의 전승에서 열악했던 환경과 사회적 환경의 변화가 맞물려 변형을 부추긴 것으로 해석하였다. 본 논문은 수륙재가 불교의례라는 점에 주목하여 의례적 측면에서 접근하였다. 조선시대 간행된 의례문과 의례집, 의례에 사용된 각종 소문, 고려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설행된 사례를 자료로 하여 ‘한국 수륙재의 의례와 설행양상’을 고찰하여 한국 수륙재의 특징을 밝혔다. 그러나 오늘날 설행되는 수륙재의 절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차후의 연구과제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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