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고문헌을 통하여 광릉 전나무 식재의 사적 근거를 밝히고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일성록(日省錄)" 등의 식재기록을 분석하였다. 선행 연구와 산림생태조사 및 도복된 전나무 연륜을 통하여 현재 광릉 전나무의 수령을 추정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능제는 가장 보수적인 체제로 광릉 조성 과정 중 식재는 전례에 따라 이루어졌을 것이다. 건원릉을 시작으로 능침수목 식재기록을 통하여 소나무, 잣나무, 버드나무가 식재되었던 것을 확인하였다. 둘째, 조선후기 능침 작벌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조 22년 무오년 수교가 반포되었으며, 이후 봄 가을로 정기 식재가 이루어졌다. 정조 23년 기록을 통하여 조성 및 관리 연한이 오래된 9개 능을 대상으로 식재 주수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광릉에는 잣나무와 잡목이 식재되었다. 셋째, 무오년 수교가 고종 치세 31년간 지켜지고 있으며, 예조별단을 통해 구체적인 식재 수종, 식재 장소, 식재 주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종 22년부터 25년까지 4년간 광릉에는 지속적으로 전나무가 식재되었으며 잣나무를 식재한 곳은 광릉이 유일하였다. 넷째, 도복된 전나무 연륜을 통하여 수령 파악이 가능했으며, 현존 광릉 전나무 식재 시기는 철종 10년 이후부터 고종 연간으로 판단하였다.
본 연구는 고문헌을 통하여 광릉 전나무 식재의 사적 근거를 밝히고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일성록(日省錄)" 등의 식재기록을 분석하였다. 선행 연구와 산림생태조사 및 도복된 전나무 연륜을 통하여 현재 광릉 전나무의 수령을 추정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능제는 가장 보수적인 체제로 광릉 조성 과정 중 식재는 전례에 따라 이루어졌을 것이다. 건원릉을 시작으로 능침수목 식재기록을 통하여 소나무, 잣나무, 버드나무가 식재되었던 것을 확인하였다. 둘째, 조선후기 능침 작벌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조 22년 무오년 수교가 반포되었으며, 이후 봄 가을로 정기 식재가 이루어졌다. 정조 23년 기록을 통하여 조성 및 관리 연한이 오래된 9개 능을 대상으로 식재 주수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광릉에는 잣나무와 잡목이 식재되었다. 셋째, 무오년 수교가 고종 치세 31년간 지켜지고 있으며, 예조별단을 통해 구체적인 식재 수종, 식재 장소, 식재 주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종 22년부터 25년까지 4년간 광릉에는 지속적으로 전나무가 식재되었으며 잣나무를 식재한 곳은 광릉이 유일하였다. 넷째, 도복된 전나무 연륜을 통하여 수령 파악이 가능했으며, 현존 광릉 전나무 식재 시기는 철종 10년 이후부터 고종 연간으로 판단하였다.
The study was done to analyze the records of planting time of Gwangneung needle firs referring to the historical literatures, the Annals of Joseon Dynasty(朝鮮王朝實錄), Seungjeongwonilgi(承政院日記: Journal of the Royal Secretariat)....
The study was done to analyze the records of planting time of Gwangneung needle firs referring to the historical literatures, the Annals of Joseon Dynasty(朝鮮王朝實錄), Seungjeongwonilgi(承政院日記: Journal of the Royal Secretariat). Bibyeonsadeungnok(備邊司謄錄: Records of the Bibyeonsa Defense Council, a government agency during the Joseon Dynasty), Ilseongnok(日省錄: Journal on Dynasty affairs of the kings in the 36th year of Youngjo to 1910) to lay the historical ground for needle firs in Gwangneung. The following results were derived from previous research, Report on Gwangneung Forest Ecosystem, and overlaid fir tree rings. The research findings are as follow. First, since the system of making the grave is the most conservative system, the planting during the Gwangneung construction would have been preceded by precedent. Second, the problem of cutting the tree in the late Joseon Dynasty became serious. It is published the Law of Muo In the 22nd year of Jeongjo, and then planted trees regularly in spring and autumn. Third, the Law of Muo was preserved for 31 years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and the type of specific tree, the number of trees, from the 22nd year until the 25th year of King Gojong, four years of fir trees were planted in Gwangneung, and Gwangneung was the only place where korean pine trees were planted. Fourth, it was possible to identify the age of the tree through fallen fir tree rings, and the period of planting fir trees growing in the existing mausoleum is judged to be the equivalent year of King Gojong's reign from the 10th year of King Cheoljong's reign.
The study was done to analyze the records of planting time of Gwangneung needle firs referring to the historical literatures, the Annals of Joseon Dynasty(朝鮮王朝實錄), Seungjeongwonilgi(承政院日記: Journal of the Royal Secretariat). Bibyeonsadeungnok(備邊司謄錄: Records of the Bibyeonsa Defense Council, a government agency during the Joseon Dynasty), Ilseongnok(日省錄: Journal on Dynasty affairs of the kings in the 36th year of Youngjo to 1910) to lay the historical ground for needle firs in Gwangneung. The following results were derived from previous research, Report on Gwangneung Forest Ecosystem, and overlaid fir tree rings. The research findings are as follow. First, since the system of making the grave is the most conservative system, the planting during the Gwangneung construction would have been preceded by precedent. Second, the problem of cutting the tree in the late Joseon Dynasty became serious. It is published the Law of Muo In the 22nd year of Jeongjo, and then planted trees regularly in spring and autumn. Third, the Law of Muo was preserved for 31 years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and the type of specific tree, the number of trees, from the 22nd year until the 25th year of King Gojong, four years of fir trees were planted in Gwangneung, and Gwangneung was the only place where korean pine trees were planted. Fourth, it was possible to identify the age of the tree through fallen fir tree rings, and the period of planting fir trees growing in the existing mausoleum is judged to be the equivalent year of King Gojong's reign from the 10th year of King Cheoljong's reign.
본 연구에서는 광릉 관리 과정에서 전나무 식재에 관련된 기록을 고찰을 통하여 개별 왕릉 수목 연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연구 결과를 토대로 조선왕릉의 역사경관림 관리에 사적 자료를 제시하고자 진행되었다.
제안 방법
시간적 범위로는 광릉 조성(1468) 이후부터 대한제국(1897) 이전 시기로 한정하였으며, 공간적 범위는 현재 광릉과 광릉 인근 산림생산기술연구원 및 봉선사 앞 도로변으로 제한하였다. 분석 결과를 종합하여 현존 광릉 인근 전나무의 식재 연한 및 광릉 전나무 식재에 대한 사적 고증을 시도하였다.
시간적 범위로는 광릉 조성(1468) 이후부터 대한제국(1897) 이전 시기로 한정하였으며, 공간적 범위는 현재 광릉과 광릉 인근 산림생산기술연구원 및 봉선사 앞 도로변으로 제한하였다. 분석 결과를 종합하여 현존 광릉 인근 전나무의 식재 연한 및 광릉 전나무 식재에 대한 사적 고증을 시도하였다.
본 연구는 광릉과 전나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하여 현존 광릉 전나무에 대한 식재 연한을 추적하고자 한 것이다. 전나 무 식재 기록은 고문헌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였으며[25][26] [27], 광릉지를 비롯한 능지, 의궤 기록을 검토하였다. 선행 연구 및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현지조사 자료인 2004년, 2014 년 광릉산림생태조사보고서 중 전나무에 대한 기록을 분석하였다.
대상 데이터
전나 무 식재 기록은 고문헌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였으며[25][26] [27], 광릉지를 비롯한 능지, 의궤 기록을 검토하였다. 선행 연구 및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현지조사 자료인 2004년, 2014 년 광릉산림생태조사보고서 중 전나무에 대한 기록을 분석하였다.
성능/효과
넷째, 도복된 전나무 연륜을 통하여 수령 파악이 가능했으며, 현존 광릉 전나무 식재 시기는 철종 10년 이후부터 고종 연간 으로 판단하였다.
둘째, 조선후기 능침 작벌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조 22년 무오년 수교가 반포되었으며, 이후 봄·가을로 정기 식재가 이루 어졌다. 정조 23년 기록을 통하여 조성 및 관리 연한이 오래된 9개 능을 대상으로 식재 주수를 파악할 수 있었으며, 광릉에는 잣나무와 잡목이 식재되었다.
셋째, 무오년 수교가 고종 치세 31년간 지켜지고 있으며, 예 조별단을 통해 구체적인 식재 수종, 식재 장소, 식재 주수를 확 인할 수 있었다. 고종 22년부터 25년까지 4년간 광릉에는 지속 적으로 전나무가 식재되었으며 잣나무를 식재한 곳은 광릉이 유일하였다.
첫째, 능제는 가장 보수적인 체제로 광릉 조성 과정 중 식재 는 전례에 따라 이루어졌을 것이다. 건원릉을 시작으로 능침수 목 식재 기록을 통하여 소나무, 잣나무, 버드나무가 식재되었던 것을 확인하였다.
후속연구
본 연구는 조선왕릉 능제복원을 위한 역사경관림 관리의 사적 고증의 일환으로 식재유형에 대한 문헌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향후 조선왕릉에 식재하였던 개별 수종에 대한 문헌 고증과 함께 능역 내 공간별 식재에 대한 사적 고증이 이루어 져야 할 것이며, 이는 지속적인 후속과제로 삼는다. 광릉 전 나무 식재 기록 고찰은 향후 40기 조선왕릉 관리측면에서 개 별 능 수목 연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수행했으면 한다.
본 연구는 조선왕릉 능제복원을 위한 역사경관림 관리의 사적 고증의 일환으로 식재유형에 대한 문헌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향후 조선왕릉에 식재하였던 개별 수종에 대한 문헌 고증과 함께 능역 내 공간별 식재에 대한 사적 고증이 이루어 져야 할 것이며, 이는 지속적인 후속과제로 삼는다. 광릉 전 나무 식재 기록 고찰은 향후 40기 조선왕릉 관리측면에서 개 별 능 수목 연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수행했으면 한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전나무란 무엇인가?
전나무(Abies holophylla)는 소나무과(Pinaceae) 전나무속 (Abies)에 속하는 침엽수로서 해발 1,000~1,400m 심산의 산 중턱, 산기슭 및 산골짜기의 비옥한 땅에 분포하는 상록 침엽교목으로 도시의 풍치수 및 가로수로 널리 식재되고 있다[1][2].
광릉의 위치와 면적은?
광릉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 부평리 산 99-2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1,040,399m2 로[23], 1468년 조성된 세조의 능과 1483년 승하한 정희왕후의 능침(陵寢)을 말한다. 광릉을 포함 한 주변 지역은 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광릉은 핵심지역에 해당한다.
광릉 조성 과정에서 다른 능과의 차이점은?
고종 치세 동안 봄·가을 식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고종 22년부터 25년까지 예조별단의 내용을 통해 살펴보았다. 광릉 은 다른 능과 달리 수목 희소처 외에 특정 장소에 대한 식재가 이루어졌으며, 식재수종으로는 소나무가 아닌 전나무, 잣나무였다. 구체적인 장소와 수종 지정을 통하여 지속적인 식재가 이어져 전나무, 잣나무의 후계목 또한 서식 가능하였다.
※ AI-Helper는 부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