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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韓國古代史硏究 = The Journal of Korean Ancient History, v.60, 2010년, pp.279 - 307
이경희
평양지역 벽화의 복식, 특히 묘주복식은 ‘중국풍’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벽화가 축조된 4~5세기는 대규모의 인구이동으로 인한 문화융합이 가속화되던 시기였다. 여러 요소들이 혼재하던 당시의 문화는 ‘중국풍’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편 평양지역의 복식은 고구려사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이는 바 좀 더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하겠다.
평양지역 묘주의 복식은 일정하게 양식화되어 있으며 幘+武冠, 袍, 靴로 구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관모, 신발 등의 요소는 북방계 복식인 호복의 특징으로 보이며, 袍는 중원복식으로 볼 수 있다. 즉 묘주복식은 호복을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漢式이 가미된 형태라 할 수 있다. 평양지역의 복식은 4∼5세기 요양이나 감숙성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요양, 감숙성 지역은 호족문화에 속해 있었으나 5호16국시기 중원에서 나온 유망민들의 주요 피난지가 되면서 호한문화의 공존이 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 평양지역의 ‘중국풍’복식도 이러한 호한문화의 공존현상이라는 보편성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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