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칠인정원림(七印亭園林)의 조영특성과 '괴목(槐木)' 식재(植栽)의 문화변용(文化變容)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Design and Acculturation of Planting of 'Guǐ(槐)' in Chirinjeong Wonlim of Pohang원문보기
포항 칠인정원림의 건립취지, 조형의도 그리고 변천과정 등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조 누정 조영의 시대적 감각과 조영의장을 조명하고, 원림내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식재의 문화변용 현상을 살펴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2주의 괴목(槐木) 식재로 인해 쌍괴정(雙槐亭)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은 칠인정(七印亭)은 고려말 관료 출신의 장표(張彪)가 태종9년(1409) 초곡리 사일마을에 건립한 은거형 정자이며, 칠인정원림은 쌍계구곡(雙溪九曲)의 제3곡인 초곡(草谷)의 핵심이기도 하다. 칠인정원림은 사일마을 비보숲 초입의 진입부(進入部)와 칠인정 및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로 이루어진 정자부(亭子部) 그리고 방지방도(方池方島)의 지당과 배롱나무로 이루어진 지당부(池塘部)로 구분된다. 칠인정 기문 내용이나 아들과 사위 7인의 인수(印綬)를 쌍괴수(雙槐樹)에 내건 것에서 기인된 당호(堂號)로 볼 때, 초건 시 식재한 괴목과 그 이후 보식(補植)한 수종 또한 삼공(三公)의 지위와 학자수(學者樹)를 상징하는 회화나무(홰)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뿐만 아니라 영조21년(1745) 보식한 수종이 현재 칠인정에 존치하는 느티나무(괴)라고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칠인정 담장 밖의 회화나무가 당시 식재한 그 수목임을 배제할 수 없다. 요컨대 느티나무와 함께 칠인정원림에 심겨진 3주의 회화나무는 인동장씨 후손들이 회화나무(홰)와 느티나무(괴)의 차이점을 인식하였음을 알리는 최소한의 징표가 아닐 수 없다. 회화나무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한편으로 회화나무로, 다른 한편으로 느티나무로 인식되었고 점차 구입용이성, 성장속도, 장수목으로의 성장가능성에서 회화나무와 비교우위에 있는 느티나무를 회화나무 대용(代用)으로 혼용한 자발적 문화변용 현상을 칠인정원림의 괴목 식재사례를 통해 목도(目睹)하게 된다.
포항 칠인정원림의 건립취지, 조형의도 그리고 변천과정 등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조 누정 조영의 시대적 감각과 조영의장을 조명하고, 원림내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식재의 문화변용 현상을 살펴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2주의 괴목(槐木) 식재로 인해 쌍괴정(雙槐亭)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은 칠인정(七印亭)은 고려말 관료 출신의 장표(張彪)가 태종9년(1409) 초곡리 사일마을에 건립한 은거형 정자이며, 칠인정원림은 쌍계구곡(雙溪九曲)의 제3곡인 초곡(草谷)의 핵심이기도 하다. 칠인정원림은 사일마을 비보숲 초입의 진입부(進入部)와 칠인정 및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로 이루어진 정자부(亭子部) 그리고 방지방도(方池方島)의 지당과 배롱나무로 이루어진 지당부(池塘部)로 구분된다. 칠인정 기문 내용이나 아들과 사위 7인의 인수(印綬)를 쌍괴수(雙槐樹)에 내건 것에서 기인된 당호(堂號)로 볼 때, 초건 시 식재한 괴목과 그 이후 보식(補植)한 수종 또한 삼공(三公)의 지위와 학자수(學者樹)를 상징하는 회화나무(홰)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뿐만 아니라 영조21년(1745) 보식한 수종이 현재 칠인정에 존치하는 느티나무(괴)라고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칠인정 담장 밖의 회화나무가 당시 식재한 그 수목임을 배제할 수 없다. 요컨대 느티나무와 함께 칠인정원림에 심겨진 3주의 회화나무는 인동장씨 후손들이 회화나무(홰)와 느티나무(괴)의 차이점을 인식하였음을 알리는 최소한의 징표가 아닐 수 없다. 회화나무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한편으로 회화나무로, 다른 한편으로 느티나무로 인식되었고 점차 구입용이성, 성장속도, 장수목으로의 성장가능성에서 회화나무와 비교우위에 있는 느티나무를 회화나무 대용(代用)으로 혼용한 자발적 문화변용 현상을 칠인정원림의 괴목 식재사례를 통해 목도(目睹)하게 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lluminate historical sensitivity and design in the days of the Joseon era and examines the phenomenon of acculturation as revealed in the planting of Sophora japonica and Zelkova serrata in the garden grove by looking into the purpose underlying the construction, for...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lluminate historical sensitivity and design in the days of the Joseon era and examines the phenomenon of acculturation as revealed in the planting of Sophora japonica and Zelkova serrata in the garden grove by looking into the purpose underlying the construction, formative intention and the process of change in Pohang's Chirinjeong wonlim. Chirinjeong, also called Sanggaejeong(雙槐亭) after the fact that two Zelkova serrata trees were planted there, is a hermit pavilion in Sa-il village, Chogok-ri, built in the 9th year of King Taejong(1409) by Jang, Pyo(張彪, 1349~?) of an officer of bureaucratic origin toward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the Chirinjeong garden grove is an element essential to Chogok, the 3rd Gok of Sanggaegoogok(雙溪九曲). The wonlim of Chirinjeong is divided into the pavilion section composed of the entrance area, Chirinjeong, composed of Zelkova serrata and Sophora japonica, and the pond section composed of a quadrangular pond and island(方池方島), and Lagerstroemia indica. In view of the intent of the name Chirinjeong or of the fact that the pavilion was named based on that the royal seal string was hung on the Sanggwaesoo(雙槐樹) or two Zelkova serrata trees, it is reasonable to view it as Zelkova serrata trees having been planted early in the days of the Joseon Dynasty and those additionally planted later on that symbolizes the position of the three nobles and the Sophora japonica. In addition, in spite of the fact that the type of trees supplementarily planted in the 21st year of King Yeongjo(1745) is known as Sophora japonica, it is impossible to rule out the possibility of the tree planted outside of Chirinjeong being Zelkova serrata. In short, the three Zelkova serrata trees planted along with Sophora japonica must certainly be evidence that Zelkova serrata planted along with Sophora japonica in Chirinjeong wonlim indicates that the off spring of the Indong Jang family could tell the difference between Sophora japonica and Zelkova serrata. In the recognition process of Zelkova serrata trees finding their way into Korea, it was known as Zelkova serrata on the one hand and as Sophora japonica on the other, and the former, which enjoys a comparative advantage over in terms of the easiness with which to purchase, growth speed and possibility of growing into a long-lived tree was interchanged with Zelkova serrata, a case of acculturation as manifested in the planting of Sophora japonica in the Chirinjeong garden grov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lluminate historical sensitivity and design in the days of the Joseon era and examines the phenomenon of acculturation as revealed in the planting of Sophora japonica and Zelkova serrata in the garden grove by looking into the purpose underlying the construction, formative intention and the process of change in Pohang's Chirinjeong wonlim. Chirinjeong, also called Sanggaejeong(雙槐亭) after the fact that two Zelkova serrata trees were planted there, is a hermit pavilion in Sa-il village, Chogok-ri, built in the 9th year of King Taejong(1409) by Jang, Pyo(張彪, 1349~?) of an officer of bureaucratic origin toward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the Chirinjeong garden grove is an element essential to Chogok, the 3rd Gok of Sanggaegoogok(雙溪九曲). The wonlim of Chirinjeong is divided into the pavilion section composed of the entrance area, Chirinjeong, composed of Zelkova serrata and Sophora japonica, and the pond section composed of a quadrangular pond and island(方池方島), and Lagerstroemia indica. In view of the intent of the name Chirinjeong or of the fact that the pavilion was named based on that the royal seal string was hung on the Sanggwaesoo(雙槐樹) or two Zelkova serrata trees, it is reasonable to view it as Zelkova serrata trees having been planted early in the days of the Joseon Dynasty and those additionally planted later on that symbolizes the position of the three nobles and the Sophora japonica. In addition, in spite of the fact that the type of trees supplementarily planted in the 21st year of King Yeongjo(1745) is known as Sophora japonica, it is impossible to rule out the possibility of the tree planted outside of Chirinjeong being Zelkova serrata. In short, the three Zelkova serrata trees planted along with Sophora japonica must certainly be evidence that Zelkova serrata planted along with Sophora japonica in Chirinjeong wonlim indicates that the off spring of the Indong Jang family could tell the difference between Sophora japonica and Zelkova serrata. In the recognition process of Zelkova serrata trees finding their way into Korea, it was known as Zelkova serrata on the one hand and as Sophora japonica on the other, and the former, which enjoys a comparative advantage over in terms of the easiness with which to purchase, growth speed and possibility of growing into a long-lived tree was interchanged with Zelkova serrata, a case of acculturation as manifested in the planting of Sophora japonica in the Chirinjeong garden gr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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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본 연구는 본 학회에서 아직 다루지 않았던 전통정원 유적 칠인정원림의 정원 특성과 함께 칠인정의 당호의 유래 근거인 인수목 식재 사례를 통해 괴목의 문화변용을 다루고자 하였다. 그러나 지면 관계상 식재 수목의 문화변용을 충분히 논의하는 데는 부족함이 있었다.
본 연구는 포항 칠인정의 건립취지, 조형양식 그리고 식재변용 등을 살펴봄으로써 조선 초기 누정 조영의 시대적 감각과 사상을 조명하며, 초기 식재 상태와 누정의 변화과정 속에 보식되면서 영향을 미친 식재 문화변용 현상을 통시적으로 이해 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제안 방법
연구의 공간적 범위는 초곡길 입구부터 칠인정 상류의 계류 분기점까지이며 시간적 범위는 정자 초건 시부터 현재까지의 조영 및 경영 그리고 향유과정을 대상으로 한다. 본 연구는 문헌연구와 현장연구 그리고 인터뷰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본 연구에서는 문화접변은 문화가 서로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종합적 과정을 가리키는 용어로 개념적 정의를 내리고자 하며 Kang(2016)[11]의 견해를 수용하여, 수종은 다르지마는 ‘괴목’의 쓰임새가 장기간의 접촉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2개 수종으로 정착되는 문화 공존현상을 ‘문화변용’의 조작적 정의로 삼았다.
현장연구는 주변의 관련 문화유적을 GPS 측정기로 측정하고 줄자와 함척(函尺, leveling rod), 그리고 윤척(輪尺, caliper) 등을 통해 조영요소와 식재 수종별 형상과 종류 그리고 규격 등을 조사하고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였다. 칠인정과 주변의 공간구성 등 배치와 식재현황 등을 CAD로 작도하여 향후 심화연구 및 보존관리에 활용되도록 하였다. 한편 인터뷰는 인동장씨 후손인 칠인정 보존회장 장○○옹(79, 포항시흥예읍 초곡리 296)과 장○○옹(72, 포항리 흥예읍 초곡리830)을 대상으로 하였다.
포항 칠인정원림의 건립취지, 조형양식과 그 변천과정 등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조 누정 조영의 시대적 감각과 사상 및 조영의장을 조명하고 원림내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식재의 문화변용 현상을 살펴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kr)[7] 자료와 함께 검토하였다. 현장연구는 주변의 관련 문화유적을 GPS 측정기로 측정하고 줄자와 함척(函尺, leveling rod), 그리고 윤척(輪尺, caliper) 등을 통해 조영요소와 식재 수종별 형상과 종류 그리고 규격 등을 조사하고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였다. 칠인정과 주변의 공간구성 등 배치와 식재현황 등을 CAD로 작도하여 향후 심화연구 및 보존관리에 활용되도록 하였다.
대상 데이터
문헌연구는 치암(癡菴) 남경희(南景羲, 1748~1812)의 「치암선생문집(癡庵先生文集)」 [4] 상의 「칠인정기(七印亭記)」 , 그리고 유헌(遊軒) 장석룡(張錫龍, 1823~1908)의 「유헌선생문집(遊軒先生文集)」 [5] 상의 「칠인정중수기(七印亭重修記)」 그리고 후손인 이계(耳溪) 장사경(張思敬, 1756~1817)의 「이계선생문집(耳溪先生文集)」 [6] 및 칠인정 내부에 게판된 누정제영시를 한국고전번역원(http://db.itkc.or.kr)[7] 자료와 함께 검토하였다. 현장연구는 주변의 관련 문화유적을 GPS 측정기로 측정하고 줄자와 함척(函尺, leveling rod), 그리고 윤척(輪尺, caliper) 등을 통해 조영요소와 식재 수종별 형상과 종류 그리고 규격 등을 조사하고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였다.
연구대상 칠인정(Figure 1)은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초곡길316번길 2에 위치한다. 연구의 공간적 범위는 초곡길 입구부터 칠인정 상류의 계류 분기점까지이며 시간적 범위는 정자 초건 시부터 현재까지의 조영 및 경영 그리고 향유과정을 대상으로 한다.
연구대상 칠인정(Figure 1)은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초곡길316번길 2에 위치한다. 연구의 공간적 범위는 초곡길 입구부터 칠인정 상류의 계류 분기점까지이며 시간적 범위는 정자 초건 시부터 현재까지의 조영 및 경영 그리고 향유과정을 대상으로 한다. 본 연구는 문헌연구와 현장연구 그리고 인터뷰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칠인정과 주변의 공간구성 등 배치와 식재현황 등을 CAD로 작도하여 향후 심화연구 및 보존관리에 활용되도록 하였다. 한편 인터뷰는 인동장씨 후손인 칠인정 보존회장 장○○옹(79, 포항시흥예읍 초곡리 296)과 장○○옹(72, 포항리 흥예읍 초곡리830)을 대상으로 하였다.
성능/효과
1. 2주의 괴목(槐木) 식재로 인해 쌍괴정(雙槐亭)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은 칠인정(七印亭)은 고려말 관료 출신의 장표(張彪)가 태종9년(1409) 초곡리 사일마을에 은거하여 건립한 누각 형식의 정자로 ‘포항 두문동’의 상징적 공간이다.
2. 칠인정원림은 도음산 아래 설정한 쌍계구곡 제3곡인 초곡(草谷)의 핵심으로, 사일마을 비보숲의 진입부(進入部)와 칠인정 및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로 이루어진 정자 부(亭子部) 그리고 방지방도(方池方島)의 지당과 배롱나무로 이루어진 지당부(池塘部)로 구분된다. 특히 계류를 끌어들인 방지방도의 지당과 주변 노거목 배롱나무 3 주는 매우 주목된다.
3. 칠인정 지당의 규모는 9.8m×7.9m이고 방도(方島) 규모는 1.9m×2.2m이다.
4. 담장 내부에는 쌍괴정(雙槐亭) 또는 쌍규정(雙糾亭)이라 불리는 근원직경(R) 137·153㎝ 크기의 느티나무가, 담장 외부 전면으로는 근원직경 123·125㎝에 달하는 회화나무 2주가 식재되어 있으며 지당 주위로는 각각 근원둘레의 합이 152·148·118㎝에 이르는 다간(多幹)의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다.
5. 칠인정 기문 내용이나 아들 4인과 사위 3인 등 총 7인의 인수(印綬)를 쌍괴수에 건 것을 기념한 것에서 연유한당호(堂號) 등으로 볼 때, 초건 시 식재한 괴목 쌍괴수는 삼공(三公)의 지위와 학자수(學者樹)를 상징하는 회화나무(홰)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7. 회화나무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한편으로 회화나무로, 다른 한편으로 느티나무로 인식되면서 혼용되게 된 내면에는 회화나무에 비해 구입용이성, 성장속도, 장수목으 로서 성장 가능성 등의 측면에서 비교우위에 있는 느티나무의 유용성에 근거한 것이다. 이처럼 회화나무를 느티나무로 인식하거나 대체한 것은 자발적 문화접변(文 化接變) 현상으로, 우리는 칠인정원림을 통해 식재를 통한 문화변용의 사례를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이 회화나무가 현재 느티나무로 대체 식재된 사유는 무엇일까? Kang(2015)[19]이 지적한 바와 같이 성리학의 상징수였던 회화나무는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한편으로 회화나무로, 다른 한편으로 느티나무로 인식되었다.8) 지금까지 회화나무를 느티나무로 수용한 이유를 알려주는 자료는 없지만 회화나무 보다 느티나무는 구입이 용이한 속성수일 뿐 아니라 회화나무에 비해 장수목이었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다. 이처럼 회화나무를 느티나무로 인식한 것은 문화변용의 일단이기도 하다.
두 분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과거에는 2기의 우물(井)이 칠인정 전면에 있었으며 현재 동쪽 담장선 아래 존치되고 있는 자연석 상부에는 조영자의 성과 일치되는 붉은 주칠을 한 “베풀 장(張)자” 바위글씨가 있었으며, 자연석 옆에 오동나무(Paulownia coreana Uyeki) 1주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담장으로 덮여있어 확인되지 않는다.
후속연구
그러나 지면 관계상 식재 수목의 문화변용을 충분히 논의하는 데는 부족함이 있었다. 특히 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의 문화접변을 통한 문화변용의 유사 사례에 대한 충분한 비교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함을 연구 한계로 느낀다. 이에 대해서는 국내에 분포하는 다수의 괴정(槐亭)의 식재 사례 검토를 통해 식재문화의 융합·동화·공존현상에 대한 보다 다양화되고 깊이 있는 연구 확대의 필요성을 느낀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포항 칠인정은 무엇인가?
포항 칠인정(七印亭)은 ‘흥해의 두문동’이라 일컬어지는 장표(張彪, 1349~?)의 장구지소(杖屨之所)로서 조선 태종9년(1409)에 창건한 후, 정조21년(1797)에 중창하고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 깊은 정원유적이다. 칠인정은 산간지역으로 이주해 갔던 재지사족(在地士族)들의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 정자로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69호로 지정되어 있다.
칠인정은 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 되었는가?
포항 칠인정(七印亭)은 ‘흥해의 두문동’이라 일컬어지는 장표(張彪, 1349~?)의 장구지소(杖屨之所)로서 조선 태종9년(1409)에 창건한 후, 정조21년(1797)에 중창하고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 깊은 정원유적이다. 칠인정은 산간지역으로 이주해 갔던 재지사족(在地士族)들의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 정자로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69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의 칠인정은 18세기 후반에 중수한 것이지만, 정자뿐만 아니라 지당, 주변 비보숲과 쌍계(雙溪) 등은 15세기 이후 전통정원의 원형과 향유 등에 따른 변모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http://www.
문화접변은 무엇을 초래하는가?
com)[8]. 이는 단지 전파로 인하여 문화 요소가 추가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문화 요소의 등장을 초래하는데, 보통 장기간에 걸친 접촉은 양쪽 문화 모두의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Kim et al.
참고문헌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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