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은 고려인삼의 메카다. 개성이 고려인삼의 대표 브랜드가 된 배경은 복합적이다. 인삼 재배에 적합한 천혜의 자연조건에 개성의 막강한 상업자본과 증포소 설치가 물적 토대라면 개성상인의 단합과 근검, 실리주의, 창의적인 상업제도 등 인적 토대가 결합하면서 개성은 한국 인삼의 본산지가 되었다. 개성 인삼의 부흥을 끌어온 개성상인으로 손봉상, 김원배(金元培), 공성학(孔聖學), 김정호(金正浩), 박우현(朴宇鉉) 등을 들 수 있다. 개성 삼업을 주도한 이들은 인삼경작법과 병충해 방제법을 보급하고 관립종삼회사를 설립, 종자보존을 하고 영농자금 선불제를 도입하는 등 현대적 경영기법을 선보였다. 그 중 인삼 대왕으로 칭송되는 손봉상(孫鳳祥)의 생애를 조명함으로써 개성 인삼 상인의 업적을 살펴본다. 1927년에 발간된 '조선인회사, 대상점사전(朝鮮人會社 大商店辭典)'에 "손봉상은 개성 인삼경작계의 원로이며 그의 손에 의하여 발명된 인삼 제품도 적지 않다. 이 인삼 경작업은 손씨가의 전래지업(傳來之業)이나 손봉상에 의하여 대성되었다"고 소개되어있다. 손봉상의 주요한 업적은 첫째, 인삼에 적부병(赤腐病)이 발생하여 인삼경작이 절망(絶望)에 빠졌을 때 종삼회사(種蔘會社)를 창립, 우량한 종삼(種蔘)을 재배하였고 둘째, 종삼 심사 제도를 도입하여 우량 종삼 확보 제도를 확립시켰고 셋째, 개성삼업조합(開城蔘業組合)을 창설해 경작자금 저리 융자, 종삼의 개량, 병충해 예방, 경작법 개량 등을 시행하였고 넷째 개성인삼동업조합(開城人蔘同業組合)을 창립해 인삼의 성가(聲價)를 회복시켰다. 그는 삼업에서 모은 자본을 바탕으로 각종 회사 설립에 참여하여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12년 10월 합자회사 영신사(永信社)를 개성의 거상인 김원배(金元培), 공성학(孔聖學), 김정호(金正浩), 박우현(朴宇鉉)과 함께 설립하여 사장에 취임하였고, 상품의 도산매·위탁판매, 창고업과 금융업을 경영하였다. 또 개성의 전기 보급을 위하여 1917년 4월 개성상인들과 합작으로 전기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취체역을 맡는 등 다양한 기업 활동을 했다. 개성 인삼 상인들은 삼업의 발전뿐만 아니라 상업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연결하는 시대적 선구자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했다.
개성은 고려인삼의 메카다. 개성이 고려인삼의 대표 브랜드가 된 배경은 복합적이다. 인삼 재배에 적합한 천혜의 자연조건에 개성의 막강한 상업자본과 증포소 설치가 물적 토대라면 개성상인의 단합과 근검, 실리주의, 창의적인 상업제도 등 인적 토대가 결합하면서 개성은 한국 인삼의 본산지가 되었다. 개성 인삼의 부흥을 끌어온 개성상인으로 손봉상, 김원배(金元培), 공성학(孔聖學), 김정호(金正浩), 박우현(朴宇鉉) 등을 들 수 있다. 개성 삼업을 주도한 이들은 인삼경작법과 병충해 방제법을 보급하고 관립종삼회사를 설립, 종자보존을 하고 영농자금 선불제를 도입하는 등 현대적 경영기법을 선보였다. 그 중 인삼 대왕으로 칭송되는 손봉상(孫鳳祥)의 생애를 조명함으로써 개성 인삼 상인의 업적을 살펴본다. 1927년에 발간된 '조선인회사, 대상점사전(朝鮮人會社 大商店辭典)'에 "손봉상은 개성 인삼경작계의 원로이며 그의 손에 의하여 발명된 인삼 제품도 적지 않다. 이 인삼 경작업은 손씨가의 전래지업(傳來之業)이나 손봉상에 의하여 대성되었다"고 소개되어있다. 손봉상의 주요한 업적은 첫째, 인삼에 적부병(赤腐病)이 발생하여 인삼경작이 절망(絶望)에 빠졌을 때 종삼회사(種蔘會社)를 창립, 우량한 종삼(種蔘)을 재배하였고 둘째, 종삼 심사 제도를 도입하여 우량 종삼 확보 제도를 확립시켰고 셋째, 개성삼업조합(開城蔘業組合)을 창설해 경작자금 저리 융자, 종삼의 개량, 병충해 예방, 경작법 개량 등을 시행하였고 넷째 개성인삼동업조합(開城人蔘同業組合)을 창립해 인삼의 성가(聲價)를 회복시켰다. 그는 삼업에서 모은 자본을 바탕으로 각종 회사 설립에 참여하여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12년 10월 합자회사 영신사(永信社)를 개성의 거상인 김원배(金元培), 공성학(孔聖學), 김정호(金正浩), 박우현(朴宇鉉)과 함께 설립하여 사장에 취임하였고, 상품의 도산매·위탁판매, 창고업과 금융업을 경영하였다. 또 개성의 전기 보급을 위하여 1917년 4월 개성상인들과 합작으로 전기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취체역을 맡는 등 다양한 기업 활동을 했다. 개성 인삼 상인들은 삼업의 발전뿐만 아니라 상업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연결하는 시대적 선구자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했다.
Gaesung was the Mecca of Korean ginseng. Factors that Gaesung has been a leading brand of Korean ginseng were multiplicative. Those were natural conditions and huge commercial capital, red ginseng factory, creative business systems and etc. We can quote BongSang Son, SungHak Kong and JeongHo Kim as ...
Gaesung was the Mecca of Korean ginseng. Factors that Gaesung has been a leading brand of Korean ginseng were multiplicative. Those were natural conditions and huge commercial capital, red ginseng factory, creative business systems and etc. We can quote BongSang Son, SungHak Kong and JeongHo Kim as a famous Gaesung' ginseng merchants. They, as leaders modern ginseng industry had supplied the method of cultivation, prevention of phyto-diseases, excellent ginseng seed, and prepayment system of farming capital. The Gaesung merchants also adopted modern marketing techniques : commercial advertisement, made-order sales, changing package of the ginseng products. The book 'The Dictionary of Korean Companies and Stores' which was published in 1927 introduces BongSang Son as a great businessman in Gaesung. He was not only merchants but also educator and social worker. He practiced the spirit of entrepreneurship. BongSang Son's role of pioneer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ginseng and Gaesung. Due to such efforts of Gaesung merchants, Korean ginseng industry were took a great step forward. This article considered the development of Korean ginseng industry through the life and achievement of the ginseng magnate BongSang Son who was a representative one of Gaesung merchants.
Gaesung was the Mecca of Korean ginseng. Factors that Gaesung has been a leading brand of Korean ginseng were multiplicative. Those were natural conditions and huge commercial capital, red ginseng factory, creative business systems and etc. We can quote BongSang Son, SungHak Kong and JeongHo Kim as a famous Gaesung' ginseng merchants. They, as leaders modern ginseng industry had supplied the method of cultivation, prevention of phyto-diseases, excellent ginseng seed, and prepayment system of farming capital. The Gaesung merchants also adopted modern marketing techniques : commercial advertisement, made-order sales, changing package of the ginseng products. The book 'The Dictionary of Korean Companies and Stores' which was published in 1927 introduces BongSang Son as a great businessman in Gaesung. He was not only merchants but also educator and social worker. He practiced the spirit of entrepreneurship. BongSang Son's role of pioneer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ginseng and Gaesung. Due to such efforts of Gaesung merchants, Korean ginseng industry were took a great step forward. This article considered the development of Korean ginseng industry through the life and achievement of the ginseng magnate BongSang Son who was a representative one of Gaesung merchants.
송도사개치부법은 개성상인들에 의해 창안된 우리 민족 고유의 복식부기법으로 서양의 부기법보다 시기적으로 200년이나 앞선다. 단기자금을 거래하던 재래의 금융 제도인 시변제는 신용만 확실하다면 아무것도 보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신용경제가 바탕이었다.
1927년에 발간된 ‘조선인회사 대상점사전(朝鮮 人會社 大商店辭典(1927)’에서 소개된 손봉상은?
개성 삼업계의 개척자인 그의 생애를 살펴보는 것은 고려인삼의 근현대사를 보는 것과 같다. 1927년에 발간된 ‘조선인회사 대상점사전(朝鮮 人會社 大商店辭典(1927)’에 “손봉상은 개성 인삼 경작계의 원로이며 그의 손에 의하여 발명된 인삼 제품도 적지 않다. 이 인삼 경작업은 손씨가의 전래지업(傳來之業)이나 손봉상에 의하여 대성되었다”고 소개되어있다.
손봉상이 개성삼업조합 초대 조합장으로 취임했을 당시의 인삼업 현황은?
손봉 상은 초대 조합장으로 취임하여 27년간을 조합장으로 재직하면서 인삼업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 무렵 인삼에 적부병(赤腐病)이 발생하여 인삼경작이 절멸이라는 소문이 돌아 인삼경작을 포기하는 경작자들이 속속 나타났다. 당시 독자적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삼을 재배하던 인삼 경작인들이 힘을 모으고 협동하여 인삼 경작법을 개량하고 인삼의 병해를 퇴치하여 인삼업을 부흥시키자는 취지에서 개성삼업조합은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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